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 시인 김삿갓/김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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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 시인 김삿갓
전주안골노인복지회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야간반 김길남
어려서 서당에 다닐 때의 일이다. 쉬는 시간에 뒷동산에 놀러 가면서 스무 살쯤 되는 접장(서당의 반장)이 한시(漢詩)를 낭송하였다. 우리들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소리를 맞춰 따라 외웠다. 천장 거무집이요, 화로 접불내라. 국수한사발이요 송편 일곱 개라. 즐겁게 외우며 웃고 다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 김삿갓의 재치 있는 시였다.
한시는 음이 있고 새김이 있다. 음은 소리 나는 대로 읽는 것이고 새김은 그 뜻을 깊이 있게 음미하는 것이다. 천장거무집(天長去無執) 화로접불래(花老蝶不來)도 새김은 ‘하늘이 멀어서 가도 가도 잡을 수 없고, 꽃이 늙으면 나비도 찾아오지 않는다.’이다. 그러나 음을 우리말로 비유적으로 읽으면 ‘천장에는 거미집이요. 화로에서 접불내’가 난다는 말이다. 국수한사발과 송편일곡개도 그 새김은 깊은 뜻이 있지만 음은 우리말로 생각하면 국수 한 사발과 송편 일곱 개다. 표현이 절묘하여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우리말과 한시를 교묘하게 연관하여 이런 시를 지었다.
천재 시인 김삿갓은 시인으로서는 너무도 위대한 존재였으나 인간으로서는 그 운명이 비참하였다. 그는 과거마당에서 조부를 욕한 죄를 씻을 수 없는 수치로 여겼다. 하늘을 보고 살 수 없다하여 평생 삿갓을 쓰고 전국을 방랑하였다. 능란한 시재(詩才)를 번뜩이며 방방곡곡에 뿌린 일화는 해학 바로 그것이었다.
북청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어느 인색한 부자가 큰 건물을 짓고 막 집을 들려는 무렵 김삿갓이 찾아 갔다. 하룻밤이 지났는데도 술 한 잔은 물론 밥 한 그릇 줄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아침에 떠나려다가 현판을 쓰려고 다듬어 놓은 널빤지를 보고 자기가 써 주겠다고 하였다. 주인이 인심도 사나운데 얼굴은 당나귀 상이고 마침 성이 ‘정’가였다. 장난기가 발동하여 골려주려고 ‘귀락당(貴樂堂’이라 썼다. ‘귀하고 즐거운 집’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주인은 기뻐하고 어제와 다르게 융숭하게 대접하였다. 그가 떠난 뒤 당초에 현판을 쓰기로 한 박초시가 와서 보고 알아차렸다. 이름을 거꾸로 읽으면 ‘당낙귀’요, 비유적으로는 ‘당나귀’와 같았다. 주인이 듣고 발을 동동 굴렀다.
한 번은 서당에 들러 하룻밤을 쉬어가려 했으나 훈장이 박대하여 같은 마을의 사랑에서 자게 되었다. 주인과 시를 지으며 놀다가 서당의 훈장을 불러 같이 짓자고 하였다. 심부름하는 아이가 훈장을 데리러 갔다가 그냥 왔다. 거지와는 자리를 같이 할 수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매우 불쾌한 김삿갓이 즉석에서 오언절구를 지어 훈장에게 보냈다. 서당내조지(書堂乃早知) 방중개존물(房中皆尊物) 생도제미십(生徒諸未十) 선생내불알(先生來不謁)이었다. 이를 받아 본 훈장은 어떻게 해석했을까?
금강산을 가려고 강을 건널 때 있었던 일이다. 나루에 도착하니 처녀 뱃사공이 노를 저어 배를 대었다. 올라타고 한참 가다가 사공의 옆모습을 보니 자기 마누라와 비슷했다. 마누라 생각에 잠겨 있다가 갑자기 ‘여보 마누라’하였다. 처녀 뱃사공이 깜짝 놀라 ‘내가 어찌 당신의 부인이오.’하였다. 이에 당황한 김삿갓이 ‘내가 당신 배를 탔으니 당신이 내 아내가 맞지 않소.’하고 대꾸하였다. 사공은 아무 말도 않고 강을 건너 나루에 대었다. 김삿갓이 배에서 내렸다. 처녀 뱃사공이 ‘내 아들아 잘 가거라.’하였다. ‘내가 왜 당신 아들이오.’하니까 ‘내 배에서 나왔으니 내 아들 아니오.’라 하였다. 처녀 뱃사공도 우스갯소리를 잘 했던가 보다.
항상 공자의 말씀과 같은 옳은 말만 하고 살아야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하면 너무 딱딱해져서 우리 생활이 감칠맛이 없어진다. 가끔 배꼽을 쥐고 웃을 수 있는 유머가 필요하기도 하다. 김삿갓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익살꾸러기 시인이었다. 그의 한시를 읽어보면 편편이 웃음짓게 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요즘에도 김삿갓 같은 시인이 있어서 각박한 세상을 웃음으로 덮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
( 2009. 5.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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