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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있어야 건너지/김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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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34회 작성일 10-10-2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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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있어야 건너지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길남 몽고족이 원나라를 세워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으로 발전시켰다. 중국은 물론이고 중앙아시아와 유럽까지 세력을 넓혔다. 고려가 마지막으로 남았다. 기마군단을 이끌고 쳐들어왔으나 강화도로 피신한 왕을 굴복시킬 수가 없었다. 바다가 없는 나라라 물을 무서워했기 때문이다. 바다 건너 빤히 보이는 고려궁을 두고도 속수무책이었다. 건너고 싶은데 다리가 있어야지……. 사람들은 수렵사회에서 농경사회로 발전하면서 정착생활을 하게 되었다. 모여 살아야 농사짓기에 편리하고, 적을 막을 수 있으므로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이웃마을을 오가며 길이 생겼고, 시냇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아 건너다녔다. 이런 다리는 여기저기 많아서 지금도 다리이름을 딴 마을 이름이 남아있다. 충청남도의 삽다리, 전라남도의 학다리, 전주의 도매다리 등이다. 다리는 마을과 마을끼리 소통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요긴한 시설이었다. 처음에는 시냇물에 나무를 걸쳐 다리를 놓아 건넜을 게고 자주 오고가려니 고정하여 위에 흙을 덮어 튼튼히 했을 것이다. 돌을 주워 징검다리도 놓고 좀 큰 강은 기둥을 세우고 나무를 걸쳐 놓아 다니기 좋게 했으리라. 나무다리가 홍수가 나면 쉽게 무너지니까 돌로 튼튼히 놓기도 했다. 오늘날까지 전하는 돌다리는 전남 순천의 선암사 홍교, 충북 진천의 농다리, 충남 논산 채운의 원북다리 등 문화재가 많다. 다리를 놓고 고치는 일은 마을의 큰일이었다. 우리 마을은 옛날에 장이 서던 곳이었다. 만경강 지류 마산강을 건너야 오갔는데 그 다리를 초남다리라 했다. 비가 많이 오면 자주 무너지니 튼튼한 다리를 놓아야 했다. 많은 돈이 들어가므로 자금을 마련하려고 풍물을 울리며 여러 마을의 부자를 찾아다녔다. 내가 어렸을 때 풍물을 치며 도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서해에서 잡은 생선과 젓갈, 소금 등을 실은 배가 지났다 하니 상당히 큰 다리였다. 지금은 콘크리트 다리로 변했지만 역사가 있는 다리였다. 1960년도에 군대에 가서 강원도 홍천에서 근무했었다. 홍천군 동면에 부대가 있는데 연대에 가려면 홍천강을 건너야했다. 마침 섶다리가 있어 건넜으나 여름에 장마가 지면 떠내려가 버렸다. 별 수 없이 큰 다리로 돌아가거나 옷을 걷어 올리고 신발을 벗고 건너야 했다. 얼마나 불편했는지 모른다. 다리는 그만큼 중요했다. 한국전쟁 때도 공산군이 건너지 못하게 한강 다리를 미리 끊어버려서 서울 시민들이 얼마나 고통 받아야 했던가. 그때는 전북에 있는 다리도 모두 끊겼었다. 만경강다리, 용산다리, 삼례다리 등, 성한 다리가 없었다. 다리를 끊으면 군인과 군수물자를 운반할 수 없으니 얼마나 불편했겠는가. 요즘은 기술이 발달하여 다리를 놓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한강만 해도 많은 다리가 놓였고 웬만한 섬도 다리로 연결하였다. 강화도, 진도, 완도, 거제도, 남해도는 물론이고 압해도, 신지도, 고금도, 돌산도 등도 다리가 놓였다. 인천과 영종도를 연결하는 인천대교도 놓았고, 거제도와 가덕도를 잇는 가거대교도 개통되었다. 새 다리가 놓이면 구경하러 다니기도 했다. 남해대교도 구경하러 간 일이 있고 서해대교도 보러 갔었다. 인천대교와 삼천포대교도 빼 놓을 수 없었다. 이제 제주도도 다리나 터널로 통할 수 없을까 연구 중이라 하니 섬이라는 개념은 점점 없어지지 않을까 싶다. 요즘에 원나라가 쳐들어왔다면 강화도에 들어가기가 수월했을 게다. 다리는 소통의 수단이다. 문을 닫고 살려고 했다면 다리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웃과 서로 통하려는 마음에서 울어 나온 시설이다. 조상들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긴 게 다리다. 그런데 요즘사람들은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다리가 없는 경우가 많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더 그런데 아파트 문화의 영향이 아닌가 한다. 장애물인 강도 건널 수 있게 다리를 놓는데 한 지붕 밑에 사는 아파트 사람들끼리 얼굴도 모르고 지낸다. 가까이 하려면 멀리 달아나는 사람이 있다. 주고받고 눈인사라도 하면 좋으련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민망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먹고 사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오직 자기만의 세계에 도취되어 있다. 이러고도 사람 사는 맛이 있을까 의심스럽다. 통신수단이 발달하여 외국의 손자와 화상전화로 통하고 세계가 한 집안 같이 소식이 빠르지만 가까운 이웃도 천리나 떨어진 게 우리 사회다. 손전화가 있고 스마트폰이 있다 해도 가까운 이웃끼리는 거리가 멀다. 국가와 국민 간의 소통도 그렇다. 국민의 뜻을 받들어 나라를 이끌어야 할 텐데 민심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정당들이 민심 읽는데도 편견이 많은 것 같다. 자기 당에 유리한 것만 민심으로 여긴다. 이러고도 선진정치라 할 수 있을까. 온 국민이 한 마음이 되고, 같은 마을이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풍토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다리를 이용하여 서로 통하듯 이웃과 사회와 국가가 서로 소통하고 마음을 합쳐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런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 2010. 9. 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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