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아, 자랑스럽다/이수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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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아, 자랑스럽다
- 2010 전라예술제 문인의 날 행사 참관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이수홍
새벽4시 반에 잠이 깼다. 생리적인 현상 때문이다. 여느 때는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고 다시 잠자리에 눕는다. 그런데 오늘은 창가 소파에 앉았다. 동쪽 하늘에 음력 스무이레 손톱달이 서글프도록 아름답다. 밤늦게까지 깻잎 김치를 담고 곤히 잠든 아내가 깰세라 안방은 그늘이 지게 불을 켰다. 덜커덩 열차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전주역의 북쪽에서 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여수행 열차인 듯싶다. 55분에 또 열차가 달리는 소리가 들린다. 남쪽에서 들리니 서울행이다. 이어서 닭이 새벽을 알린다. 부화장이 고향인 닭은 시도 때도 없이 운다는데 건지산의 산닭은 제대로 울어서 좋다. 달은 구름에 가려 사라졌다. 자기만 계속 보지 말고 책을 읽으라는 달의 마음씨가 고맙다.
어제 김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제49회 전라예술제 전북문인의 날 행사 때 받은 책자를 보았다. 송하춘 고려대명예교수의 문학 특강 <문학의 힘, 김제의 힘>을 다시 한 번 읽었다. 대학교수답게 잘도 썼다.
“인간의 본능은 흥얼거리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문학이 영화라는 종합예술에 밀려나고 있지만 없어지지는 않는다. 예술 하는 일은 허공에 거미줄 치는 것과 같다. 네 귀에 짱짱히 받쳐주는 힘이 있어야 버틸 수 있는데 이것이 체험이다.” 라는 말이 결론이다. 자기의 소설은 모두 김제 평야에서 살았던 체험에서 나온 것이란다. 외국에서 경험했다는 털 자켓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어느 부잣집에 식사 초대를 받았다. 정원 등 굉장히 호화로웠다. 식사는 서구식으로 간단했다. 그의 아내가 등장하는데 털 자켓을 입고 있었다. 그 털 자켓은 한대지방의 사슴이 맹수에 쫒겨 필사적으로 도망을 가다가 나뭇가지에 씻겼는데 그 가지에 묻은 털로만 만든 자켓이라고 했단다.
김제 벽골제의 설화를 시극으로 만든 공연은 처음 관람하는 것이어서 좋았다. 새롭고 감동적이었다. 작시와 구성을 이동희 회장이 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의 실력과 멋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우리 음악인 국악이 배음으로 깔려 있어 좋았다. 지난번 수필가 C님의 수필집 출판기념회 석상에서 내가 판소리춘향가를 입체 창으로 부를 때 추임새를 넣어 국악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 내력을 알만했다.
행사를 마치고 난 뒤 수필가들은 문학행사인데 소설 강의와 시화전, 시낭송, 시극공연만 있고 수필이야기는 한마디도 없다고 서운함을 표시했다. 눈 닦고 귀를 씻고 보고 들어도 수필은 없어 나도 섭섭했다. 바른말을 잘하는 나와 친절한 수필가이자 칼럼니스트 Y는 행사를 주관한 전북문인협회장에게 수필을 중요시하라고 충언을 하겠다고 했다. 면전의 충고는 약이니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시 공부를 해서 시를 쓸 걸 잘못 들어섰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애당초 내가 수필을 배운 것은 내 평생일기를 책으로 엮어 볼 생각에서였다. 그 뜻이 이루어져서 수필집 《노래하는 산수유 꽃》을 냈고, 제2 수필집 《춤추는 산수유》를 출간 준비 중이다.
송 교수는 소설가다. 허구를 인정한다는 소설가도 체험이 근간임을 강조했다. 체험은 허구일 수 없다. 수필은 체험을 바탕으로 한 진실의 문학이다. 형 같은 선배님이 시 공부를 하라고 나에게 권한 일이 있다. 나는 수필을 공부하고 있는데 따로 시 공부를 할 생각이 없었다. 체험이 문학의 바탕이라면 체험은 진실이고 수필은 체험을 중시하는 진실문학이니 수필을 공부하면 모든 문학을 공부한 것이나 다름없다. 시화전에서 우리 수필교수의 시도 전시된 것을 보았다. 수필가라고 해서 시를 쓰지 말란 법도 없고, 시인이나 소설가도 수필을 쓰고 있다. 피장파장이다.
유명한 원로 서양화가 하반영 님 생각이 난다. 낸들 한국화를 못 그릴 줄 아느냐며 그린 한국화를 보았다. 물론 서양화보다는 못하지만 유명한 화가의 그림임에는 틀림이 없고 인기를 끌었다. 가곡, 가요, 가수가 판소리를 부르지 말란 규정도 없다. 예술은 아름답고 즐거우면 된다. 예술의 으뜸인 문학, 문학 중에서도 그 바탕인 체험을 가장 중요시하는 수필은 자랑스러운 문학이다. 나는 수필을 배우면서 수필을 쓰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수필아, 자랑스럽다!
(2010.9.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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