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가리 삼총사/서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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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가리 삼총사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서상옥
“투가리보다 된장 맛이 좋다.”
날개 치던 하얀 호랑이가 해가 저물자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아쉬움과 그리움만 쌓이는 밤! 어린 시절 시래기된장국에 꽁보리밥을 말아먹던 기억이 난다. 호박과 가지나물에 고추장과 무생채를 한데 비벼 가족끼리 나누어 먹던 정겨운 추억도 되살아난다. 문고리에 손이 쩍쩍 얼어붙던 추운 겨울날, 하얗게 쌓인 눈밭에서 썰매를 타고 눈싸움을 즐기던 추억이 영상처럼 떠오른다.
고희古稀를 넘어 희수稀壽를 바라보는 내 가슴에 봉선화 연정이 그립다. 연분홍 진달래가 피어나던 고향이 그립다. 골목을 누비며 팽이를 치던 친구들이 보고 싶다. 울밑에 곱게 피어나던 작은 꽃잎들의 속삭임소리가 노래처럼 가슴으로 여울져 온다. 그 맑은 노래를 마음껏 부르면서 살아가고 싶다.
지난해 세모에 서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밤에 웬 전화일까?
“나여! 나 술 한 잔 했지! 투가리 삼총사 모르겠냐?”
“왜 몰라?”
참으로 오래간만에 듣는 약간 탁한 목소리다. 너무 반가웠다. 친구들과 송년 파티를 마치고 옛 친구가 그리워 밤늦게 안부를 전한다는 내용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며칠 앞둔 때였다.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한글 쓰기만을 고집하셨던 시조시인 구름재 박병순 은사님을 모시고 간단한 사은회가 있었다. 그런데 실장이 오늘은 우리 반 투가리 삼총사에게 기념품을 증정한다고 하면서 우리 세 사람에게 예쁘게 포장한 선물을 주었다. 깜짝 놀라 펴보니 우리가 자취생활을 하면서 사용했던 수저가 아닌가? 이제는 자취생활도 졸업한다는 우정의 뜻이 담겨 있었다. 감격의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투가리 삼총사! 투가리는 뚝배기의 전라도사투리다. 붉은 진흙으로 빚어 오짓물을 입혀 다시 불에 구워 만든 질그릇이다. 오지그릇, 옹기, 또는 도기라고도 하는 토기다. 제주도에서는 독사발이라고 한다. 찌개를 끌이거나 설렁탕 따위를 담그는 그릇이다. 투가리는 도자기의 어머니다. 옛 조상들의 얼과 정이 깊숙이 서려 있는 사랑의 도가니다. 투가리에 얽힌 속담도 많다. “투가리보다 된장 맛이 더 좋다” “투가리 깨지는 소리” “나무 뚝배기가 쇠 양푼 되나” “뚝배기춤이 나온다” 모두 투가리가 예쁘지 않은데서 나온 속담들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생활이 어렵고 교통이 불편하여 자취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비록 고향은 다르지만 한 반에서 공부하는 사이에 뜻이 맞아 조그마한 방을 얻어 자취생활을 하면서 3년 동안 지냈다. 차디찬 구들방에서 새우잠을 자며 머리를 싸매던 날이 엊그제만 같다.
익산역 뒤에는 검은 석탄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기관사들의 눈을 피해 석탄을 몰래 훔쳐 밥과 국을 끓이고 방을 데우기도 했었다. 주말마다 어머님들께서는 번갈아 가며 먹을 양식을 가져 오셨다. 멀리 김제군 진봉면 망해사 마을에서 외아들 반찬거리를 가지고 걸어오시는 어머님도 계셨다. 생각만 해도 고마우신 어머니! 머리가 허옇던 그 어머님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찡해진다.
옛날 우리 부모님들의 교육열은 대단하셨다.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도 오직 자식들을 위한 희생정신은 바로 살아있는 교육이 아니었던가? 물질문명이 발달한 현대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했다. 문교행정이 아무리 바뀌어도 입시 제도를 비롯해서 교육이 잘되어 간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존경하는 스승도 없고 사랑하는 제자도 없다는 교육의 현주소가 한심스럽다. 아무쪼록 윤리도덕을 바탕으로 하는 홍익인간의 교육이 올바로 이루어졌으면 한다.
저마다 가는 길이 달랐다. 서울에 사는 친구는 광주에서 원호청장을 지냈고, 군산에 사는 친구는 교도소에서 만년을 정리했다. 큰 야망이 없었던 나는 농림부 산하기관에서 근무하다 학교로 옮겨 교단에서 막을 내렸다.
이제 노년기를 맞았다. 늦게나마 내 그리운 본향을 찾아가듯 문학이라는 글밭에 시와 수필의 씨를 심어 열심히 가꾸고 있다. 볼품없는 그 질박한 투가리 화분에 한 그루 난蘭을 심어 고운 꽃을 피우고 싶다. 난蘭처럼 그윽한 향기를 내뿜는 아름다운 삶이 되었으면 한다.
(2011.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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