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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태우며/김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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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64회 작성일 10-12-14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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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태우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김세명 동인지 원고 청탁을 받고 이메일로 원고를 송고하였다. 특별한 일이 아니고 해마다 여러 동인지에 기고한 경험이 있다. 책이 나올 때까지는 출판사 담당자뿐 아니라 여러 번의 교정을 거쳐 최종 승인이 나와야 출판에 들어간다. 그런 과정을 알고 있는 터이고 두 번이나 개인 수필집을 상재한 경험도 있다. 그간 나의 작품이 크게 오류된 적도 없고 편집하는 사람들을 믿기 때문에 책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동인지가 출판되어 설레는 가슴으로 나의 작품을 찾아 읽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제목부터 오자가 나오고 말았다. <가을을 태우며>를 <가슴을 태우며>로 글자 한자를 오타한 것이다. 나는 더 이상 읽어 볼 기분이 나지 않았다. 누구나 동인지를 받으면 자기 글부터 읽어 보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책은 이미 천부가 출판되어 납품이 된 상태다. 나는 진짜 가슴을 태울 수밖에 없었다. 출판사 담당자에게 이 사실을 통고하니 오자가 난 것이라고 미안해 했다. 글자 한 자가 이렇게 내 가슴을 태우다니, 내가 아는 문인들이 책을 읽어보고 전화로 지적할 때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내가 가슴 태울 일이 있나, 왜 하필이면 <을>을 <슴>으로 바꿔 내 가슴을 태울까? 수필 내용을 조금이라도 읽었다면 그런 실수는 없었을 텐데 아쉽다. 가을을 태우며 김세명 아침에 낙엽을 긁어모아 태우는 일은 즐거운 일과다. 내 집 울안에서 낙엽을 태우는 것은 나의 가을을 태우는 일이다. 등나무 아래에서 단풍과 감나무 잎새까지 쓸어 모아 마당 한 구석에서 성냥을 그어 댄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기 속에서 봄날의 아지랑이가 보이고, 춤추는 불꽃에서 여름의 작열하던 태양이 보인다.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주어 가족들과 웃음꽃을 피우게 해주던 등나무도, 감꽃을 실에 꿰어 손자의 꽃목걸이를 만들어 주던 감나무도 제 임무를 완수하고 한 잎 두 잎 떨어진 그 잎새들을 밟으면 그 소리가 마치 여름날 소낙비 소리를 연상케 한다. 그들을 태워 화장해 주는 건 당연한 나의 임무다. 낙엽은 잠시 불기를 머금고 꽃처럼 피었다가 푸른 연기로 사라진다. 투닥거리며 타는 소리가 여름날 천둥소리처럼 장엄하다. 봄에 희망으로 돋아 꽃을 피우고 여름날 풍성한 푸른 이파리들은 간데없고 투박한 낙엽이 되어 흩어진다. 한 줌 미련도 없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려는 낙엽의 귀소본능에 잠시 마음이 숙연해 진다. 낙엽을 태우는 냄새는 마치 커피향처럼 머리를 맑아지게 한다. 그 냄새에는 어떤 공해도 없다. 마당에 서서 파란 불꽃과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지난날들이 떠오른다. 이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20여 년 동안 해마다 이런 행사를 하다 보니 이 가을을 태우는 일은 나와 낙엽과의 장엄한 의식이 되었다. 그들의 흔적인 재는 화단의 정갈한 곳에 묻어줌으로서 모든 의식이 끝난다. 한 줌의 재라도 바람에 흩어지면 안 되기에 정성껏 묻어준다. 한 해에 있었던 일신상의 일들이 불꽃처럼 타올라 저 높은 가을 하늘에 고한다. 내 생애에 또 한 번의 가을을 태우고 있다. 보잘 것 없는 내 집 울안에서 일이다. <중략> 글자 한 자의 오자가 내 가슴을 이렇게 태운 적은 없었다. 왜 하필이면 제목에서 오자가 나왔을까? 생각할수록 머리가 복잡하다. 출판사 직원의 입장에서 보면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책을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공력이 들것인가? 책은 이미 출판되었는데 더 이상 문제삼지 않기로 했다. 시정될 수도 없는데 직원만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 번 생각하였다. 글의 제목은 중요하기 때문에 <낙엽을 태우며> 하려다가 내 생애의 또 한 번의 가을이 가는구나 하는 생각에서 가을로 고친 것이다. 활자 한 자가 이렇게 내 가슴을 태운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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