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경/정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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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心境)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장영
내 나이 망구(望九)를 바라보니 이제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역시 고령화 사회의 일원임을 새삼 실감케 된다. 근래 대중교통기관을 이용하기가 예전 같지 않다. 살아오면서 언제 어디를 가나 주변을 의식하거나 제약 없이 자유로웠지만 남의 눈총을 받을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정년퇴임을 하니 경로우대증이란 증명이 나와 한때 대중교통인 버스만 제외하고 동물원, 박물관, 공연장, 공원, 기타, 입장료가 할인 혹은 무료혜택을 주어 국가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 바 있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경로 아닌 천대의 느낌을 받게 되었다. 시내에서는 느끼지 못했지만 시골 장날 버스를 탔을 때였다. 노인이 타는 데는 아무래도 동작이 느리고 장날이라 가족들의 잔심부름 때문에 보따리가 많으니 타고 내리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운전기사는 시간이 돈이다. 착한 기사들도 많지만 가끔 기사들의 핀잔이 따랐다. 심지어 노인들만 버스를 기다리면 정차도 하지 않고 그냥 가버리기도 하였다. 늙은이가 천덕꾸러기란 모멸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한때 정부에서 예우로 승차권을 배분하고 월정액의 교통비를 지급하더니 이 역시 기초연금제가 생기면서 사라졌다.
똑같이 요금을 내니 노소간에 차별이 없어야 하고, 비록 시간이 돈이라지만 이해하고 안전사고 예방에 유념해야겠다. 경로석이란 것이 문제다. 다행히 빈자리가 있으면 좋은데 없을 때는 별수 없이 젊은이들 옆에 서있게 마련이다. 노인에 대한 예우로 즉시 양보를 받으면 다행이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피곤한데 재수 없이 “하필이면 늙은이가 내 옆으로 와서 섰어!” 할까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이게 기우(杞憂)일까?
택시를 타는데도 늙은이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일행이 있고 짐이 많을 때, 더욱 가까운 거리일 때는 요금보다 미안한 마음부터 드니 어쩌랴! 대부분의 기사들은 손님을 왕으로 모시고, 최대한의 예우를 다하기 마련이다. 혹시 핀잔은 없어도 “재수 없이 하필이면 늙은이가…….” 하는 심경이 되는 게 늙은이들의 병일까?
산업사회의 민주정치는 선거에서 득표와 연결된다. 그러니 인구가 많은 도시중심의 정치에 치중하게 되니 경로정책도 예외는 아니다. 수도권의 주민은 G _ Pass 교통카드로 전철을 자유로이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 반면 시골노인들은 주민등록증을 꼭 지참하여 제시하고 보증금 5백 원으로 1회용 승차권을 매입하고, 하차하여 환불을 받도록 하고 있다. 발매기 조작에 서투르니 승차권발급도우미들의 노고에 감사해야 한다. 하지만 노인들은 익숙하지 못해 거의 깜박 잊고 환불을 포기하는 수가 있다. 이런 번거로움을 주니 결론적으로 수도권노인들은 정식무임승차예우요, 시골노인들은 유료로 차별경로정책이다. 시골노인이 수도권에 1년에 몇 십 번이나 갈까? 늙어도 촌놈 대접을 면하기 어렵다는 심경이다. 근래 어느 신임 총리는 무임승차예우를 과잉복지운운 했다가 말썽이 되자 그런 취지가 아니라며 해명에 급급했다. 재산이 있고 좋은 팔자의 부유층이 자가용을 두고 어찌 구차하게 전철을 탈까?
모처럼 탄 전철도 노약자, 장애우, 임신부 등의 좌석을 마련해 놓고 있으니 승차에도 제약을 받고 있다. 노약자석이 비어 있을 때는 다행이다. 가끔 얌체족도 있으니 어찌하랴! 예절과 도의는 가정, 사회교육문제로 기성세대의 일원으로 자책감이 앞선다할까! 자유로이 아무 칸이나 탔을 때 역시 노약자예우로 양보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만약 노약자 지정석에 가지 않고 "하필이면 내 앞에서 서 있을까?”라고 생각한다면 설 자리가 없다. 스스로 민망해하고 자리를 꼭 양보해 달라는 것도 아닌데도 불안에 빠져든다. 하기야 세상이 너무 많이 변해서 가끔 어른 아이를 몰라보고 처세하는 이가 생겼으니 오죽하면 '노인학대신고처'까지 생겼을까?
젊은 시절 노인을 대할 때 솔직히 좋은 인상이 아니었는데 내가 그 신세가 되었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고령화 사회를 재촉한 것은 젊은이들의 공동책임도 있다. 시집장가를 안가던가, 부담스럽다고 주어진 본능과 의무를 버리며, 극단적 개인주의와 유아독존의 삶을 살려하니까 그렇다. 이제 싫건 좋건 노소가 더불어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누구나 장수(長壽)를 구가하게 되었다. 지난날은 나이가 들면 가급적 바깥나들이를 삼가고 집안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예법이요 상식이었다. 하지만 이제 건강유지를 위해서 바깥나들이를 권장하고 싶다. 스스로 오라는 곳은 없어도 부지런히 찾아 다녀 건재를 과시해야 할 것 같다. 영원한 젊음은 없고 모든 게 순간이다. 늙은이를 구차하게 여기지 말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심경으로 살아간다면 보다 밝고 명랑한 고령화 사회의 삶이 되지 않겠는가 싶다.
(2010.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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