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정. 살타첼로 그리고 김연아/서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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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살타첼로 그리고 김연아
한국세무사협회 국제협력위원, 은퇴 목사 서호련
(올해는-- 1912년 손기정이 탄생한 99주년이고- 1919년 3.1에 발생한 기미년 3.1운동 86주년이며, 1936년 베르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이 우승한 75주년이다.)
역시 사람들의 마음은 통 한 것 같다. 연아의 승리로 온세계가 열광하고 일본열도가 숨을 죽일 때 필자는 손기정선수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 가 다음날 LA 타임스 보도가 나왔다. " 보았는가? 수천 개의 태극기의 물결을! 그는 일본의 아사다 마오를 철저히 뭉개버리고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에 앙갚음을 했다. 일제 시대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도 태극기기를 올리지 못 했던 손기정의 한을 풀었다“ 3.1절을 수일 앞둔 LA에서의 감격 이었다.
역사의 날 1936년 8월 9일 한국의 손기정은 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했다. 미 공개된 동영상에서의 당시 마라톤 생중계(오디오)의 실황은 다음과 같았다.
“여기는 올림픽 주 경기장의 결승선 지점입니다. 우리는 마라톤 우승자 일본선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12만 명의 관중들도 일어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습니다.우승자인 일본선수 ”손“이 들어서게 될 주경기장의 정문인 검은 문을 조용히 주시하고 있습니다.(손기정 선수가 들어오고 우승이 확정된 듯 보이자) 그 한국 대학생(Koreanischer student)은 세계의 건각들을 가볍게 물리쳤습니다. 이제 그가 엄청난 막판 스퍼트로 질주하며 들어오고 있습니다. 트랙의 마지막 직선 코스를 달리고 있습니다. 대단한 선수입니다. 최고의 힘을 지닌 천부적인 마라토너입니다. 1936년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손“이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은 마라톤 구간 내내 아시아의 힘과 에너지로 뛰었습니다. 작열하는 태양을 뚫고 거리의 딱딱한 돌 위를 지나 뛰었습니다.”
75년 전 베를린 오림픽 마라톤대회의 생중계 장면이다.
그러나 그의 가슴엔 일장기를 달았고 시상대엔 태극기 대신 일본국기가 펄럭였다. 나라를 빼앗긴 슬픔이었다. 그러나 그는 암울한 일제 강점 하에서 민족의 자부심을 일깨워준 영웅이었다. 그의 쾌거는 암흙 천지에 살던 조선인들에게 우리도 당당히 세계의 주역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겼다. 그 16일 뒤 8월 25일 경천동지 (驚天動地) 할 사건이 일어났다. 동아일보는 2면 전면에 손기정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워버린 사진을 싣고 한국 손기정의 승리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 하였다. 이 사건으로 동아일보는 폐간되었고 이를 계기로 민족의식에 불이 붙고 열화와 같은 항일 독립운동이 계속 전개되었다.
그 56년 뒤 1992년 스페인 바로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가 일본 모리시타를 제치고 금메달을 땄다.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면서 눈물을 흘린 황영조는 곧 관람석으로 뛰어가 손기정 옹에게 금 메달을 쥐어주었다. 손기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한 채 그를 껴안아 주었고 그들은 한참동안 눈물을 흘리며 포옹하였다.
베를린 시상대 위에서 일장기를 달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손기정 선수와 3위 남승룡 선수의 사진에 나와 있는 모습은 너무 슬퍼 보였다.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붙여진 일장기는 계수나무 가지에 덮여 보이지 아니했지만 남승룡 선수는 월계수를 받지 못해 그대로 일장기가 노출되어 있었다. 둘이는 슬픈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2위인 영국 하퍼는 기쁜 얼굴이었다. 남승룡은 그때 손기정의 계수나무를 부러워했다고 한다.
2002년 손기정 옹이 타계하자 독일의 5인조 클래시컬 재즈-세계적인 음악가들인 살타첼로가 ‘세기적인 비극의 맨’ -베를린 올림픽 승리자인 손기정을 추모하는 헌정음반 ‘그레이트 손(Great Sohn)’을 한국과 독일에서 동시에 펴냈다. 작곡가 페터 쉰들러는 당시 32km지점에서 자바라를 제치고 선두로 치고 나오는 장면을 격정적으로 표현한 창작곡-"위대한 손기정-마라톤맨" 과 마의 비스마르크 언덕이라고 불렀던 37km지점을 힘겹게 달리면서 가슴 아플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 청년의 한을 표현한 "위대한 손기정-외로운 주자(Lonesome man)“가 담겨져 있다. 그는 2001년 독일 언론인 슈테판 뮬러가 당시의 조선식민지 상황과 청년 손기정의 비애를 적은 그의 홈페이지에서 그의 슬픈 얼굴과 조선의 비극에 영감을 받고 이 곡을 창작하여 헌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 음반에는 우승 후에 일본 당국이 ‘크게 읽어’라고 욱박지르는 가운데 진행된 일본의 대외 홍보판 손기정의 육성 녹음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베를린 승리 74년 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의 연아는 당당히 세계 신기록으로 일본의 아사다 마오를 뭉개고 올림픽 승리자가 되었다. 2월 27일자 미국의 NYT는 " 김연아는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한국을 36년간 점령했던 일본의 경쟁자를 완벽하게 굴복시키고 승리자가 되었다‘고 보도했다.
한국인이면서도 태극기를 달지 못하고 통한의 일장기를 달고 일본인으로 시상대에 올랐던 나라 잃은 청년 손기정은, 밴쿠버의 시상대에 일본을 물리치고 태극기가 올라갈 때 전 국민이 외쳤던 조선인의 함성을 지하에서 듣고 있었을까? 3.1절을 앞두고 연아가 딴 금메달은 3.1 독립만세운동과 손기정의 베를린 우승과 함께 우리 한국민의 가슴속에 활화산으로 영원히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의 국운이 열리고 있다. 이제 우리는 결코 정신적으로라도 그 누구에게 나라를 빼앗겨서는 아니 된다.
(2010. 2. 27.시민신문 논설고문)
편집자 주:
본문에 나오는 독일 5인조 살타첼로는 스투트가르트 음대교수들로서 세계적인 음악가들이며 한국에서도 많은 공연을 하였고 한국의 아리랑 같은 주옥같은 민요와 가곡들을 재즈로 편곡하여 많은 한국인 팬들을 가지고 있다. 이들을 독일에서 한국어와 한국음악을 조언하고 함께 작업했던 서 엘리사가 필자의 딸이다. 그는 이대음대 대학원에서 한국음악을 전공했고 독일 스투트가르트 대학원에서 문화예술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월드컵 때 한국응원가를 작사(살타첼로 작곡)하여 한국네티즌들에게 널리 알려졌고 재작년 4월 세계 4대 박람회 중의 하나인 독일 하노바 세계산업박람회에서 무대공연을 연출하였다. 지금 독일에서 한국음악 공연기획가로 일하고 있고 남원 홍보대사이기도 하다. 남원서진여고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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