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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이 고마워서/곽예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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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701회 작성일 11-03-06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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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이 고마워서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곽예순 저녁식사를 준비하는데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전에 근무하던 직장 김 소장님이셨습니다. "어떻게 지내요?" "백수가 집안 살림을 하면서 지내지요." "우리 한 번 만납시다. 언제가 좋을지 말만 하면 날짜를 잡을게요." "좋습니다. 근무하는 분들에게 시간을 맞춰야지 저야 매일 노니까요." "그럼, 그렇게 알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별 생각 없이 한 얘기였는데 며칠 후 문자메시지가 왔습니다. 3월 4일 금요일 오후 6시 30분에 '하얀 집'에서 만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답을 보내기 전에 열차시간을 보니 돌아오는 차편이 마땅하지 않았습니다. 하룻밤을 자고 올 수도 없고 나 편하자고 밤늦게까지 그들을 붙잡고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별다른 방법이 없어 참석을 못하겠다고 전화를 했습니다. 그러자 다음 날 다시 문자가 왔습니다. 저녁을 점심으로 변경했으니 참석여부를 알려 달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방법이 없구나 싶어 열차표를 예매했습니다. 퇴직하고 처음 만나는 분들이 많아 외모에 신경이 쓰였습니다. 집에서 노니까 별수 없구나 하는 인상을 상대방에게 줄까봐 두려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남편도 나 못지않게 신경이 쓰이는 것 같았습니다. 남편의 관심도 때로는 잔소리 같은 때가 많습니다. 전주역에서 열차를 탔습니다. 익산에서 여수로 출발하는 무궁화호열차를 가끔 이용합니다. 여천역 도착시각이 12시이니까 바로 택시를 타면 십 여분쯤 늦게 도착하게 될 것 같아 조급함은 없었습니다. 꽃샘추위로 추운 날씨였지만 객실에 들어서자 따뜻한 기운이 온 몸을 감싸 주었습니다. 좌석번호를 찾아 앉고서 열차가 출발하자 미리 준비해 간 수필집을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객실이 소란스러웠습니다. 내 좌석이 22번이었는데 내 뒤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손님들도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습니다. 나 역시도 뒤를 보니 좌석번호 24번부터 같은 일행이었습니다. 바리바리 싸온 먹을거리를 들고 들어왔습니다. 나도 짜증이 났습니다. 순간적으로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무슨 일로 어디를 가는 것일까? 어쩜 글감이 될 수 있겠다 싶어 나이 드신 아저씨한테 물었습니다. "아저씨, 어디 가세요?" "여수로 놀러갑니다." "여수에 무얼 보러 가십니까?" "회 먹으러 갑니다." "거기가 어딘데요?" "여객선 터미널 회 타운에요. 나는 돔을 좋아합니다." "어디서 오셨는데요?" "오수에서요." 나는 책을 읽느라 그들이 승차한 역을 몰랐습니다. 글감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난 목적지 까지 짜증을 내며 갔을 것입니다. 글을 써야한다는 부담감은 있지만 글감을 찾으려고 하니 주변의 많은 것들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생겼습니다. 책을 읽는데 뒤에서 나를 부르기에 돌아보니 일행 중 한 아주머니가 하얀 절편을 권했습니다. 떡을 좋아하는 나는 덥석 한 입 먹고 싶었지만 고마움을 표시하고 점심약속이 있다면서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아주머니의 아쉬워하는 표정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이 모여 가나 궁금해서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동네 유지들끼리 간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농촌에는 동네 사람들끼리 음식을 만들어 같이 나들이를 하는 것을 보니 시골 인심을 느낄 수 있어서 흐뭇했습니다. 뒤에서는 음식 먹는 소리가 계속 들렸습니다. 난 속으로 걱정이 됐습니다. 몇 년 전 전주 시댁에 다녀오는데 옆에 앉아 가는 승객들이 삶은 밤을 먹고 난 껍질이 의자 밑에 수북하게 쌓였던 일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 기억이 떠오르자 나오는 쓰레기들은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해졌습니다. 한국철도공사가 민영화되면서 구조조정을 했는지 전에는 음료수나 과자, 커피 등을 가지고 다니면서 팔았는데 지금은 한 곳에 이용공간을 만들어 손님들의 편의를 제공하는 것 같았습니다. 객실이 많이 깨끗해졌습니다. 쓰레기를 다시 가져가든지 아니면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순천역을 지나자 어디쯤 오고 있느냐고 전화가 왔습니다. 가면서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떠날 때가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직장을 떠난 지 벌써 3년이 지났습니다. 얼굴 한 번 보려고 만나자면서 챙겨주는 동료들을 생각하니 고마웠습니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그들의 마음에 남아 있는지 나 자신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먼저 날 찾아주었습니다. 자주 생각나는 사람으로 남아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가끔이라도 기억나는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하자고 다짐해 보았습니다. 여천역에 거의 다 왔을 무렵 뒤에서 쓰레기봉투 찾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렇게 준비를 다 하고 왔구나 싶어 흐뭇했습니다. 그들보다 먼저 내리면서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즐거운 점심식사를 하고 머문 자리는 아름다울 것이라고. 내가 수필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20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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