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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삼역의 보람/은종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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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772회 작성일 09-08-11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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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삼역一人三役의 보람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은 종 삼 3년 전 결혼 두 달째 되던 어느 이른 봄날, 나는 아직 손때도 채 묻지 않은 아내의 결혼예물을 송두리째 압수해버렸다. 조금은 떨리는 손으로 걸어주었던 그 목걸이며 반지 등을……. 압수된 물품은 며칠 뒤 나의 가슴에 대학생 배지(badge)가 되어 계면쩍게 매달려 있었다. 기쁘고도 미안했던 그 순간, 아내와 나의 두 눈엔 영롱한 이슬이 맺혔다. 전주교육대학을 졸업한 뒤 5년 만에 다시 대학 2년생이 된 것이다. 그로부터 새벽 5시에 기상하여 자정이 되어 잠자리에 들 때까지 나는 직장인, 학생, 가장으로서 고된 일과를 계속하게 되었으며 1년쯤 지나서는 한 아이의 아빠 노릇까지 해야만 했다. 직장, 학업, 가정 무엇 하나 소홀이 할 수 없는 나에겐 모두가 소중했다. 결국 뛰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남이 쉴 때 더 일하고, 걸을 때 뛰어가며, 잠자는 시간을 할애하여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실례를 무릅쓰고 덜커덩덜커덩 달리는 버스 안에서 부족한 수면을 보충했고, 토요일 오후는 ☀교련시간에 쫓겨 점심을 거르고 뛰어야만 했었다. 어디 그뿐인가. 나는 자랑스럽게도 3년간의 현역복무를 마친 대한민국 공군 제일예비역의 신분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 삼십이 훌쩍 넘은 노학생老學生은 교련학점 미달에 걸려 졸업을 못할 위기에 처했었다. 다행이 영하 10여 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 속에서 야간보충교육을 2주간씩이나 받은 시련을 겪고서 겨우 졸업학점을 얻게 되었다. 말이 보충교육이지 여간 고통스러운 훈련이 아니었다. 나는 용케도 그 혹독한 과정을 견디어 왔으며 이제 영광스러운 학사학위를 받게 되었고, 전북도교육위원회에서 실시한 1978학년도 중등교사 임용 순위고사에도 합격하였다. 드디어 내 인생의 굵은 매듭 하나가 다시 생긴 것이다. 나는 그동안 대학교육을 통해서 무엇이든지 ‘하면 된다.’ 고 하는 신념을 더욱 굳혔고, 학문에 대한 눈을 뜨게 되었으며, 보다 폭넓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음을 무엇보다도 자랑스럽게 여긴다. 앞으로 대학에서 터득한 신념과 용기와 학문을 발판으로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창조의 대열에 앞장서고자 한다. 특히 우리 문화의 바탕이라 할 수 있는 한문학에 대한 더욱 깊은 연구와 후진의 교육을 통해서 민족문화의 발전에 헌신하련다. 나에게 오늘이 있기까지 용기와 신념과 힘을 주신 하느님의 은혜와 공부할 기회를 만들어 주신 모교 ‘영생대학’에 깊이 감사드린다. 이제는 나의 아내에게도 예쁜 목걸이 하나를 골라 걸어 주어야지 싶다. ............................... - 위의 글은 31년 전 초등학교 교사 시절 야간대학 졸업수감卒業隨感이다. 영생대학보 제 84호에 실렸던 글을 옮겼다. 누렇게 바랜 스크랩을 다시 읽어보니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해버린 세월이지만 그때의 일이 생생히 떠오른다. 지금 같아선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 같다. 서신교 근처 단칸방을 나서서 완산동 시외버스정류소까지 달려가 버스를 타고 정읍 감곡초등학교로 출근, 학생교육 및 잡무 처리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학교 눈치를 보며 버스 시간 맞춰서 조금 이른 퇴근을 한다. 버스 안에서 지친 몸 눈을 감는다. 완산동 버스정류소에서 내리자마자 다시 자전거로 노송동 군경묘지 근처 영생대학까지 달린다. 라면이나 튀김 한 조각으로 요기를 하고 야간수업을 받는다. 당시에는 나처럼 주경야독晝耕夜讀하는 사람이 꽤 있었기에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한때 전주교대와 영생대학 야간부를 졸업한 교육계 인사가 전북교육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 누가 말했던가.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어쩌면 힘들었던 그 시대가 있었기에 영웅들이 많이 배출되지 않았나 싶다. 초등학교 교사가 중․고등학교 교장이 된다는 것은 지금 시대에선 말 그대로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어쩌면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은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니겠는가 싶다. 아니, ‘고’가 다 지나고서 ‘감’이 오는 것이 아니고 ‘고’ 안에 곧 ‘감’이 들어있다고 믿는다. 그때 그 시절이 없었다면 오늘의 내가 있었겠는가. 쓴맛을 보면서 단맛을 알고 단맛을 보면서 쓴맛을 느낄 때 진정 행복이 찾아올 것이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일인삼역’으로 살리라. 창밖에선 내 마음을 적시려는 듯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 교련시간; 군사훈련 과목 시간, 당시는 고등학생과 대학생의 필수과목이었다. (2009.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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