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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먹고 벌레가 먹고/이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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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763회 작성일 09-08-10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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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먹고, 벌레가 먹고 전주안골복지관 수필창작반 이 금 영 열무 씨를 뿌려놓으면 개미가 물어가고, 새가 쪼아 먹는 등 새싹이 자라기도 전에 벌레들이 무수히 달려든다. 그래라 “너희들이 배불리 먹고 나면 나머지는 내가 먹지.”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벌fp가 타서 잎이 바늘구멍이 나 있어도 키가 크고 꽃도 피우며 열무는 자란다. 그렇게 키운 열무는 이미 키가 너무 커 쇠어버리고 질겨져서 아무런 가치가 없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키가 큰 열무꽃대는 화병에 꽃을 요량이고, 연한 것으로 골라 물김치를 한 번 담을 수 있었다. 그래도 내가 먹을 것은 남겨 주었다. 다행이도 가끔씩 햇살이 비추어주니 질퍽한 밭이 보송보송할 것 같다. 며칠을 바쁜 일정과 궂은 날씨 덕에 밭에 가보지 못했으니 태양이 서산으로 기울 때쯤 밭에가 보았다. 지난주에 뿌려 논 열무 씨가 비가 계속 내려 새들의 침범이 없었고 땅이 촉촉한 탓에 어느새 떡잎이 올라왔다. 농약을 쓰지 않았더니 떡잎부터 구멍이 송송 뚫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씨앗이 고르게 났다는 점이다. 이번에는 장마 덕을 똑똑히 본 셈이다. 입추가 가까워진 탓으로 풀벌레의 애틋한 가을행진곡을 들어서인지 무성하게 잘도 뻗쳐나가던 바라구 풀들이 생장이 둔해지고 마디가 굻어지지 않은가. 억세기만 하던 것이 힘없이 뽑히고 만다. 그놈의 바라구들은 마디가 땅에 닿기만 해도 뿌리를 내려 그 기세가 열무 싹이며 농작물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 뽑고 또 뽑아도 일주일만 지나면 바라구 풀 조상신이 내려와 밤새 씨를 뿌렸는지 고르게 잘도 돋아난다. 입추의 고개 전후로 해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이슬이 진하게 내려 가을채소를 파종하면 이슬만 먹고도 자라고, 쓰르라미나 귀뚜라미가 울기 시작한다고 하였다. 24절기의 절반을 넘었다. 그늘 속으로 들어가면 서늘하지만 아직은 말복이 남아 있으니 더위가 한물 지났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젠 비가 내려도 바라구 풀들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세상에 쓸모없는 잡초도 봄에 여리고 예쁘게 돋아나는 것이 있고, 뜨거운 태양아래 억세게 가지를 치며 여름을 나는 쇠비름, 바라구, 억새풀 등은 아무리 긴 가뭄에도 마디가 흙에 닫기만 해도 다시 소생하는 오뚜기 같은 종류다. 그 억세기로 유명한 바라구도 가을의 전령사인 풀벌레 울름소리가 그리도 무서운지 슬슬 발톱을 감추기 시작한다. 제초제를 치지 않아서 밭두렁 가장자리를 점령해버려 잡초를 뽑을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또 가을 찬바람에 생장해서 겨울을 거뜬하게 나는 잡초는 뿌리가 그리 깊지 않다. 농작물이나 이름 모를 풀들도 각기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사람은 얼굴과 모습, 타고난 재능이 다르듯이 봄풀처럼 향기 있고 유연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뜻을 굽힐지 모르는 남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자기 영역만 넓혀나가는 바라구과 성격의 소유자도 있을 것이다. 나는 어느 계절로 들어서고 있는가. 봄풀인가, 아니면 억새풀인가? 사람도 저마다 개성이 다른 것처럼 하찮은 잡초도 개성이 있는 자연의 일부일 것이다. 곳 수확기에 접어든 토실토실 영글어가는 찰옥수수를 바라볼 때는 여름내 땀 흘린 보람도 있었는데 아마도 까치는 아닌 것 같고 서생원의 짓으로 볼 수밖에 없다. 잘 여문 찰옥수수를 서생원의 습격을 받아 겨우 나 먹을 것은 이삭으로 세 개만 주웠다. 벌레가 먹고, 새가 먹고, 쥐가 먹은 것이다. 하기야 이들도 먹고살자고, 한 세상을 살아보자고 태어났으니 어쩌랴. 같이 나누어 먹고 살아야지. 다행이도 가꾼 사람의 몫을 남겨두는 것을 보면 그들에게도 규칙은 있는가 보다. 절기가 여름이니만큼 산도, 들도 온통 푸르다 못해 퍼렇다. 다른 집 밭은 고랑과 이랑이 뚜렷이 구분되고 깔끔한데 우리 밭은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아 이랑엔 농작물이 고랑엔 잡초들이 무성해서 이랑과 고랑이 온통 시퍼렇다. 농사를 지을 때 제초제를 뿌려주고, 살충제도 주어야 작물들이 반듯하게 자랄 수 있다고 한다. 농사라고 해야 작은 텃밭 가꾸기 정도로 찬거리나 할 수 있는 채소밭인데 가꾸기가 잡초와의 전쟁인데 장난이 아니다. 몇 포기 심어놓은 고추도 씨알이 굵게 많이도 열렸건만 탄저병이 찾아와 툭툭 떨어지고 있다. 옆 밭의 주인이 대신 농약을 뿌려주겠다고 했지만 굳이 사양했다. 농사를 제대로 짓는지 두고 보자고 웃으며 말했다. 농약을 치지 않으면 가뭄에는 견딜 수 있지만 장마에는 잡초와 해충을 이겨낼 수가 없다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되어 버렸다. 장마가 가뭄 같으면 못살 것이라는 속담도 있다. 다산 정약용은 ‘장맛비를 한탄함(苦雨歎)’에서 (苦雨苦雨雨故來/白日不出雲不開) ‘장맛비 장맛비가 자꾸 내려/해도 뜨지 않고 구름도 안 걷히네’ 라고 장마의 괴로움을 노래했다. 장마가 길어지고 흐린 날이 많아지면 사람의 마음도 우울해지고, 비를 실어하는 농작물들은 시들시들해지면서 말라죽고 잡초들의 천국이 되어 버린다. 순수한 자연식품 유기농 농산물의 먹을거리는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새가 먹고, 벌레가 먹고, 남은 것은 씨를 뿌린 자의 것으로, 낙원의 세계인가, 꿈의 세계인가? ( 2009. 8.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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