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초/장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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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초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장지연
반세기 전에 쌀 한 가마니를 주고 산 벽시계는, 오늘도 쌀값을 치르느라 째깍째깍 숫자판을 더듬으며 동그라미를 그린다. 때론 슬그머니 쉬어가려고 하지만, 주인 할아버지는 “밥이 떨어졌구나, 밥 줘야지!” 하며 쇠갈고리 같은 주물을 숫자판에 꽂고 우측으로만 돌리다가 “이제 안 돌아가는 걸 보니, 한참 가겠구먼,” 하곤 꽂았던 쇠붙이를 조심스레 거두고 문을 닫는다. 하루쯤 쉬어가게 못 본 척하실 것을, 소 불알같은 시계추가 흔들흔들 하며 늘 그 길만 오락가락한다.
멈출 수 없는 운명을 안고 똑딱똑딱 동그란 얼굴에 아빠 손, 엄마 손, 애기 손이 교통신호를 보내며 나를 빤히 바라본다. 전자수첩에 빼곡히 쓰여 있는 스케줄들, 시계 따라 쳇바퀴를 돌다보니 난 이미 로봇트가 되어버린 건 아닌지? 12란 숫자밖에 모르는 시계의 지시에 쉼표마저 잊어버리고 비틀거린다.
며칠 전 친구 따라 시계방엘 갔다. 삼면을 장식한 각양각색의 시계들이 앙증맞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친구는 늙으신 부모님을 위해 시간이 표시되는 디지털 벽시계를 구입하였다.
“밤에도 볼 수 있어 좋아하시겠다.”
“세상 좋아졌어. 시계가 없을 때는 어떻게 살았을까?”
“세상 편하게 살았겠지, 해가 뜨면 날이 새는 것이고, 해가 중천에 뜨면 한낮일 테고, 아, 해시계가 있었잖아?”
“해가 안 뜨면?”
“호호, 배꼽시계!”
그럼! 그럼! 맞장구를 치며 하늘을 바라보니 낮달이 구름 속에서 술래잡기를 하며, 그날처럼 몰려다녔다.
오랜만에 세월 저쪽에 우뚝 서 보았다. 부잣집으로 시집간다는 순이 언니가 결혼예물로 시계를 받았다는 소문에, 건너 마을 사람들까지 모여들었다. 어른들 틈으로 난생 처음 손목시계를 보고, 나도 빨리 커서 시집가야겠다며 깨금발을 딛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밤이 되면 첫닭 울음소리를 듣고 제사를 지내며, 세 번째 수탉이 여명을 알리는 홰를 치면 부지런한 사람은 거름을 지고 들녘으로 나갔다. 동네 우물터에는 새벽을 퍼 올리는 두레박소리가 고요를 깨고, 집집마다 굴뚝에선 연기가 피어오르곤 했었다.
언젠가 청년들이 암탉 서리를 해간 날, 짝을 잃은 수탁의 침묵에 날 새는 줄 모르고 자버려 아침밥도 못 먹고 학교에 간 적도 있다. 더러는 불편함과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넉넉한 마음으로 오순도순 살던 때가 진한 그리움을 싣고 슬금슬금 지나간다. 내가 태어난 시각은 ‘일찍은 점심때’라고 대충 알고 있지만 아무쪼록 잘살고 있으니, 시계가 없어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닐 텐데, 하루에도 몇 번씩 시계를 바라보는 해바라기가 되어버렸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스포츠에선 0.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좌우된다. 정밀도가 없는 세상에선 그 누가 정의를 내리겠는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며칠만이라도 시계를 떼어버리고, 달과 해를 바라보며 도랑물이 흘러가듯 살고 싶은 건 잠 못이루는 이 밤 나만의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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