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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이 된 공주님/박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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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99회 작성일 10-08-08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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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꾼이 된 공주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박인경 햇볕이 뜨거웠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잡초를 뽑았다. 챙이 넓은 모자만으로는 햇빛을 다 가릴 수 없어 커다란 우산을 펴 어깨에 걸쳤다. 긴팔 웃옷을 입고 장갑까지 끼었건만 벌레들은 자꾸 꾹꾹 물어댔다. 웃통을 벗은 채 땀을 흘리며 일하는 남편은 괜찮은데 벌레들이 나만 자꾸 무는 것을 보면 내가 더 맛이 있거나 수컷 벌레인 모양이었다. 나는 시방 난생 처음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아니 농사란 단어는 너무 거창하다. 친정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야산 기슭에 조그마하게 밭을 갈아 푸성귀를 심었다. 엊그제도 와서 풀을 뽑아 주었건만 그새 잡초들이 무성했다. 비가 온 뒤에 풀을 뽑기 수월하여 비가 그치자마자 밭으로 왔다. 처음 해보는 밭일이다. 논을 돌아보려 지나가던 동네 어른들이 혀를 끌끌 차셨다. 진짜 농사꾼은 해가 중천에 떠있는 이 시간에는 일하지 않고, 우리의 일하는 모습이 소꿉장난 같아 보여서일 게다. 밭은 계단식 두 개 층으로 나뉘어져 있다. 아래쪽에는 제법 흉내를 내어 흙 위에 검정 비닐을 덮고 고랑을 만들어 고추 모종을 심었고, 윗칸에는 호박과 가지 모종을 심었다. 위쪽 밭의 절반은 작년 가을에 돌아가신 산지기 할아버지가 심어 놓은 도라지가 자라고 있다. 내 손으로 직접 땅을 갈아 모종을 심고 나날이 자라나는 모습을 바라보면 대견스럽고 뿌듯했다. 그동안 큰 마트나 시장에서 무심코 사서 먹던 것과는 달리 내가 손수 심ㅇ 채소는 하나하나가 자식처럼 소중했다. 동네를 산책하다가 누가 가꾸는 작은 텃밭이 보이면 발걸음을 멈추고 들여다보는 버릇도 생겼다. 처음 모종을 심고서는 모비 걱정스러웠다. 밭일은 커녕 집에 있던 화분도 잘 돌보지 못해 실패를 하곤 했었고, 수퍼에서 파를 살 때도 손에 흙 묻는 것이 싫어 까놓은 것을 사던 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가 사다 주어 애정 없이 키웠던 화초와는 달리 내가 모종을 손수 골라 땅을 파고 심어 보니 애착이 생겼다. 한 포기를 심고 손으로 꼭꼭 눌러 주고 두어 발짝 뒤로 가서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내가 흙을 일구어 무언가를 심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신기하던지 돌아가면서도 보고 또 보았다. 그러나 집에서 십여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어 물을 자주 주기는 어려웠다. 일주일에 한 번씩 근처 개울에서 빈 페트병에 물을 담아 조금씩 뿌려 주었다. 다행스럽게도 어설픈 농부 노릇이 안쓰러웠는지 하늘이 가끔 비를 뿌려 주어 요즘은 제대로 모양을 갖춘 호박과 가지, 고추가 열매를 맺었다. 풀을 뽑고 있는데 산새 한 마리가가 나무 위로 날아왔다. ‘쪼로롱~ 쪼로롱~’ 하는 소리가 매번 같은 것으로 보아 내가 밭으로 올 때마다 날아오는 새인 것 같았다. 나도 같이 응수를 하니 새도 대답을 했다. 마치 새가 ‘넌 누구니?’ 하고 묻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산 주인인데 지금 농사를 짓고 있어. 쪼로롱~ ‘ 이라고 내가 흉내를 내자 그 애도 마치 대답을 하듯 울어댔다. 몇 번을 새소리에 따라 대응을 하자 옆에서 보고 계시던 친정어머니가 날짐승하고 이야기도 잘 한다며 웃으셨다. 친정아버지 생각이 났다. 이제는 연세가 많고 지병이 생겨 쉬고 계시지만 정년퇴임 후 얼마간 농사를 지으셨다. 무료함도 달래고 자식들에게도 나누어 주려 선산 아래쪽 평평한 땅을 일구어 깻잎과 고구마, 대파 등을 심으셨다. 그렇게 신나게 일을 하시는 모습은 전에 본 적이 없었다. 작물을 많이 심은 것도 아니건만 각종 농기구에 작은 트럭까지 준비하여 새벽이면 산으로 향하곤 하셨다. 늦가을이 되자 고구마를 수확하려고 모두를 부르셨다. 우리 아이들은 알알이 달려 나오는 고구마 줄기를 신기한 듯 바라보며 환호성을 질렀었다. 그날 저녁 따온 깻잎은 간장에 재워 절임을 만들고 벽난로에 둘러 앉아 고구마를 구워 먹었다. 지금도 그때 그 고구마 맛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올해는 고구마를 심지 않아 같은 추억을 만들 수는 없겠지만 아들들이 바쁘지 않는 시간을 찾아 도라지를 함께 캐어 도라지술이나 담궈 한 병씩 들려 보내야겠다. 며칠동안 단호박이 야무지게 영글었다. 조심스레 따서 바구니에 담았다. 첫 수확물이니 장식장 위에 보물처럼 올려놓을 셈이다. 내린 비에 쓸려 기울어진 가지도 흙을 파서 돋우었다. 알맞게 익은 호박과 가지를 따고 풋고추도 한 웅큼 집어 들었다. 오늘 저녁은 호박과 풋고추를 숭숭 썰어 넣고 된장찌개를 끓여야겠다. 이마에 흐른 땀을 흙 묻은 손으로 쓱 닦는 모습을 보고 남편이 한마디를 했다. “우리 공주님, 농사꾼 다 되었네!” (201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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