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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도 무심하시지/김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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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46회 작성일 11-02-23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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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길남 “울지마 톤즈” 영화를 보고 거룩한 인간애를 느꼈다. 한 번뿐인 삶을 남을 위해 바치고 떠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태석 신부는 자기는 모두 버리고 아프리카의 수단 사람만을 가슴에 안고 살았다. 일신의 안락만을 취하는 요즘 세상에 편히 살 수 있는 의사의 신분을 버리고 신부가 된 것부터 달랐다. 사제 서품을 받고 찾아 간 곳이 아프리카 수단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척박한 나라였다. 남부수단은 학교도 없고 병원은 구경할 수도 없는 곳이었다. 신부라면 먼저 성당을 세워 전도부터 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이태석 신부는 병원을 먼저 지었다. 아프면 참고 견디다 죽는 수밖에 없는 나라에 병원이 생겨 치료해 준다니 환자들이 구름처럼 모여 들었다. 100km를 사흘간 걸어 찾아온 환자도 있었다. 먼 길을 걸어왔으니 밤낮이 따로 있을까. 밤중에도 일어나 그들을 치료해 주었다. 전기도 수도도 없는 곳이라 수술에 필요한 밝은 불빛도 없고 냉동 저장해야 할 약품을 둘 곳도 없었다. 별수 없이 태양열로 발전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고 남은 전력은 마을을 밝히는데 썼다. 여유 있는 시간에는 80여 개 마을을 찾아다니며 치료해 주었다. 오도 가도 못하는 한센병 환자 마을을 찾아가 환부를 손으로 만지며 약을 발라 주기도 했다. 문드러진 발가락을 내어놓고 맨발로 다니는 것을 보고 발모양을 그려 신발을 만들어 신겼다. 그들은 처음으로 사람대접을 받아보고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이태석 신부를 하느님처럼 여겼다. 글자도 모르면서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마을 빈곳에 학교를 지었다. 지붕 먼저 세우고 벽돌을 찍어 벽을 쌓았다. 초․중․고등학교 과정을 두어 케냐에서 교사를 데려다 글을 가르쳤다. 손수 교단에 서서 우리도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다는 정신을 넣어주었다. 수학과 음악을 가르치고 악단도 조직하여 기쁨의 씨앗을 심었다. 설명서를 보고 악기 다루는 법을 익혀 가르쳤으며 우리나라 친지의 도움으로 단복도 만들어 입혔다. 수단 건국이후 처음으로 25인조 부라스밴드가 탄생하였다. 정부의 행사에도 초청되어 연주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2008년 10월, 수단 공동학교 후원금 모금을 위한 자선음악회를 열려고 모국을 방문했다. 친구의 권유로 종합검진을 했더니 대장암 말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그래도 뜻하는 일은 멈추지 않고 진행하였다. 자선음악회를 열었고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라는 책을 출간하여 기금을 마련했다. 항암치료를 16번이나 받으면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다. 자기의 병은 생각하지 않고 수단에서의 할 일을 잊지 못했다. 애석하게도 병이 호전되지 않아 2010년 1월 14일 하늘나라로 떠나니 48세였다. 종교와 직업, 세대를 떠나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그는 떠났다. 이태석 신부의 진한 삶의 향기가 가실 줄 모르고 메마른 사람들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었다. 하느님도 무심하시다. 그렇게 남을 위해 평생을 바친 분을 데려가다니……. 더 많은 일을 하도록 이 세상에 남겨두어야 할 것 아닌가. 이 영화를 보고 하느님을 원망했다. 무엇이 급해서 벌써 데려간단 말인가. 하느님은 없다고 말하고 싶었다. 혹시 하느님이 노망들지 않았나 싶었다. 못된 짓을 밥 먹듯 하는 사람은 놓아두고 하필 이 신부를 데려가다니……. 성스러운 사람은 하늘에서도 필요해서 일찍 데려간다는 말이 맞는가 싶기도 했다. 일찍이 아프리카에 가서 흑인들을 위해 평생을 살다 간 슈바이처 박사가 생각났다. 이태석 신부도 그와 같았다. 이런 분들이 있어 세상은 살아 갈만 하지 않은가. 남을 위해 일생을 바친 사람이 많을수록 더 좋은 세상이 되려니 싶다. 우리노래 “사랑해 당신을”을 눈물 섞인 우리말로 부르며 신부님의 영정을 들고 톤즈 마을을 행진하는 밴드부의 모습이 자꾸자꾸 떠오른다. ( 2011. 2.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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