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들의 가을나들이/윤석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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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들의 가을나들이
전주안골노인복지회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윤석조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나가자 싸늘한 공기가 몸을 움츠리게 하였다. 어젯밤 기다리던 가을비가 오락가락하더니만 오늘은 늦가을 날씨가 된 듯하였다. 우리 안골수필창작반원들과 행촌수필문학회원들이 함께 하는 행사는, 이번 가을문학기행으로 세 번째였다.
행촌수필문학회 회원들은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출신들로, 문학활동이 활발한 단체였다. 지도교수님은 열과 성을 다하여 수필을 지도하고 있는데, 우리 고장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수필계에서 주목받는 김학 교수님이다. 존경하는 교수님이 안골복지회관에서도 강의를 하고 있어, 우리 안골수필창작반 회원들도 자연스럽게 행촌수필문학회원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전주천변에서 서(徐) 선생님을 만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으로 갔다. 이미 대기하고 있는 차에 오르니 먼저 탄 두 분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리가 자리에 앉고 나서 평생교육원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문인들이 오르기 시작하였다. 금세 차속이 시끌벅적 하더니 만원이 되었다. 기다리던 회원님이 술병을 싼 보자기를 무겁게 들고 올라오자, 환영의 박수가 터지고 차는 출발하였다.
가로수의 노란 은행잎이 아침 햇살로 곱게 단장한 도심 거리를 빠져 나가자 실안개가 야산 기슭을 휘돌고, 땅바닥에 딱 붙은 어린 보리 잎들은 가을 햇빛으로 싸늘해진 몸을 풀고 있었다. 볏짚을 발효시켜 가축 사료로 만든 하얀 원통형 싸일러지가 너른 평야의 논머리마다 열두어 개씩 널브러져 있어 우리나라 축산업의 발전상을 설명하는 듯하였다. 짚가리는 없지만 어릴 때 그 주변에서 놀던 일이 생각났다.
고속도로 주변에 깊어가는 늦가을 경치가 아름답게 이어져 차창 밖에서 눈길을 뗄 수 없었다. 차가 어느새 구불구불 말티고개를 잘도 넘어가고 있었다. 법주사를 네댓 번 다녀왔지만 항상 이 길이었다.
51년 전 대학 2학년 때, 우리 반 친구들과 속리산 문장대를 처음 등반하였다. 전생에 문장대를 세 번 올라야, 죽어서 극락세계를 갈 수 있다는 이 지방의 전설을 들먹거리며 우겨대던 친구 덕이었다. 부릉거리며 검은 연기를 내면서 겨우 올라가던 버스를 타고 이 고개를 넘어 법주사를 구경했었다.
이튿날 친구들이 모두 문장대를 향하여 법주사 경내를 벗어나자, 등산로 주변에 운동화를 늘어놓고 신발을 바꾸어주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구두를 신고 왔던 친구들은 운동화로 바꿔 신고 올라갔다. 문장대 정상의 바로 밑에서 오르다가 미끄러져 내려오고 다시 오르다가 또 미끄러졌다. 다시 힘껏 기어오르자 먼저 오른 친구가 손을 잡아주어 겨우 올랐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문장대에 오르도록 손을 잡아 주었던 그 친구는 지금 하늘나라에서 무엇으로 소일(消日)하고 있을까. 그 친구는 지금 극락세계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이른 시간이지만 주차장에는 관광버스가 빽빽하게 줄지어 서있고, 법주사 입구관광안내소 앞에는 관광객들과 등산객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오리(五里) 숲길을 만드는 키 큰 떡갈나무 단풍이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떨어진 낙엽들이 밟혀 버스럭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일주문으로 들어섰다.
법주사 뜰에는 따뜻한 햇볕이 가득차고 관광객들로 시끌벅적한데, 금동미륵대불은 사람들을 모아 불법(佛法)을 설파하는 듯 우뚝 서 있었다. 관광객들의 틈 속에서 법주사를 찾은 기념 촬영들이 끝나자, 법주사에 있는 국보와 보물들을 찾아다며, 문화해설사의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절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북동쪽의 문장대를 바라보니, 우뚝 솟은 바위에 내 젊음이 서서 어서 올라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세조 임금이 가마를 타고 법주사에 행차할 때 늘어진 가지를 들어 올려주었다는, 정이품송(正二品松)이 법주사를 멀리서 지켜주듯 홀로 서 있었다. 우아(優雅)한 멋을 지녔던 그 소나무도 해충과 공해로 훼손(毁損)이 심하여,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이번에 와보니 임금님의 가마를 알아 본 그 가지가 없어진 같아 안타까웠다. 주변에서 장사하며 관광객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할머니의 농담은 우리들을 웃겨주었다.
아늑하고 호젓한 대통령의 별장이었던 청남대를 세 번째 찾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만들어(1983년) 완벽한 시설을 갖춤은 물론 4중 철책 경계로 관리하고 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20여 년간 87회 400여 일 머물렀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 이 청남대를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었다. 그 기념으로 청남대 입구에 5천 800(문의면 면민 수)개의 돌을 쌓아 돌탑을 만들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감사의 글이 쓰여 있었다. 돌탑은 그 자리에 서있으면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지금도 지키고 있다.
정문에서 본관에 이르는 도로(150m) 양 옆에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는 다복솔(60~70년생 34그루)은 어디서 옮겨왔는지 참 보기 좋았다. 주변의 울창한 숲과 대청호의 푸른 물, 다양한 정원수로 가꾸어진 청남대는 참 아름다운 곳이었다.
내부의 시설을 건성건성 보고 돌아 나와 옛날 들르지 못했던 오각정 쪽으로 걸었다. 대통령 내외와 가족들의 산책코스였던 길로 많은 야생화와 숲이 어우러져 있었다. 낮에는 호수와 산을 보고 밤에는 달구경으로, 가장 사랑받던 곳이었다고 한다. 오각정에서 본 대청호의 맑은 물과 주변 산들이 잘 어울렸다.
대청호를 돌아 나오는 구불구불한 길에서도 하얀 억새꽃들이, 푸른 물에 담긴 가을 하늘과 잘 어울렸다. 해가 저물었지만 대청호 주차장에는 승용차들로 가득하였다. 서 선생님과 둘이서 부지런히 댐 광장으로 올라갔다. 댐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을 닫으려는 순간 겨우 통과하여 발전소가 내려다보이는 곳까지 둑 위에서 걸었다. 장마에 맑은 물과 흙탕물로 나뉜 물이 둑을 가득 채우고, 둑 아래로는 흙탕물만 꿈틀거리며 내려갔던 5년 전이 떠올랐다.
드높은 하늘과 늦가을의 흥취(興趣)가, 문인들에게는 더없이 잘 어울리는 좋은 날이었다. 가로등의 불빛은 돌아가야 할 길을 재촉하는데 차창으로 보이는 조각달이 흘러간 옛 노래의 리듬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2008.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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