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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봉 돌계단/김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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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76회 작성일 10-09-15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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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봉 돌계단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김세명 기린봉 등산길에는 돌계단이 있다. 돌계단이라고 하지만 돌 절반과 시멘트 절반을 섞어서 쌓은 것이다. 기린의 목처럼 기다란 능선 길을 언제 누가 쌓았는지 알 수 없지만 정상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만약 이 계단이 없었다면 자연은 크게 훼손되었을 것이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이 돌계단을 오르면서 계단의 수를 센다. 어느 날은 천 개였다가 다음 날에는 다시 세면 몇 개가 모자란다. 그러나 숨을 헐떡이면서도 속셈으로 수를 세는 기쁨 때문에 매일 이 셈을 계속한다. 처음에는 열개 단위로 손가락을 꼽아가면서 백 단위가 되면 왼손가락을 꼽는 식으로 세다보면 힘든 줄 모르고 정상까지 도달한다. 해발 271미터지만 계단은 시작부터 정상까지 이어졌다. 전주8경 중 제1경이 기린토월(麒麟吐月)이다. 셈을 하는 것은 나만의 집착이다.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코끝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쯤에는 잠시 숨고르기를 한다. 이때 계산을 끝내고 다시 세면 대충 천여 계단임을 알 수 있다. 매일 아침마다 세다 보면 일 천 개가 못될 때도 있다. 그러나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 중에는 계단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그들은 다른 길을 통해 정상에 오른다. 나는 계단으로 올랐다가 내려 올 때도 계단을 이용한다. 계단을 쌓은 석수장이의 수고로움을 생각하면서 오르내린다. 만약 계단을 쌓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오랜 세월 비바람에 씻겨 기린의 목 같은 능선은 패이고 무너져 제 모습을 간직하지 못했을 것이다. 모악산 중인리 비단길도 돌계단으로 시공하려 하자 환경논자들이 반대한다고 한다. 그들 주장은 계단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또 다른 능선 길을 만들 것이다. 그러면 예산만 낭비하고 환경이 파괴된다고 주장한다. 계단을 오르다 보면 사람의 한 평생도 이처럼 힘든 고비가 있다. 또 위계질서가 있다. 한 계단 윗자리에 있다고 아랫사람을 하시하기도 한다. 신라의 마지막 현군(賢君)으로 일컬어지는 왕이 경문왕이다. 왕족의 일원으로 그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왕이 불러 그를 시험해 보았다. 전국을 다니며 심신 수련하는 동안 어떤 좋은 일을 보았느냐고. 스무 살의 왕자는 좋은 일 세 가지를 보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낮은 사람들보다 겸손하게 사는 이가 첫째요, 큰 부자이면서 검소하게 옷을 입는 이가 둘째요, 본디 귀하고 힘이 있으면서 그 위세를 쓰지 않는 이가 셋째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그의 어진 성품에 감동하여 자신의 후계자로 삼겠다고 선언하였다. 왕이 감동한 요체는 섬김이었다. 이 덕목이야말로 나라를 이끌어갈 리더로서 가장 긴요했으리라. 이것이 어찌 신라만의 덕목이겠는가. 계단이 사람에게 주는 의미는 크다. 사람도 계단처럼 위, 아래 구분하여 자기의 직분만 충실히 하면 될 터인데 한 계단 위에 있다고 권세를 휘두르려 한다. 돌계단은 위에 있다고 아래계단에게 권세를 부리지도 않고 제 위치를 지킨다. 오히려 아래계단이 튼튼해야 위가 무너지지 않기에 아래를 더 튼튼히 한다. 아침 등산길에서 계단을 오르내리며 사람도 위, 아래 각자 직분을 다한다면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돌계단은 언제나 나에게 수고로움을 주지만 나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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