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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졸업식 풍경/이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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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36회 작성일 11-03-0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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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졸업식 풍경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이금영 대학졸업식장이다. 졸업은 아들이 하는데 엄마인 내가 더 들떠있다. 아들이 장미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입학하던 그때를 추억하며 온갖 상념에 젖는다. 논술 시험 보는 날도 나는 아들과 함께 서울로 갔었다. 해마다 학생들 입학시험 보는 날은 왜 그리도 추운지 교문 밖에서 시린 발을 동동거리며 기다렸었다. 매서운 칼바람에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웅숭크리다가 근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꽁꽁 언 몸이 커피 한 잔과 사람들의 열기 그리고 따뜻한 난로에 사르르 녹았다. 커피숍을 꽉 메운 아버지와 엄마들은 자식들이 시험 잘 보기를 고대하며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눈다. 우리 아들도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전주에서 대학을 다닐 거라고 했다. 왜 집을 떠나 머나먼 서울로 대학을 가느냐면서 절대로 서울로 가지 않겠다고 했었다. 아마도 엄마와 헤어지기 싫어서 그랬던 것 같다. 부모들은 아름다운 추억을 들먹이며 아이들이 자랄 때의 기억들로 담소를 나누며 지루하지 않게 기다렸다. 그때 이야기를 나누던 옆자리 아버지의 딸도 이번에 졸업을 하는지 궁금했다. 합격통지서를 받고 상경하면서 아들과 단둘이 기차 안에서 캔 맥주로 축배의 잔을 들었던 기억, 흐뭇한 마음으로 하숙집을 구하면서 두리번거릴 때 누군가 “하숙집 찾으세요?” 하고 물었다. 차림새가 하숙을 구하러 시골에서 상경한 모자(母子)로 보였던가 보다. 그녀는 또 “혹시 전주에서 오셨나요. 말씨가 전주 분 같은데 저도 고향이 전주랍니다.” 하며 친절히 안내해줘 쉽게 하숙을 구할 수 있었다. 팍팍한 객지에서 아들이 용돈을 절약하기 위해 가끔 단돈 1.000원짜리 떡 한 팩으로 점심을 해결한다는 소리를 듣고 어미 마음이 얼마나 아팠던가. 바쁜 틈새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충당하였고, 부분 장학금으로 등록금도 많이 보탰었다. 아들은 딸과 달리 군대에도 다녀와야 하니 대학생활이 길기만 하였다. 군대도 부모 속 태우지 않고 제대를 했고, 대학교를 졸업하게 되니 한없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 모든 생활을 스스로 해결하는 사회인이 된다니 무척 어른스럽게 느껴진다.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온갖 정성을 들이고, 감격 하며 행복해 한다. 믿음직하게 성장하고 훌쩍 자라는 모습에서 결과를 기대하는 것처럼, 지금 내가 안고 있는 장미꽃다발을 보며 이 꽃들도 부모들이 자식 키우듯, 많은 연구노력과 공을 들였으리라. 그리하여 이 추위에 저렇게 예쁘고 화려한 장미를 만들어 냈으리라. 졸업식이 있는 대학교 정문 앞에는 예나 지금이나 꽃을 파는 사람들이 양쪽으로 줄을 지어 서있다. 대학가의 졸업식 풍경이다. 화사한 식물원에 들어선 기분이다. 장미꽃 하면 붉은 장미나 백장미 또는 노란 장미를 연상하지만 요즘에는 예전에 보지 못했던 온도에 따라 꽃잎이 변화된다는 보라색 장미도 눈에 띈다. 요즘 대학생들은 사년동안 학점을 이수했다고 해서 졸업을 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취업이 결정될 때까지 졸업을 유보한다. 졸업식장에 나온 학생과 가족들은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여유로운 걸로 보아 대학원을 진학하거나 하늘에서 별 따기인 취업이 확정된 사람들이려니 싶다. 모두 보기 좋은 풍경이다. 반듯한 사회인이 되고 이상을 펼치기 위해 노력한 결과일 것이다. 졸업식장에 들어서니 축하하러 온 가족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언제보아도 흐뭇한 졸업식 풍경이다. 서강대학교는 학부제를 선택하고 다 전공의 학생중심의 특별한 대학으로 알고 있다. 아들이 부모님 고생한다며 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지만 먼 길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가족들의 축하를 받고 있었으니 말이다. 오랜만에 아들 친구도 만나보고 아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 학부모회의에서 만났던 학부모를 만나니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졸업식은 총장님의 기도로 시작되었다. “오늘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학생들의 걸음걸음을 하느님께서 평화로이 인도하시어 국가와 사회에 역량 있는 사람으로 이끌어주시고, 오늘까지 길러주신 부모님 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우수한 성적 대상자들은 여학생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현대사회에 막강한 힘으로 부상하는 여성상은 졸업식장에서도 나타나고 있었다. 남녀공학의 대학인지라 남학생들은 장기간 군복무를 해야지만 여학생은 휴학이 없이 향학열을 지향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분명 졸업식장의 풍경은 변하고 있었다. 남아선호사상은 이제 옛이야기로 돌아가는가? 지금까지 걱정을 끼치지 않았고, 키가 제 아빠보다 훌쩍 큰 아들이 대견하여 껴안고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자식을 위한 기도’를 잠시 읊조려 본다. 그를 요행과 안락의 길로 인도하지 마시고, 폭풍 속에서도 일어설 줄 알며, 인생을 엄숙히 살아가면서도 삶을 즐기고 감사하며, 그의 깨끗한 마음과 높은 이상을 갖게 하시여, 남을 다스리기 전에 자신을 다스리게 하시며, 생활의 여유를 갖게 하시여 참된 힘은 너그러움에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게 하소서! 졸업식이 끝나고 우리는 곧장 차를 몰고 귀향길에 올랐다. 아들은 ‘부모님이 계셔서 졸업식이 더 행복했다며, 부모님 기대에 부흥하는 멋진 아들이 되겠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주었다. 행복하고 즐거웠던 아들의 졸업식 풍경이 머릿속에서 아른 거렸다. (2010.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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