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IS MOBILE PAGE (~767)
WEBIS TABLET PAGE (768~991)
WEBIS DESKTOP PAGE (992~1279)
WEBIS BIG DESKTOP PAGE (1280~)

김상권 수필집 발문/김학 > 자유게시판

본문 바로가기
서브비주얼

도전하는 노인, 함께하는 안골!

  • HOME
  • 자유게시판

자유게시판

  • HOME
  • 자유게시판

김상권 수필집 발문/김학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60회 작성일 10-07-20 09:59

본문

<김상권 수필집 발문> 늦깎이 수필가의 발 빠른 행보 -둔산 김상권 첫 수필집 《 百味의 王 》출간에 부쳐- 김 학[수필가,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전)] 1. 수필가 김상권의 문학 환경 수필가 김상권, 그는 1942년 8월 18일,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남정리 장뜰마을에서 아버지 김완봉과 어머니 김점순의 2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어느새 고희의 문턱에 들어선 김상권은 명문 안동김씨 후손이다. 어려서부터 부모덕에 가난을 모르고 자란 복동(福童)이었다. 6‧25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우리나라는 해마다 흉년이 들어 대부분의 농촌사람들이 굶기를 놀부 밥 먹 듯했었다. 가난한 아이들이 냉수로 주린 배를 채우던 그 시절에도 김상권은 끼니때마다 밥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얼마나 큰 복인가? 가난하던 그 시절에 장뜰마을에서 유일하게 사랑방을 운영한 것도 김상권의 집이었다. 부잣집 아들인데도 김상권은 공부를 잘하여 전주남중으로 진학했고, 3년 뒤에는 수재들만 모인다는 전주사범학교에 입학하였다. 그 사범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김제시 월성초등학교 교사가 되었으니 김상권은 매달 월급을 받는 교육자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수필가 김상권, 그는 평생 용돈 걱정을 모르고 산 것 같다. 어려서는 부모덕에 공납금을 내지 못하여 학교에서 쫓겨난 일도 없었을 테고, 매달 월급을 받게 된 20대 때부터는 경제적 독립을 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정년퇴직을 한 뒤부터는 공무원연금공단이란 신판 효자가 매달 정기적으로 저금통장에 연금을 넣어 주니 어찌 돈 걱정을 하겠는가? 그러니 어릴 때는 복동(福童)이었고 늘그막인 이제는 복로(福老)로 승격된 셈이다. 수필가 김상권, 그는 2남 1녀의 자녀를 두었고, 친손녀 2명과 외손자 2명, 외손녀 2명 등 6명의 손자손녀를 둔 다복한 할아버지가 되었다. 그는 초등학교 교장으로서 43년의 긴 교직생활을 마무리하고 2모작 인생을 시작했다. 그는 1모작 인생을 성공적으로 마쳤듯 2모작 인생 역시 모범적으로 꾸려가고 있다. 교직에서 물러서자마자 실버 플래너(Silver Planner) 교육으로 문인화, 판소리, 민요, 웃음치료, 컴퓨터, 수필 등 다양한 과목을 배우기도 하였다. 그는 무엇이든 배우기를 좋아한다. 둔산 김상권, 그는 술과 담배를 사랑하고 친구를 좋아한다. 그가 누리는 3복(三福)이다. 그는 한 편의 수필을 쓰고 나면 친구를 불러 소주잔을 기울여야 직성이 풀린다. 그만의 독특한 스트레스 해소법인 듯싶다. 그는 담배를 끊겠다고 하면서도 담배와의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 마음이 약하여 애연가의 꼬드김을 거절하지 못한 탓이다. 그는 친구들을 무척 좋아한다. 친구 모임엔 빠지지 않고 참석하여 술잔을 기울인다. 동창친구와 고향친구, 직장친구는 물론이요 2모작생활을 하면서 만난 문단친구들까지 갈수록 교제의 영역이 자꾸 넓어지고 있다. 친화력이 있는 김상권, 그는 술복, 돈복, 친구복과 더불어 인생을 즐겁게 살아간다. 수필가 김상권, 그가 남몰래 착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그는 오래 전부터 '작은 예수회' '성바오로병원' '가톨릭센터 사회복지' '군인선교' '외국선교' 등 다섯 개 단체에 매달 일정액을 기부하고 있고, 또《가톨릭 다이제스트》란 월간잡지를 2년 동안이나 교도소에 보낸 일도 있다. 김상권, 그가 수필과 친교를 나누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오래 되지 않는다. 2008년 1월부터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에 나오면서 수필과 교제를 시작했고, 그해 3월부터는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에도 등록하면서 수필과 더 가까워졌다. 2년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거의 매주 한 편씩 수필을 쓸 정도로 수필에 열중하였다. 늦게 배운 도둑이 날 샐 줄 모른다더니 김상권은 완전히 수필에 빠진 듯 보였다. 그건 바로 강의실에서 늘 강조한 불광불급(不狂不及)의 정신이다. 그렇게 노력하더니 종합문예지《대한문학》2009년 봄호에서 <명사수 막내아들 덕에> 로 수필부문 신인상을 수상하여 당당히 수필가로 등단하였다. 그러더니 수필전문지 월간《에세이플러스(지금은 월간 '한국산문'으로 개명)》2009년 2월호에서는 <악수>란 수필로 신인상을 수상하여 거듭 등단하기도 하였다. 문단안팎에 수필가 김상권의 실력을 과시한 쾌거라고나 할까. 그가 수필과 인연을 맺고 2모작인생을 시작하면서부터 퇴직이후 시작했던 문인화, 판소리, 민요, 웃음치료, 컴퓨터를 그만두었다고 들려주었다. 그렇게 수필에만 몰두하더니 보라는 듯 일취월장으로 수준이 높아졌다. 수필가 김상권, 그가 10년만 일찍 수필에 눈을 떴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등단 수필가들에게 등단한 뒤 3년 안에 수필집을 출간하라고 권한다. 그만큼 치열하게 창작활동을 하라는 뜻이다. 모범생인 수필가 둔산 김상권은 그런 내 뜻을 잘 따라주더니 마침내 첫 수필집을 선보이게 되었다. 8월이면 마침내 김상권의 처녀 수필집 《百味의 王》이 선보이게 된다. 그가 쓴 수필작품 중에서 65편을 골라 7부로 나누었다. 이미 원고는 출판사로 넘긴지 오래다. 이 수필집《百味의 王》은 행촌수필문학회 회원으로서는 40번째로 출간한 수필집이다. 이 수필집이 나오면 아직도 수필집을 출간하지 못한 행촌수필문학회 선배 수필가들이 크게 자극을 받으려니 싶다. 2. 김상권 수필의 맛과 멋 프랑스의 문학평론가 알베레스(R.M.Alberes, 1921~)는 <20세기 문학의 총결산>이라는 글에서 "수필이란 지성을 바탕으로 한 정서적, 신비적, 환상적 이미지로 쓰인 글이다."라고 했다. 또 김광섭은 "인간미를 보여줄 흥미나 자질을 갖지 못한 사람은 평론이나 소설은 쓸 수 있을지 몰라도 결코 수필은 쓸 수 없다."고 갈파했다. 수필은 체험의 문학이다. 그러므로 수필가의 다양한 체험은 다채로운 수필을 빚을 수 있는 원천이 된다. 또 수필은 평범한 일상에 새로운 의미의 옷을 입히는 문학이라고도 했다. 모름지기 수필가라면 육안(肉眼)으로 본 것만을 전부인 양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심안(心眼)으로 헤아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까닭이다. 좋은 수필을 쓰려면 잡학박사가 되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엇을 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직관과 사색으로 그 본 것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했느냐가 중요하다고 한 영국 작가 Leggett의 말은 백 번 옳다. 수필가라면 누구나 귀를 기울여야 할 가르침이다. 이제 늦깎이 수필가 김상권의 수필 속으로 들어가 보자. 술을 많이 마시면 독이 되고, 적당히 마시면 약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술은 절제가 필요하다. 첫 잔은 사람이 술을 마시고, 둘째 잔은 술이 술을 마시며, 셋째 잔은 술이 사람을 마신다고 한다. 술을 권하지 않을 사람에게 권하는 것은 술을 잃어버리는 것이요, 술을 권할 사람에게 권하지 않는 것은 사람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런 까닭에 군자는 술을 권함에 있어서 먼저 그 사람됨을 살피는 것이다. 속인이 술을 마시면 그 성품이 드러나고, 도인이 술을 마시면 천하가 평화롭다. <술과 벗 삼아> 중에서 천하의 애주가 김상권이 어찌 술을 소재로 한 수필을 쓰지 않을 수 있으랴. 평생 술을 즐겨 마셨으니 어찌 술에 대한 그 나름의 철학이 없겠는가? 그가 술집에서 술값 내기를 주저하지 않고, 술을 많이 마셔도 술주정을 하지 않는 이유를 알만하다. 그는 분명 술에 관한한 속인이 아니라 도인 반열에 오를 만하다. 글은 곧 사람이란 경구가 딱 들어맞는 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수필가 김상권, 그는 수필과 사랑을 속삭이면서부터 모든 걸 예사로이 보아 넘기지 않는다. 우주만물이 다 수필의 소재가 된다고 하니 그런 것 같다. <좌와 우>라는 작품도 모티브는 88년 만에 좌측통행을 우측통행으로 바꾸게 된데서 착상이 이루어진 작품이다. 상당히 심도 있게 깊이 파고들어 독자의 공감을 자아낸다. 조선시대 정치제도는 좌측선호현상이 뚜렷했다.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높았으며, 문관은 좌측, 무관은 우측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남자가 소변을 볼 때 물건을 쥐고 있는 손이 왼손인가, 오른손인가를 보고서 양반을 분별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전해진다. (중략) 평상시에는 오른쪽으로 새끼를 꼬다가 금줄은 왼새끼를 튼다. 또 호랑이가 사람을 앞발로 쳐서 왼쪽으로 넘어지면 살려주고, 오른쪽으로 넘어지면 잡아먹는다는 속신도 있다. 성스러운 것은 전적으로 왼쪽 몫인 셈이다. <좌와 우> 중에서 세밀하게 관찰한 화자의 눈썰미가 놀랍다. 이 작품은 좋은 작품으로 뽑혀서 계간《선수필》에 수록되기도 했다. 수필은 가르치는 글이 아니라 느끼게 하는 글임을 일깨워 주는 작품이다. 가수는 목소리가, 화가는 색채감이 좋아야 하듯 수필가는 문장을 다루는 능력이 갖춰져야 좋은 수필을 빚을 수 있는 법이다. 또 수필가는 모름지기 세 가지 눈을 가져야 할 것이다. 첫째는 자기를 보는 눈, 둘째는 남을 보는 눈, 셋째는 세상을 보는 눈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눈만 갖고 있으면 수필의 소재를 찾는 일은 식은 죽 먹기나 다를 바 없다. 수필가 김상권도 그런 눈을 가진 것 같아 믿음직하다. <참 좋은 사람들>이란 작품을 읽으면서 수필가 김상권의 눈이 자기를 보는 눈, 남을 보는 눈, 세상을 보는 눈을 두루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점에서 책값을 치른 뒤 지갑을 놓고 귀가했다가 다시 찾아갔더니 당연하다는 듯 지갑을 돌려주는 서점아가씨, 잃어버린 휴대폰을 되찾게 해 준 30대 주부, 시내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아가씨, 은행에서 환전할 때 10만 원을 더 받았다가 곧바로 돌려준 친구 이야기, 택시에서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뒤에 탄 승객이 휴대폰으로 연락하여 돌려받은 사위 이야기, 해마다 전주 노송동 주민센터에 몰래 많은 돈을 놓고 간다는 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 이야기, 현금 180만 원의 현금과 450만 원을 저축한 예금통장 그리고 도장, 휴대폰이 들어있는 검은 비닐봉지를 발견하고 주인을 찾아 준 마산의 이영순 씨 이야기 등을 묶어 멋진 수필을 빚었다. 세상에 대한 김상권의 밝은 시선과 애정, 긍정적인 삶의 태도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세상이 각박한 것 같지만 사실은 이처럼 아름다운 미담들이 즐비한 곳이다. 우리가 사는 곳이 바로 살맛나는 세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세상을 바라보는 화자의 눈길이 따사롭다. 태어나고 자란 환경에 따라 저마다 경험이 다르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식성이라든지 습관 등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여러 곳 여러 면에서 두루두루 경험한 사람만이 모나지 않고 포용력과 이해심이 많은 사람으로 자랄 수 있을 것이다. 이러기에 특히 어렸을 때의 경험은 더 중요하리라. 경험의 어머니를 여행이라고 하면 어떨까. <바다의 맛> 중에서 내륙지방에서 태어나서 자란 김상권은 나이가 들어서 바다를 만났고, 바다에서 나는 생선의 맛도 늦게야 대할 수 있었다. 친구들과 더불어 전남 신안군 임자도 대광해수욕장으로 피서를 갔다가 여름의 보양식이라는 민어회와 민어탕을 맛보게 된다. 그 생선회와 탕의 맛을 '바다의 맛'이라 명명한 것은 참으로 참신한 표현이다. 어떤 소재든지 수필가 김상권의 5감(五感)안테나에 걸리기만 하면 그는 놓치지 않고 수필을 빚는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대단한 뚝심이다. 아니 한 번 사냥감을 물면 놓지 않는 진돗개 정신이라고 할만하다. 오늘 아버지와 어머니를 납골당으로 모셨다. 40여 년 동안 계셨던 곳에서 전주 금상동성당 하늘자리 납골당으로 모신 것이다. 너무도 오랜 세월이었다. (중략) 김천에서 여동생과 매제, 서울에서 형수님과 조카들, 자식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 외손자들이 모였다. 내가 명절 때마다 찾아와 성묘를 하던 곳, 성묘를 하면서 우리 가족을 잘 보살펴 주십사고 빌었던 곳, 이곳이 오늘로 마지막이다. <한 줌의 흙> 서두 사람이 죽으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다는 진리를 몸소 체험하고 쓴 작품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묘를 이장하려고 밭을 사서 가묘를 만들고 잔디를 심어 가꾸노라니 몹시 힘들더란다. 그래서 장차 후손들이 조상의 묘소를 어떻게 가꿀 것인지 생각하다가 성당의 납골당에 모시게 되었다는 내용을 화소(話素)로 한 수필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회상이 절절하여 독자의 가슴을 울린다. 수필가 김상권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창의 고인돌을 보면서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친다. 고인돌을 만나는 것은 단지 돌이 아니라 3천 년 전에 살았던 그들의 삶과 만나는 것이다. 지금 함께 살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청동기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우리에게 세계문화유산을 남겼는데, 이 시대에 사는 우리는 후대에게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다들 어디로 갔을까> 결미 화자는 서두에서 3천 년 전에 고인돌을 세운 그 사람들이 다들 어디로 갔느냐고 외친다. 그들은 어디서 와서 이 세계문화유산을 남겨놓고 어디로 갔느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결미에서는 이 시대에 사는 우리는 후대에게 무엇을 남길 수 있느냐고 묻는다. 현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무거운 책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 누구도 선뜻 대답할 수 없는 무거운 질문이다. 수필가는 과학자처럼 항상 '?'표를 갖고 살아야 한다. 역사가 기억에, 철학이 이성에 의지할 때 문학은 상상(想像)을 바탕으로 전개된다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말을 되새기게 한다. 수필가 김상권은 모든 일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의문을 갖고 살펴본다. <12월 32일>이란 작품이 그 대표적인 수필이다. 31일 다음에 오는 숫자는 말할 것도 없이 32다. 그러면 12월 31일 다음날은 12월 32일이 돼야 맞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는 12월 32일을 새해 1월 1일이라 부른다. <12월 32일> 서두 아무도 의문을 갖지 않은데 오직 화자만이 의문을 제기한다. 논리적으로는 타당한 말이다. 독자도 뜻밖의 문제제기에 공감의 미소를 보낼 지도 모른다. 과거는 사라지거나 묻혀버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역사는 발전하지 못한다. 싫든 좋든 과거가 있었기에 오늘이 있고 미래가 있는 것이다. 과거를 거울삼아 새로운 의미를 찾아야 할 때다. <12월 32일> 중에서 습관이나 고정관념이란 굳은살을 떼어내면 늘 보던 사물들도 새롭게 보인다. 그것이 바로 낯익은 것을 낯설게 하기인 것이다. 수필가라면 누구나 귀담아 들어야 할 이야기다.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은 매주 월요일 오후 5시에 강의가 끝나면 가까운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긴다. 술잔을 주고받으며 그날 있었던 수필창작반 강의내용을 화제로 삼는다. 애주가 김상권이 이 모임을 <제3강의실>이라 명명하고 한 편의 수필로 빚었다. 이 자리에서는 아무런 제약이 없이 자유롭게 대화가 엮어진다. 일종의 브레인스토밍(Brain Storming)이다. 딱딱한 강의실보다 이 제3강의실의 분위기가 더 좋다. 아마 술의 덕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한때 이 <제3강의실>이 김상권 처녀수필집의 표제로까지 검토된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은《百味의 王》에게 밀리고 말았다. 제3강의실은 나에겐 산 교육장이다. 이곳에서는 스스럼없이 대화가 오가면서 정보를 교환하고 소재도 얻는다. 오늘은 김길남 문우님의 작품 <아궁이의 추억>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옛날 땔감에 대한 경험을 한마디씩 쏟아냈다. 국무총리‧장관 인사청문회를 보고 이해찬 전 총리가 말한 '위장전입은 필수, 논문 표절은 선택과목'이란 말도 화제에 올랐다. 우리들의 제3강의실은 뒤풀이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장소가 수시로 바뀐다. 오늘도 나는 수필에 취하고 술에 취하면서 수필쓰기 요령을 한 수 배웠다. <제3강의실> 결미 제3강의실은 근 3년 가까이 이어오는 작은 모임이다. 장소는 고정된 게 아니라 수시로 바뀐다. 그러나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30여 명의 수강생들 중 고정참석자는 전, 현 애주가 12,3명쯤 된다. 이 모임 때문에 그들은 월요일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수필가 김상권은 이 <제3강의실>이란 수필에서 그날의 강의내용인 <수필, 그 30초 전쟁>을 요약해서 소개하고 제3강의실 분위기를 유머러스하게 묘사하여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3. 김상권 수필가의 앞날을 위하여 일찍이 두보(杜甫)는 책을 만 권 읽으면 붓에 귀신이 달린 듯 글이 써진다고 했다. 하지만 만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그러나 유능한 수필가가 되려면 독서를 많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독서를 통한 간접체험이 바로 수필쓰기의 밑거름이 될 테니 말이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 도서관이었다. 하버드 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이 독서하는 습관이다."라고 한 세계적인 부자 빌게이츠의 말을 곰곰 음미해 볼 일이다. 이거야말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김상권 수필가가 69세에 처녀 수필집을 낸 것은 대단히 늦은 출발인 셈이다. 그러나 그 나이가 되도록 시작조차 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으니 늦었다고 후회할 일만은 아닐 듯하다. 이제 와서 가버린 세월을 돌릴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지금보다 더 부지런히 수필에 정진하지 않으면 안 될 줄 안다. 지금은 '인생 100세 시대'라고 하지 않던가? 1년은 52주다. 1주일에 한 편의 수필을 쓴다면 1년에 52편의 수필을 쓸 수 있다. 그러나 2주일에 한 편씩 쓴다면 2년이면 한 권의 수필집을 엮을 원고가 모이게 된다. 그런 계산법을 머리에 새겨두고 수필에 더 깊이 빠져보라고 권하고 싶다. 수필문학이 미래문학으로서 온 문예를 주름잡을 날도 멀지 않다고 한 아나톨 프랑스의 말은 수필가 김상권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다. 끝으로 서양 금언 한마디를 선물로 남기고 싶다. 그 의미를 마음에 깊이 새겨두기 바란다.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FLOAT LE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