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 전북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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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 칼럼] 문향 전북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2010년 09월 30일 (목) 14:56:42 데일리전북 dailyjeonbuk.com
이순신 장군이 약무호남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라고 표현했던 것은 바로 우리 고장 전북을 지칭했던 말씀이리라 생각한다. 전북의 평야에서 군량미를 충분히 마련해 줄 수 없었더라면 임진왜란 7년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농경사회시절 전북은 풍요로운 고장이었다.
김학 교수
우순풍조하면 배부르고 등 따사로웠으니 문학과 판소리, 서화 등 예술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문학은 물론 판소리와 서화 등이 우리 고장 전북에서 크게 발전하게 된 데는 그럴만한 연유가 있었던 것이다.
백제가요 ‘정읍사’가 전북 정읍이 무대이고, 가사문학의 효시인 정극인의 ‘상춘곡’ 역시 정읍 태인에서 비롯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또 우리나라 불후의 고전소설인 ‘춘향전’과 ‘흥부전’이 전북 남원이 주요무대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또 송도기생 황진이와 쌍벽을 이룬 부안기생 매창이 남긴 시조도 우리 문학사를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그처럼 우리 고장 전북은 문학의 저변이 튼튼했던 것이다.
이런 토양과 전통이 있었기에 전북은 문향으로서 기름진 옥토가 될 수 있었고, 드디어 문인 1,000명 시대의 전북이 된 것이다. 그만큼 전북은 원초적으로 문학의 자원이 풍부하다는 뜻이다. 요즘 대부분의 문인들은 전북문인협회와 전북펜클럽 그리고 전북민족작가협의회 등에 적을 두고 각자 치열한 창작활동을 펴고 있다.
1. 일제시대의 전북문학
일제시대에 활동한 전북출신 시인으로는 유엽(춘섭), 김창술, 김해강, 신석정, 서정주 등이있는데, 유엽과 서정주는 주로 서울에서 활동했으며 김창술, 김해강, 신석정 만이 고향을 지키며 창작활동을 했다. 그 당시 문단이란 조직적 활동은 없었고 개인적인 활동을 하였을 뿐이다.
유엽은 1923년 시, 낙엽(금성 10월호)>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시작하여 첫 시집 <임께서 나를 부르시니: 자가본,31>와 장편소설 <꿈은 아니언만:29>, 수필집 <화봉섬어(華峰譫語):국제신문사,62>를 간행하고 광복 이후에는 문단활동이 없었다.
김창술은 노동자 시인으로서 1925년 카프가 조직될 때 가담하여 문단에 나온 뒤 <대도행: 개벽, 1925.2> 등을 발표했다. 시집으로는 <열과 광> <기관차> 등이 있다. 김해강은 1925년 조선문단 11월호에 <달나라>, <흙> 등의 시를 발표하였고, 같은 해 조선일보에 <도수장>, <옛뜰> 등을 발표하고, 1926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시 <새날의 기원>이 당선되었다. 그 뒤 2인 시집 <청색마>,시집 <기관차:28>, <동방서곡:42>, <아름다운 태양:42>을 발행했고, 평생 초‧중등학교 교사로 봉직하다 퇴직하고 1984년에 두 번째 시집 <기도하는 마음으로: 전주합동인쇄소,84>를 냈다.
신석정은 1924년 <기우는 해>를 조선일보에 처음 발표하고 1931년 시문학파에 가담하여 시 <선물>을 <시문학 31, 10호>에 발표한 뒤 이어서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하였다. 신석정 시인은 중등학교에서 후진을 양성하면서 시 창작에 몰두하여 우리나라의 대표적 목가시인으로 크게 이름을 떨쳤다.
서정주는 1935년 10월 시건설 7호에 시 <자화상>을 발표한 뒤 1936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하여 등단했다. 이어서 1941년에 첫 시집 <화사집: 남만서고>을 상재하여 문단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시조부문에서는 가람 이병기 시조시인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 시조문단에는 3대 산맥이 있는데 최남선 산맥, 이병기 산맥, 이은상 산맥이 그것이다. 익산시 여산 출신인 이병기 시조시인은 동아일보에 <시조란 무엇인가> 등 시조중흥을 위한 글을 많이 발표하였고, 시조창작에도 힘을 썼다.
1939년에 문장사에서 <가람시조집>과 <가람문선: 신구문화사,1966>에 수록된 166편 425수의 작품을 남겼다. 가람은 주로 서울에서 활동을 했으나 6‧25때 귀향하여 전북대학교 문리과대학 학장을 역임하면서 전주에서 후진을 양성하였다.
가람이 전북에 뿌린 시조의 씨앗은 최승범, 이기반, 박병순, 최진성, 황희영, 장순하, 박항식 등으로 맥이 이어졌고, 오늘날엔 전라시조문학회가 그 전통을 이어가며 텃밭을 가꾸고 있다.
소설 역시 이익상, 유엽, 채만식, 이근영 등은 서울에서 활동하였다. 이익상은 카프문학에 기여했는데, 1919년 7월 14일자 매일신보에 <낙오자>를 발표하였는데 소설집으로는 <흙의 사례>가 있다.
부안 출신인 백주 김태수는 1924년 11월 <조선문단>에 춘원 이광수의 추천으로 등단했고 많은 작품을 발표했으나 도중에 절필하여 문학사에서 이름이 사라졌다.
채만식은 소설 84편, 희곡 25편, 산문 80여 편 등 실로 190여 편에 이른 많은 작품을 남겼다. 채만식은 대표적 장편소설인 <탁류>를 비롯하여 <레디메이드 인생> 등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풍자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작가다.
이근영은 1935년 <신가정>에 단편소설 <금송아지>를 발표했고 이어서, <과자상자>,<말하는 벙어리>,<제3 노예>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소설집으로는 <고향사람들: 영창서관,48>과 <제3 노예: 아문각,48> 등이 있다.
이 무렵에는 문인 역시 1인다역 시대였다. 시인과 소설가가 평론을 썼는가 하면 소설가 채만식은 희곡작품을 쓰기도 했었다. 이익상은 소설을 쓰기 전에 평론부터 썼다. 일본 유학 중 고국의 개벽이란 잡지에 <예술적 양심이 결한 우리 문단>과 <빙허 군의 ‘빈처’와 목성 군의 ‘그날 밤’을 읽은 인상>을 동시에 발표했었다.
유엽 역시 평론으로 <시와 만유: 금성, 23.11>와 <시의 본질과 표현: 동아일보 3·1.1>등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 무주 출신 평론가 김환태는 조선일보에 <문예비평가의 태도에 대하여>를 발표하여 등단한 이래 수많은 인상주의적 비평을 발표하면서 순수문학을 옹호하였다. 1986년 덕유산 국립공원에 <김환태 문학비>가 세워졌고, 1988년에 <김환태 전집>이 간행되었다.
전북의 아동문학은 1930년 김완동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구원의 나팔소리>가 당선되어 등단하고 이듬해 다시 동아일보신춘문예에 동화 <약자의 승리>가 당선되면서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의 사후 유고 동시집 <반딧불>이 출간되었다.
2. 전북문단의 여명기
고향을 지키면서 고향에서 조국광복을 맞은 시인은 김해강, 신석정, 백양촌(신근), 김목랑 등이었다. 신석정 문하에서 시를 쓴 김목랑은 1946년에 시집 <흰 나비>를 발간하여 전북문단의 여명기를 장식했었다. 신석정은 1939년에 첫 시집 <촛불>에 이어 제2시집 <슬픈 목가>를1947년에 간행하여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런가 하면 전주문화동우회, 군산문화협회, 부안문화연구회, 남원예술부락 등이 문학강연, 작품비평회, 예술제, 시낭독회 등 다채로운 행사를 벌여 문학의 활성화에 기여했다. 이때에도 역시 시인이 소설, 평론, 수필 등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1949년 한성일보 신춘문예에 남원 출신 박항식의 시 <눈>이 당선되었다.
3. 전북문단의 개화기
광복 이후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가던 전북문단은 6‧25로 인하여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나 6‧25로 인해 서울에서 활동하던 가람 이병기, 미당 서정주 등이 전주에 내려와 활동하면서 전북문단은 활기를 되찾았다. 서정주를 중심으로 이철균, 하희주 등이 전북시단에 새바람을 일으켰으며, 동인지 <남풍>을 간행하기도 했다.
이 무렵 지방신문사가 문화면을 개방하여 문학 활성화에 크게 이바지했다. 전북일보에서는 편집고문 겸 논설위원이던 백양촌이 <화요문예>란을, 태백신문에서는 편집고문인 신석정이 <토요시단>을 두어 기성과 신인들의 작품을 게재하여 전북지역 문예부흥의 기운을 불러 일으켰다.
또 1952년 4월에는 전주 카멜다방에서 시화전을 열어 인기를 끌었으며, 군산, 이리, 남원 등지를 순회하며 전시하기도 했다. 1953년에는 가람 이병기를 중심으로 김해강, 신석정, 백양촌이 참여하는 가람동인회가 결성되기도 했었다. 전북문단의 활성화를 위한 디딤돌이 놓여진 시기라 하겠다.
이 무렵에 이철균이 <문예>로, 하희주, 이범욱, 고은, 박희연 등이 <현대문학>에서 시로, 최승범과 박병순이 시조작품 발표로 문단에 얼굴을 내밀었고,김해성, 최세훈, 백초, 이병훈, 황길현, 이기반, 허소라, 김민성 등이 <자유문학>에서 시로, 정렬, 장경룡, 홍완기가 <문학예술>과 <사상계>에서 시로 등단하였다. 이 무렵에 전북에서는 많은 시문학동인회가 출범하여 동인지를 펴내고 합평회를 갖는 등, 시의 영토를 크게 확장하였다.
4‧19혁명과 5‧16을 거치면서 전북문단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전북문인협회 최승범 지부장은 처음으로 회원 <선자시화전(扇子詩畵展)>을 마련하여 눈길을 끌었다. 그 이익금으로 사화집 <밀림대>를 2,000부 간행하였으니 향토문학사상 기념비적인 성과가 아닐 수 없다.
특히 1979년은 전북문단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크게 발전한 해였다. 수필불모지인 전북에 <전북수필문학회>가 창립되어 동인지 <전북수필>이 창간되었고, 정읍에서는 <내장문학회>가 발족하였으며, 종합문예지 <표현>과 전주문화원이 종합 시사 잡지 <노령>이란 소책자가 발간되었다.
4. 통합전북문단의 중흥기
1980년은 신군부가 등장하여 언론기관을 통폐합하는 등 사회가 크게 경직되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전북문단은 활발한 창작활동을 펼쳤다. 특히 고 신석정 시인 10주기를 맞아서 <석정문학동인회>가 탄생했다.
자유문학에서 석정시인의 추천을 받아 등단한 전북의 이병훈, 김민성, 이기반, 황길현, 허소라 등이 중심이 되어 발족하였고, 동인지 <석정문학>을 꾸준히 발간하고 있다.
또 군산에서는 주부백일장 입상자들이 주축이 되어 <청사초롱문학회>를 창립하였으며, 전북여류문학회는 5월에 동인지 <결> 창간호를 출간하여 주목을 받았다. 특히 1986년에는 전북문인 단합을 위한 통합기구가 마련되어 통합전북문단의 기틀이 다져졌다.
1988년의 문학계는 변화의 소용돌이가 컸던 해였다. 한글맞춤법이 개정되었는가 하면, 월북 또는 납북작가들의 해금이 된 해이기도 하다. 그 동안 작품은 물론 이름조차 거명할 수 없었던 작가들이 우리 문학사에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또 1980년대 초에 강제 폐간되었던 계간 문예지들의 복간, 새 문예지 창간, 교포작가들의 작품집 출간 등으로 대표될 수 있다. 작품내용도 광주민주화운동, 제주 4‧3사건, 빨치산, 노동현장의 문제, 반미감정 등 우리의 삶과 시대적 현실을 반영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문학의 폭이 크게 확대되었던 것이다.
이런 흐름에 따라 전북문단 역시 크게 달라졌다. 통합을 이룬 전북문인협회가 종합문예지<전북문단>을 창간하게 되었고, 전북민족문학인협의회가 창립되기도 했다. 특히 1999년 8월에는 전북문인협회(회장 김학) 회원 38명이 처음으로 강원도 묵호항에서 봉래호를 타고 2박 3일 일정으로 금강산문학기행을 다녀오기도 했었다. 봉래호 선상에서 시화전과 시낭송회, 문학강연 등을 갖기도 한 뜻 깊은 행사였다.
1980년대는 전북의 수필문단이 중앙문단에 속속 얼굴을 내밀며 전문수필가 시대를 활짝 열게 되었다.1980년 8월 김학이 월간문학에서<전화번호>란 수필작품으로 신인상을 수상하며 중앙문단에 등단한 것이 수필분야에서는 전북 최초의 일이었다.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전북의 수필가들은 용기를 얻어 너도나도 중앙문단에 등단하기 시작했다.
5. 전북지역 문학의 현주소
기라성 같은 문인들을 많이 배출한 전북은 곳곳에 그 문인들을 기리는 문학관을 마련하여 전국 문인들의 발걸음을 끌어당기고 있다. 서정주 시인의 고향 고창에는 <미당 서정주문학관>이 마련되었고, 군산에는 <백릉 채만식 문학관>이, 남원 사매면 노봉리에는 <혼불문학관>이 설립되었다.
또 전주 풍남동에도 혼불의 작가 최명희 소설가를 기리는 <최명희 문학관>이 신축되어 문학활동의 못자리가 되고 있다. 최명희 문학관은 남원과 전주 두 군데에 세워져 있다. 부안에서는 지금 신석정 시인의 문학관건립이 착착 추진되고 있어서 기대가 된다. 전북이 한국문학의 메카임을 증명해 줄 쾌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전북은 14개시‧군 가운데 13개 시‧군에 한국문인협회 지부가 설립되어 1년에 한두 권의 종합문예지를 발간하며 회원들의 창작 열기를 북돋아 주고 있다. 그리고 장르별로 시, 시조는 물론 소설, 수필, 아동문학 등 다양한 동인회가 결성되어 활발한 창작활동을 벌이고 있어 장래가 기대된다.
전북은 문학의 메카답게 다양한 문예지가 전국의 문인과 독자를 대상으로 제작되어 배포되기도 한다. 신아출판사(대표 서정환)가 발간하는 계간 종합문예지 <문예연구>와 계간 <문예>, 월간 <소년문학>, 격월간 <수필과 비평>이 그것이다. 이들 문예지들은 전주에서 출간되지만 전국적으로 많은 신인들을 배출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고정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어서 전북은 물론 우리나라의 문학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6. 전북문단의 내일을 위하여
문인 1,000명시대를 맞이한 전북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앞으로 전북의 문인 숫자는 더 불어날 것이다. 지금 같은 종이책으로는 그 많은 회원들의 작품을 효과적으로 공평하게 수용할 수가 없다.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인터넷의 문호를 활짝 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마땅히 전북문인협회의 홈페이지를 개설하여 회원들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지금도 홈페이지가 있지만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아 마치 잡초 밭처럼 되어 버렸다.
홈페이지의 컨텐츠도 더 다양하게 꾸며서 종이책뿐만 아니라 전자책까지도 삽입할 수 있어야 한다. 문향 전북의 전통과 맥을 이어갈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또 향토문인의 우수한 작품들을 선정허여 다양한 외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외국의 독자들과 소통할 수 없고 우물 안 개구리 식 문학에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역에서도 모름지기 번역 문학가들을 발굴 육성할 방안을 강구해야 하리라.
지구촌시대에 걸맞은 문학 활동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다. KBS 텔레비전 드라마 <가을연가>가 몰고 온 한류열풍이 꼭 드라마나 영화 아니면 음악이어야만 가능할 것인가? 진정 문학으로는 한류열품을 불러일으킬 수 없단 말인가?
2007년 11월 전주에서는 세계문학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큰 문학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2007 전주 아시아‧아프리카문학페스티벌(AALF, Asia‧Africa Literature Festival in Jeonju)' 전북민족작가회의가 마련한 이 행사가 11월 7일부터 8일간 전주에서 열린다.
이 행사에는 아시아 20개국과 아프리카 40개국 등 모두 60개국을 대표하는 작가 100여 명이 공식 초청될 예정이다. 전주가 세계문학인들의 주목을 받게 될 큰 행사다. 두드리면 문은 열리기 마련이고 아이디어를 짜내면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타산지석으로 삼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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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광복50년 전북발전사, 전북애향운동본부, 1996.7.
전북문학사,한국문인협회 전북지회, 1996.12.31.
세계문예대사전, 문덕수 편저, 서울, 성문각, 1975.
전라북도지 제3권, 전라북도, 1991.
전북연감, 전북일보사, 1996~1995.
전북예술사, 한국예총 전북지회, 1989.12.
전주시사, 전주시,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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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학 약력
1980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아름다운 도전> <실수를 딛고 살아온 세월> 등 수필집 9권, 수필평론집 <수필의 맛 수필의 멋>/전북도문화상, 펜문학상, 한국수필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신곡문학상 대상, 동포문학상 대상, 전주시예술상 등 다수 수상/전북수필문학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전북펜클럽 회장 역임/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crane43@hanmail.net http://crane43.k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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