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답사기/임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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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답사기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임영희
집을 나선 지 16시간 만에 돌아와 보니 베란다 창으로 가을이 집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오늘은 강원도 원주로 답사여행을 다녀 온 날이다. 세월의 시공을 넘어 잘 보존되어 있는 강원도와 우리 고장 전북을 비교하면서 즐겁고 진지하게 답사일정을 마쳤다.
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되돌아 본 여러 가지 유물들과 4대강사업의 현장을 둘러보며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이번 답사는 비슷하면서 다르고, 다른가 하면 비슷하였다. 워낙 많은 것들을 보고 들어서 그런지 귀와 눈과 머릿속이 정리되지도 않았다.
법천사지 탑비, 흥법사지 3층 석탑, 염거화상 탑, 흥원창 등을 둘러보았는데, 조선 선조의 계비인 인목왕후의 아버지로 ‘연흥부원군’에 봉해진 김제남(1562~1613)의 신도비가 눈길을 끌었다. 김제남은 광해군 5년(1613)에 영창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한다는 무고로 잡혀 사약을 받고 세 아들과 함께 화를 당했던 분이다. 제주도로 유배되었던 며느리 정씨와 손자 천석이 인조의 특명으로 김제남의 사당을 짓고 이 비를 세웠다고 한다.
군량이 떨어져 곤란할 때 견훤 장군이 꾀를 내어 강물에 석회를 풀었는데 왕건의 군사들은 쌀을 씻는 물인 줄 알고 물을 마셨다가 병사들이 죽어 패퇴하였다는 석자골뜸 이야기가 있다. 고려와 조선의 조창의 하나인 강을 바라보면서 이곳에서 조곡을 고려수도 개경까지 운송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충주 쪽에서 흘러 들어오는 남한강과 원주 쪽에서 들어오는 섬강, 여주로 흐르는 여강이 한강의 원류다.
크게 관심을 갖게 된 곳은 26년에 걸쳐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한 박경리 선생의 토지문학관이었다. 박경리 선생은 1980년 서울을 떠나 이곳 원주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고,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며 홀로《토지》4부와 5부를 집필하여 1994년 8월 15일 새벽 2시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원주 토지문학관에서 들었던 "가장 진실한 것은 생존이다."라는 박경리 선생의 육성 녹음이 내 마음에 깊게 와 닿았다.
(201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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