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개질/이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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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질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석하 이 신 구
엮어지는 매듭마다 절절히 맺힌 사연/ 춤추는 손끝마다 꽃피고 새가 우네./
하얀 밤 뜨개질에 산이 되어 침묵하고/ 파란 낮 뜨개질에 강이 되어 노래하고/
지는 노을 황금빛에 새 삶을 비춰본다
언젠가 통근할 때 차안에서 뜨개질을 하시던 노 여교사가 흥얼대던 노랫가락이다. 그 분은 언제나 차안에서 뜨개질을 했었다. 노래를 흥얼대면서도 또 눈을 감거나 이야기를 하면서도 능숙하게 뜨개질을 했었다. 신기해서 물끄러미 쳐다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뜨개질은 옛날 우리 누나도 가끔 털실로 스웨터나 양말, 장갑, 목도리 등을 만들어 준 일이 있었다. 얼마 전에는 친척 제수씨가 승용차 방석을 짜 주신 적이 있었다.
나는 흥얼대는 그 가사가 하도 특이해서 그 노래 가사를 적어달라고 했더니 연필로 적어준 일이 있었는데 최근 책장 서랍을 정리하다가 그 쪽지를 발견하였다. 그 쪽지를 보니 그 선생님이 머리를 스쳤다. 인연이란 이상한 것이다. 내가 시골에서 전주로 와서 근무하는 학교로 그 분이 부임한 것이었다.
알고 보니 나보다 훨씬 선배였다. 뜨개질만 능숙한 줄 알았더니 음악, 서예, 미술에도 특기가 있어 이름이 널리 알려진 분이었다. 그런 인연으로 우연한 기회에 ‘뜨개질 사연’을 듣게 되었다. 선생님은 결혼 후 한때 교직을 그만두고 가정에서 행복한 날을 보냈는데 갑자기 불어닥친 불행이 이 뜨개질을 시작하게 했고, 다시 복직하게 되었다고 했다.
선생님이 남원 모 초등학교로 발령받고 통근할 때, 이웃 중등학교 교사이신 부군을 만났다고 한다. 어느 풍요로운 가을, 통근버스 안에서 그때도 뜨개질에 열중하고 있는데, 차가 덜컹하면서 실타래가 그분 앞까지 굴러갔는데, 그만 구둣발로 덥석 밟아버렸단다. 흙이 묻은 실타래가 인연이 되어 서로 교제를 하다 결혼을 하여 아들 낳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중, 그 언제인가 남원에서 있었던 수학여행 열차사고로 부군을 잃었단다. 그러다 보니 선물하려고 짜던 장갑 한 쪽만 동그마니 굴러다니게 되었단다.
한 올 한 올 매듭마다 한 올은 아름다웠던 추억과 그리움이, 또 한 올은 가슴 아팠던 그날의 이야기가 묻어나고 있다. 남들이 보기엔 신들린 듯 춤추는 손끝에서 꽃도 되고 새가 되는 매듭이지만, 이제는 그 꽃 속에는 향기가 없고 그 새는 울지를 않는단다. 잠 안 오는 밤을 하얗게 지새며 뜨개질을 하건만, 고요한 적막은 그리움을 더하고 말없이 아침이 다가온다고 했다. 다행히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 이제는 좋은 직장, 좋은 직업에 종사하여 걱정과 시름을 놓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옛 사연이 되살아나고, 자신도 모르게 뜨개질을 다시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포동포동한 손자, 손녀의 귀여운 손과 갸름한 목을 그리며 한 줄 두 줄 실오라기를 감고, 그 속에 그리움을 잠재우며 재롱과 사랑을 한 코 두 코 엮어가고 있다고 하였다. 뜨개질은 하시는 분은 재미도 있고, 짜는 목적도 있다. 하지만 그 작품을 엮어가는 과정에서 누구에게 어떤 의미로 줄 것이며, 받는 그 사람의 마음은 어떠할까를 생각하며 한 올 한 올 뜬단다.
지난 일요일 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저녁 무렵 기린봉을 찾았다. 초가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더위는 가실 줄 모른다. 막 정상에 올라 땀을 닦는데 건너편 바위에서 한가로이 뜨개질을 하는 여인이 있었다. 혹시 그 선배님이 아닐까 하여 가보았더니, 훨씬 젊은 분이었다. 아마 올 겨울 귀여운 공주님의 장갑을 뜨는 것일까. 재롱이 눈에 삼삼하여 절로 웃음을 머금고 있는 그 분도 가끔 먼 들판과 도심을 바라 보면서 능숙하게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노 여교사와 여기 젊은 여인의 뜨개질은 사연은 다르겠지만 그 정성과 사랑과 솜씨는 닮은 듯싶었다.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이와 사랑하는 자녀를 위하여, 요즘에는 불쌍한 이웃을 위해 자선사업용으로 그 기능을 발휘한다고 한다. 뜨개질을 하는 분의 눈과 표정을 보면 안다. 과연 누구를 위하는 잽싼 손놀림인가를, 뜨개질로 만든 모자, 장갑, 목도리는 그것으로 인한 따사로움보다는, 한 땀 한 땀의 매듭에 엉킨 따뜻한 마음이 받는 이의 가슴속까지 전해지리라. 파란 가을 하늘과 누런 들판을 바탕삼아, 정과 사랑이 뭉친 뜨개질을 하는 그 여인의 마음은 황금빛 노을에 새롭게 펼쳐질 꿈을 엮는 듯하였다.
(2010.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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