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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음에/공순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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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25회 작성일 11-02-05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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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음에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공순혜 이게 웬일인가? 어제 오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내가 주사 바늘을 여기저기 꽂고 입원실도 아닌 밀폐된 낯선 공간에 누워 있다니, 어찌된 일인가? 우리는 자기 앞에 닥칠 한 치 앞도 모르면서 세상일을 다 아는 것처럼 살아간다. 세상사는 순간에 결정된다더니 내가 이 꼴이 될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어젯밤 119에 실려와 아들이 "어머니, 정환이에요!" 하는 말만 기억될 뿐 그 뒷일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온몸에는 깁스(Gips)와 붕대로 동여매어져 있었다. 내 옆에는 아들도 딸도 보이지 않고 낯선 사람들이 나를 감시하고 있었다. 나는 왜 여기에 이렇게 누워있을까, 아이들은 다 어디에 갔을까, 두렵고 무서운 생각이 들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나를 우리 아이들 곁으로 보내달라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나는 중환자실에 있었다. 그리고 아들은 내가 볼 수 없는 이곳 어디에서 눈물을 흘리며 나를 지켜보고 있었고, 딸은 밖에서 엉엉 울고 있었다고 했다. 상처투성이의 몸과 정신까지 잃어버린 내가 죽든지 아니면 불구자가 될 것 같은 두려움으로 아이들은 울고 또 울었다고 한다. 며칠을 꿈인지 생시인지 알지 못하는 세상을 지내고나서 좋은 입원실로 옮겨졌고 아이들이 옆에 있었다. 아들은 안도의 숨을 쉬었고, 딸은 여전히 눈물을 쏟고 있었다. 세상사가 순간이라지만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좌절과 분노와 아픔으로 신음하며 모든 일상사를 간병인에게 의지해야만 했다. 식사에서부터 화장실에 가는 일까지 남에게 의지해 살아가야하는 세상살이는 숨을 쉬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온갖 불만이 튀어나왔다. 왜 나를 살렸느냐, 차라리 죽었더라면 이런 추한 몰골의 식물인간 같은 꼴은 보이지 않았을 텐데 하며 아들을 원망했다. 딸은 날마다 끊임없이 몸에 좋다는 보양식, 과일 등을 날랐고 한의대 교수에게 내 증상과 성격을 자세히 말하고 처방을 받아 만든 값비싼 약을 주치의(主治醫)의 눈치를 보며 사정사정해서 가져왔다. 약을 먹으니 하루하루 다르게 힘이 나고 몸의 증상도 날로 좋아졌다. 주치의는 날마다 들러 잘 나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려고 주의사항을 곁들인 우스갯소리와 격려로 나를 웃기고 안정을 찾게 해 주었다. 내 간병인은 군산에서도 살았다 한다. 토요일 외출 일에는 자기 집에 가서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다 먹여주었다. 싹싹하고 영리한 간병인은 음식솜씨도 좋고 교통사고 환자만 5년간 간병을 해서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아프지 않고 빨리 나을 수 있는지 잘 알아서 나를 늘 편안하게 곁에서 손발 노릇을 해 주었다. 주(週)마다 사진을 찍어 확인하던 주치의는 6주가 되었을 때 환한 얼굴로 재수술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며 기뻐했다. 그리고 자기가 병이 나서 일주일간이나 병원에 나오지 못했다고 했다. 그동안 재수술을 하게 될까봐 얼마나 노심초사(勞心焦思)를 했던지 마음을 놓으니 힘이 다 빠진 모양이었다. 주치의는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8시간 이상 땀을 뻘뻘 흘리며 나를 뉘어놓고 칼을 대지 않은 채 뼈를 맞추었다고 한다. 그때 주치의인 동생의 효심(孝心)이 감탄스러워 딸은 많이 울었다며 또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는 복(福)받으신 분이라 꼭 정상인이 될 거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날마다 병실 문을 바라보며 하루빨리 주치의가 회복되기만을 기다렸다. 큰 아픔과 고통을 겪어보지 않고는 작은 일상생활에 감사와 기쁨보다 피로와 권태를 느끼기 십상이다. 나도 그랬다. 볼 수 있고, 생각할 수 있으며, 숟가락을 들어 먹을 수 있고, 화장실에 갈 수 있는 일상의 사소한 행동을 할 수 있게 된 요즘, 나는 너무 감사하고 이 글을 쓸 수 있는 이 순간이 더더욱 행복하다. 곧 있으면 배가 불러올 베란다의 군자란을 보면서 살아 있는 게 음에 기뻐서 마음이 설렌다. ' 아, 내가 다시 꽃피고 새 우는 봄을 맞게 되다니……!' (20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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