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문학관을 찾아서/정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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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문학관을 찾아서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장영
행촌수필문학회는 충청북도 옥천군 일원으로 가을문학기행을 다녀왔다. 쾌청한 늦가을 날씨에 상쾌한 모처럼의 나들이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나 할까? 옥천은 역사적 인물 조헌趙憲(1544~1592), 육영수陸英修(1925~1975),정지용鄭芝溶(1902~1950?)등을 부각시켜 관광자원화 했었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이 정지용문학관이었다. 문학에는 아는 것이 없어 문인 정지용은 광복 전후 한 때의 시인정도로 알았으나 이번에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더욱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자연환경과 고적뿐만 아니라 인적 자원마저도 관광사업으로 연계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정지용 시인은 1902년 음력 5월 15일 옥천군 옥천면 하계리 40번지에서 부 정태국, 모 정미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용이 연못에서 승천하는 태몽으로 아명을 지룡(池龍)으로 부르다가 음을 따 지용(芝溶)이라 불렀다. 세례명은 프란시스코. 옥천공립보통학교, 서울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도쿄 도시사(同志社)대학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휘문고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1922년 <풍랑몽>을 쓰면서 시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가톨릭 청년> <문장>등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휘문보고 교원을 거쳐 광복 후에는 이화여자전문대학 교수, 경향신문 주간, 조선 문학가동맹 중앙 집행위원을 역임하였다 한다.
아쉽게도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북한 인민군에 의해 정치보위부에 구금되었다. 이후 납북되어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정확한 행적은 알 수 없고 그의 죽음에 대해 소문과 추측만 떠돌았다. 다만 시집으로 <정지용 시집><백록담><지용 시선>, 산문집으로 <문학독본> <산문>등을 남겼다한다.
민족시인 지용은 불과 140여 편의 작품들을 남겼지만 거기에는 시골(전통)과 도심(근대), 동심(동요)과 구원(종교시), 바다(이미지즘)와 산(동양정신) 등이 빛나는 언어로 완성되었다. 절제된 감정과 사물에 대한 정확한 묘사, 그리고 섬세한 언어감각으로 빚은 시편들을 통해 그는 한국현대시의 성숙에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했다고 한다. 잘 알려진 시, 가곡으로 불린 <고향>은
고향에고향에 돌아와도/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메끝에 홀로 오르니/흰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고향에 돌아와도/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문학관은 단층으로 전시내용은 지용 연보, 지용의 삶과 문학, 한국현대사의 흐름과 정지용, 지용 시인의 시, 산문집 초간본이 전시되었다. 문학체험시설로 영상실, 문학교실로 강좌, 시 토론, 세미나, 문학 동아리활동 공간, 단체관람객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는 열린 문학 공간 등 시설이 마련되어있었다.
놀라운 것은 복원된 생가를 보아하니 일제침략(舊 韓末) 뒤 그리 넉넉지 못한 살림에 시골에서 서울에 있는 휘문고보를 거쳐 일본 도쿄 소재 대학까지 수학하게 한 아버지의 용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할아버지가 한약방을 경영했다지만 어려운 가운데 그런 선각(先覺)된 학성(學誠)이 없었다면 옥천의 명예를 드높일 오늘의 정지용이 있을 수가 있었을까?
더욱 정지용 시인은 일제 때에도 민족적 긍지를 지켜낸 민족시인이었다 한다. 전국문인들이 자치단체와 지방민들의 성의와 노력의 결과 1988년에서 납북(월북?)인사에서 해금되었다. 이어 지용회(芝溶會)를 결성하고 그해 5월 제1회 지용제(芝溶祭)를 시작하여 해마다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이어 지용탄생 100주년(2002) 기념행사도 성대히 치렀다. 더욱 문학의 발전을 위해 지용문학상과 신인발굴을 위해 신인문학상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참고로 제1회 지용문학상은 박두진 시인에게 주어졌고 이어 수상자가 15명에 이르렀다. 또 첫 신인문학상은 김철순 시인이 받았다.
정지용의 문학자취는 문학관을 비롯해서 생가, 옥천(현 죽향초교)보통학교, 문화의 거리, 장계관광지를 연계 문학 답사코스로 구체화시키고 있었다. 타지방에서도 다방면에 걸쳐 이와 같이 미 발굴인사가 있다면 발굴하고 재조명해야 할 일이다. 땅속 깊이 묻힌 보석광(寶石鑛)은 캐어내 다듬고 갈아야 빛나는 보물이 되지 않겠는가?
문학기행으로 다녀간 전국의 수많은 답사문인들 한국의 문학발전에 꼭 기여하고 좋은 작품을 많이 남겨주기 바란다. 짜인 짧은 일정 때문에 다음 답사지인 육영수 생가를 서둘러 찾아가야 했다.
(2010.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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