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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씨앗/이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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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48회 작성일 10-12-17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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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씨앗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이 신 구 희망의 씨앗은 절망과 두려움 속에서, 또는 수많은 상처 속에서 싹튼다. 꿈을 이루는 분들은 수많은 상처에서 성장을 찾고, 두려움을 딛고 희망을 키워 왔다. 내가 어렸을 적 외롭고 두려울 때면 같은 처지로 가난하고 외롭게 살아가는 영구 형을 생각하였다. 형은 먼 친척이었지만 나보다 5살 연상으로 초등학교만 나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의 본보기로서 존경의 대상이었다. 비가 와서 일을 나가지 못하는 날이면 싸리문을 밀었다. 불러도 대답이 없기에 되돌아 오려 했는데, 인기척이 나서 돌아보니 방문을 열고 들어오라고 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창문은 담요로 가려놓고 방안엔 등불을 켜 놓았었다. 어린 나를 무척 예뻐해 주셨던 형은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공부하면서 나에게도 많은 용기를 주셨다. 나야 그래도 군대간 형님 한 분이 있고, 가난을 이겨내고 꿈을 갖도록 도움을 주는 엄마와 누나가 있었다 하지만 형은 병든 가족을 돌봐야 하는 처지였다. 시계도 없는 때였지만 낮이건 밤이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모든 창을 가리고 공부하며, 심지어 요강을 한 구석에 덮어놓고 용변을 보는 등, 시간을 무척 아끼는 것 같았다. 잠시지만 공부하는 요령, 시간 관리, 희망과 목표에 대하여 이야기하다가 돌아온 적이 있다. 그 뒤 초등학교 학력밖에 지니지 못한 그 형은, 보통고시에 합격하고, 체신청을 거쳐 검찰청에 근무하면서 계속 공부했다. 생활이 곤란한 형은 들판에서 자운영과 쑥을 뜯어다가 쌀겨를 섞어 개떡을 쪄 먹고, 변비로 고생하기도 했고, 겨우 밀가루를 구해서 멀건 풀떼죽을 몇 끼 먹으니, 뱃속이 편할 리 없어 변소에 자주 갔었다. 그 무렵 고시(高試)응시 2교시에 살살 아프던 배가 꾸르륵 소리를 내더니, 와락 쏟아지는 설사로, 시험을 포기하고 뒤통수에 싸늘한 눈총을 맞으며 나온 적도 있었다. 그 뒤 체신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고등고시 예과에도 몇 번 통과했지만, 시험을 통해 법원 사무직으로는 최고 직위를 거쳐 퇴직한 영웅적인 인물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가슴을 때리는 슬픔이, 작은 보람과 성취로 치유되었다는 점이다. 절망의 늪은 실낱 같은 희망에서 힘과 용기를 얻고, 참기 힘든 환경을 과감히 헤쳐 나가는 용기는 한 가닥의 마음에서 싹텄다. 나도 살면서 두려움과 외로움을 느낄 때마다 그 형을 생각하며 견뎠었다. 미국 아틀란타 야구장의 구두닦이 흑인 소년이, 야구공은 온통 실로 꿰맨 그 상처 때문에 굽이치며 멀리 빨리 날아간다는 사연을 듣고, 자신의 불우한 환경을 야구공과 비교하며, 상처는 부끄러운 자국이 아니라 성장의 자국임을 깨달아 ‘코피 안난 날’이 없이 피나는 노력으로 7대 유엔 사무총장이 되었고,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가나의 ‘코피 아난’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감동적이었다. ‘환한 웃음의 노인(商標)’을 볼 때마다 65세에 고물차 한 대로 닭튀김 장사가 되어 꾸준한 연구로 새 맛을 창조하여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KFC)’ 체인점을 선물한 KFC의 창시자 커널 센더스의 그 정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려운 처지를 큰 영광으로 바꾼 순간의 예지와, 굽히거나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 입지적인 인물들을 생각하며 힘과 용기와 희망을 갖고 일어선다면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왜 그렇게 추웠고, 콧물도 침도 많이 흘렸던가? 항상 콧물 흐른 자국이 남아있었고, 손등 발등은 때가 더덕더덕 찌고 쩍쩍 벌어졋던 기억이 난다. 더운물로 씻고 씻어도 금방 그랬다. 그 대표적 인물 칠규가 육일목재소 사장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초등학교 몇 학년 때였던가, 수업 시간 중 영양실조로 교실바닥에 넘어져서 집으로 돌아간 뒤 일주일 동안 학교에 나오지 못했던 칠규가 졸업 후 대관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몰랐다. 그런데 말끔한 양복을 차려입고 커다란 쌍기통 오토바이를 몰고 내 앞에 나타났다. 헤어진 지 30년만이었다. 가정사정으로 초등학교 졸업 후 떠돌다가 목재소에서 심부름꾼으로 일하던 그는 성실성 하나로 기술자들의 사랑을 받고, 전문적인 기술을 모두 전수받아 그 분들이 나이들어 퇴직하자 총 감독이 되고 사장의 외동딸과 결혼하여 그 사장자리를 물려 받았단다. 항상 겸손한 그는 학력도 없고, 재주도 없으며, 언변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저 성실성 하나로 모든 이의 사랑을 차지하고 그들의 권유로 야간 중고교를 거쳐 한국방송통신대까지 나온 최고의 기술자요, 경영자며, 덕망가인 사장이 되었다. 수십 년간을 아침 6시에 일어나 11시에 잠든다고 하는 육일(6․11)목재소 간판은 사장님의 근무시간이었단다. 모든 여건이 칠규보다 좋았던 나는 그 동안 무엇을 했던가? 그렇다. 때늦은 후회지만 틀림없이 ‘성실성’ 하나에 가는 길이 엇갈렸구나 싶다. 나폴레온 힐 (1883-1970)은 ‘우리에게는 가난, 건강 상실, 늙음, 비판과 질책, 사랑 상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상존한다면서, 이를 극복하는 길은 끈을 놓지 않는 희망과 기대하는 미래의 가치에 있으며, 두려움이란 기대하는 일이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 마음에서 생기는 현상으로 그 두려움은 간절한 희망에 대한 씨앗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중에 두려움과 절망 그리고 슬픔은 항상 따라 다닌다. 만약 그것이 없다면 희망도, 기쁨도, 성취도, 용기라는 단어도 없으리라. 그래서 희망의 씨앗은 두려움, 절망, 슬픔 속에서 작고 실오라기 같은 가닥으로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런 희망이 있기에 행복하고 가슴 벅찬 환희를 품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리라. (2010.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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