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가의 어깨들/정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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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가의 어깨들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장영
한때 학원가에도 어깨와 스트라이크가 유행하여 혼란스럽던 때가 있었다. 조국광복 직후 미군정(美軍政) 때는 민주주의가 자유만이 전부인 줄 알고 날뛰었다. 자유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으로만 알았고, 억압에서 풀려 건국이란 이름 아내 집회와 행사도 많았다. 과도기 의 무질서는 혼란을 부추겼다. 신탁과 반탁의 갈등은 좌우이념대립으로 격화하여 결국 좌익은 지하로 스며들었고 사회가 안정되지 못하였다. 그런 유동적인 분위기 속에서 제헌정부가 수립되었으나 폭동과 반란사건이 점차 안정되어 갈 때 한국전쟁이 터졌다.
세상이 이러하니 도시나 시골 할 것 없이 학교마다 어깨들이 나타났고 학원소요사건이 잦았다. 때마침 나는 남원공립농업중학교(6년제)에서 수학하게 되었다. 당시는 학기가 9월이니 한여름에 입학시험을 치렀다. 경쟁도 있었지만 육상선수를 기르기 위해 입시생 전원 일정거리의 마라톤을 달려야 했는데, 재학생들도 1년에 한 번씩의 마라톤은 큰 부담이었다. 많은 학생 가운데 어깨들도 있었는데 그들의 영향력도 꽤 컸었다. 다른 지역 학생들에게 봉변을 당했다 하면 이들이 꼭 보복을 해주는 관행도 생겼다.
나는 어깨 축에도 들지 못했으니 마음 놓고 내 고향의 시장거리에 가지를 못했다. 다른 지방의 학생이 나타나면 그곳의 어깨들이 나타나 시비를 걸었다. 만약 다른 지방에 가서 봉변을 당했던 학생이 있었다면 꼭 손을 보아주기 때문이었다. 타교생이 나타났다면 어찌 그리 연락이 빠른지! 어깨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손에 붕대를 감고 위압적으로 으스대며 서성거렸다. 고향 이웃마을에 1년 선배와 같은 학년인 친구가 몇 있었는데 그도 고장에서는 꽤 이름을 날린 어깨들이었다. 이들과 동행하면 봉변을 면할 수 있었으니 친구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스트라이크가 일어난 일이 있었다. 모 중학교 교장이 부임인사를 할 때였다. 사전 약속이 되었던지 학생회장의 구령 “교장선생님께 경례” 구령이 떨어지자 전교생이 뒤로 돌아서 인사하기를 거부한 스트라이크조회가 된 것이다. 그 학교 재학생인 한 마을 친구에게 종종 들은 이야기다. 전임학교 때의 뜬소문이 안 좋았다면 으레 다른 교사들도 부임 때마다 가끔 일어났던 일이라 했다. 다행히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이런 불상사는 없었다.
흔히들 어깨라 하면 보통 폭력을 일삼는 불량배나 깡패, 조직폭력배(왜말:かた:肩)로 생각 되지만 이때 학생들의 어깨는 달랐다. 권투는 물론 한 가락씩 했고, 늘 멋을 부리며, 의리가 있고 정의감에 찬 멋쟁이 학생으로서 공부도 잘한 편이었다. 바람직한 일이든 아니든 주도세력이었다 할까? 길거리에서 설사 시비가 붙더라도 경찰도 그냥 묵인하곤 했었다. 가끔 버스요금 때문에 조수들과 다툼이 잦았으나 “학생이 무슨 돈이 있겠느냐?” 며 조수를 나무라는 추세였었다.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였다. 이들은 학교 배속장교를 따라 자진 입대하였다. 그 치열했던 낙동강전투에 참가해 용감하게 싸웠고, 무명의 학도병이 되기도 했었다. 뿐만 아니라 수복 직후 미 수복(未 收復)지구 수복에 앞장서 학도의용대로 계엄군과 같이 토벌작전에 참가하기도 했었다. 내가 아는 고향친구들도 1 ‧ 4후퇴(중공군개입)때 국민방위군 동원령이 내려졌지만 자진 잔류하여 회문산 공비소탕전에 참가하여 20대 전후의 청춘을 바치기도 했었다. 동원령이 풀려 귀향해 보니 이웃마을친구가 둘이나 희생되었다. 뒤늦게 그 소식을 들어 인생허무를 느꼈고 명복을 빌 뿐이었다.
한때 그렇게 염려스럽던 학원 스트라이크 소요를 주도했던 어깨들이었지만 한국전쟁을 잘 치른 뒤에도 그 맥은 이어졌다. 한국전쟁 이후 얼마간 어깨들이 학교마다 기승을 부렸을 때도 있었다. 자유당 말기 부정선거와 불의에 항거한 4월의 민주혁명(4 ‧ 19), 공화당의 유신정권 아래서 민주화를 주도한 학생운동, 5 ‧ 18광주민주항쟁은 참으로 값진 희생이었다.
한때 떠돌았던 학원가의 어깨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오늘날은 질서가 확립되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가끔 학원폭력이니 왕따니 하는 문제가 가끔 나타나는 게 현실이다. 어느 시대나 청소년들의 문제는 있게 마련이다. 이제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니 성장과정일 뿐, 한때의 피 끓는 젊음이었다. 그들도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 일등국민이 될 테니까! (2010.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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