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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학사루/이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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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92회 작성일 10-08-1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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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학사루(學士樓)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이의민 제10회 수필의 날 행사가 2010.7.30. 함양에서 1박2일로 열렸다. 우리 행촌수필문학회는 37명이 관광버스를 타고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8시 반에 출발했다. 차창 밖의 잿빛하늘이 먼 산봉우리를 휘감고 휘날리는 운해가 휙휙 잘도 지나갔다. 나는 그동안 지나는 길에 함양을 거쳐 갔을 뿐 읍내로 들어와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시내에 있는 학사루(學士樓)는 오래된 2층 누각으로서 제법 넓었다. 오래된 역사를 증명이라도 하듯 기둥과 마루의 단청도 낡아 보였다. 옛날에는 다른 곳에 있었는데 옮겨온 지 오래되었다며 문화해설사는 학사루에 걸린 편액의 글 때문에 무오사화가 일어났다고 들려주었다. 김종직과 유자광 사이가 좋지 않게 된 게 이 학사루에 걸려있던 유자광의 글이 담긴 편액을 불에 태운 데서 시발되었다고 한다. 무오사화는 1498년(연산군4년) 김일손(金馹孫)등 신진 사류(士類)가 유자광(柳子光) 중심의 훈구파에게 화를 입은 사건이다. 나라에 실록청이 개설되고 이극돈이 실록작업 당상관이 되었는데 김일손이 작성한 사초 점검과정에서 김종직이 쓴 조의문제와 이극돈을 비판하는 상소문이 발견됐다. 조의문제는 세조의 왕위찬탈을 은유적으로 비판한 내용이었다. 또 세조비 정희왕후 상중에 전라감사로 있던 이극돈이 장흥기생과 어울렸다는 불미스러운 것을 적은 것으로 김종직과는 원수 척을 짓게 되어 달려간 곳이 유자광 집이었다. 유자광 역시 함양 학사루에 붙어있던 자신의 글을 불태운 일 때문에 김종직과 대립각을 보였던 인물이다. 유자광은 김종직의 조의문제를 읽어보고 세조를 비방한 글이 김종직의 지시 아래 씌어졌다고 인정하고 세조의 신임을 받던 노사신, 윤필상 등의 훈신세력과 모의한 뒤 왕에게 상소를 올려 김종직, 김일손을 위시한 모든 김종직 문하를 제거한 사건이다. 이 사화로 이미 죽은 김종직의 무덤을 파서 시신을 다시 한 번 죽이는 부관참시형까지 가해진 사건이다. 조의문제가 삽입된 사초를 보고하지 않은 죄로 이극돈은 파면되고, 유자광은 연산군의 신임을 받아 조정의 대세를 장악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다른 사화(士禍)와는 달리 사초가 원인이 되어 무오년에 많은 사람들이 화를 입었기에 무오사화(史禍)라고 한다. 이 사화는 함양 학사루에 걸렸던 유자광의 글이 김종직에 의하여 태워진 게 사화(史禍)의 단초가 되었다는 학사루를 두루 돌아보니 역사의 한 페이지를 보는 듯싶었다. 조선시대에는 당파싸움이 너무 치열하여 나라가 기울었다고 학창시절에 배웠던 기억이 새롭다. 하지만 요즘도 나랏일을 한다는 위정자들이 당내에서는 주류네 비주류네 하고 누구 파 또 누구 파 등 파당이 심하여 사회가 시끄럽고 어지러워 걱정이다. 사람은 자기주장도 중요하지만 이 무오사화에서 세상을 살면서 되도록이면 원수 척을 짓지 말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이번 수필의 날 행사 때문에 함양 학사루를 찾았고 그 때문에 무오사화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의미가 컸다. (201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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