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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챙이 숟가락/이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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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54회 작성일 10-12-0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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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챙이 숟가락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이의민 달챙이 놋수저가 작업을 하느라 소리를 지른다. 평소에는 수저 친구들 축에 들지도 못하고 살강 후미진 곳에서 숨도 크게 못 쉬고 납작 엎드려 사는데 어머니께서 고된 일은 꼭 나를 시킨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듯 못난 수저인 나는 집안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며 살강을 지키는 달챙이 숟가락이다. 오늘 아침에도 검정무쇠 솥에 장작을 때어 아침밥을 짓고 밥을 퍼낸 뒤 나더러 누룽지를 훑으라고 하니 깍깍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다. 달챙이 놋수저는 1/3은 닳아 없어지고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있다. 잡곡밥 누른 깜밥을 훑어 찬장에 넣어놓으면 학교에 다녀온 아이들이 먹는다. 어머니는 광주리에 점심을 이고 막걸리 주전자를 한 손에 든 채 조심스럽게 논으로 나가니 저만치서 아버님이 마중을 나오셔서 받아 가신다. 그 시절 배고프게 살아도 나락을 베어 논두렁에 가리를 쳐 놓을 때는 그걸 바라만 보아도 배가 불렀다. 어머님은 줄줄이 7남매를 낳고 고된 농사일을 해도 힘드는 줄 모르고 아이들 크는 재미로 달챙이 살림살이를 하면서 살아간다. 가을일이 끝나고 동네 방앗간에서 방아를 찧어 제일 먼저 쌀 다섯 가마니를 소달구지에 싣고 동네 끝머리에 있는 주막집으로 가져 간다. 그런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머리에 쓴 흰 수건을 벗어 여기저기 먼지를 털면서 한숨을 쉰다. 죽어라 농사를 지은 다음 첫 방아를 찧어 주막집으로 보내는 심정, 소달구지 뒤를 물끄러미 돌아보며 허망한 마음을 참느라 무척 애를 쓰는 어머니의 눈가에는 물기가 돈다. 올겨울 지나고 나면 내년 봄 춘궁기에는 어떻게 살라고 1년 내내 외상 술을 먹고 쌀로 외상을 갚는 아버지를 한탄하시는 어머니. 어머니는 근동에서 길쌈 잘하고 얌전하다고 소문이 난 분이시다. 밭에 무명을 심고 키워 따다가 목화씨를 빼내 무명실을 뽑아 베를 짜는 것은 보통이고 누에를 쳐서 한 잠 두 잠 재워 올려 누에가 고치를 만들면 그걸 뜨거운 물에 담그고 물레를 돌려 명주실을 뽑아 명주실을 빼내 베를 짠다. 명절 때 가지각색으로 물들여 집안 식구들의 옷을 지어 입히던 시절이었다. 때때옷을 입고 동네 고샅을 헤매는 우리를 보고 흐믓하게 웃으시며 달챙이 인생을 살아오신 우리 어머니, 그 시절은 요즘 시대와는 달리 여자들은 못하는 일이 없었다. 날씨가 차가운 어느 날 함박눈이 하염없이 내렸다. 달챙이 수저가 어머니 손에 끌려가 오늘은 통통하고 길쭉한 배추 뿌리의 껍질을 벗기는 작업을 한다. 어머니는 배추뿌리의 껍질을 벗기면서 올겨울은 많이 춥겠다고 하시며 혼자 중얼거리셨다. 배추뿌리가 길게 깊이 들면 그해 겨울이 춥다고 한다. 달챙이 숟가락인 내가 주로 하는 일은 깜밥 훑는 일과 무나 감자 등 껍질 긁어 벗기는 일이다. 배추뿌리를 다 벗긴 뒤 한참 있다가 팥을 섞은 배추뿌리 삶은 걸 한 쟁반 담아 우리 형제들 앞에 놓으시며 먹으라 하셨다. 눈이 오고 추운 날, 배추뿌리는 그 시절 간식거리로는 일미였다. 달챙이 삶을 살아오신 우리 어머니의 옛날이 오늘따라 생생히 떠오른다. (201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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