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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김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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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50회 작성일 10-05-23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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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同行)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명희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이 들어있고, 온 누리에 기쁨을 안겨줄 다투어 피고 지는 꽃들과 싱그러움을 더해가는 희망의 달이다. 1년 중 가장 등산하기에 좋은 날씨가 5월 중순이 아닐까 싶다. 밤과 낮의 기온 차가 적고 날씨 또한 우기(雨氣))가 아니어서 이러한 모든 여건을 고려할 때 해마다 이맘때면 우리 부부는 장거리 등반길에 오른다. 금년에도 연중행사처럼 3년째 5월 14일부터 1박2일 예정으로 일행 다섯 명과 함께 남덕유산으로 떠나게 되었다. 일행 중 팔순에 가까운 분과 칠순의 고령이 동행하게 되어 더욱 의미가 컸다. 2003년 봄부터 산악회에서 알게 되어 열 명이 '기린 산우회'를 결성하여 일주일 중 월요일은 기린봉, 수요일은 모악산을 오르며 산행을 해온 친선모임이다. 전국 유명산은 거의 올랐고 전주 근교의 구봉산, 만덕산은 가끔 한 번씩 올랐다. 전날까지 열심히 준비를 마친 일행은 전주(안골 시외버스 간이 정류장)에서 6:25분 버스를 타고 장계를 거쳐 8시쯤 안성에 도착하여 택시로 약 7km쯤 가면 칠연계곡(칠연폭포)이 나온다. 그곳에서부터 등반길에 오르기 시작한다. 총 24km 장거리산행이고 보니 정신무장이 필요했다. 8;22분 우리 일행은 진리를 찾아 떠나는 순례자처럼, 존 번연의 ‘천로역정(1678년 처음 출간)’의 한 장면처럼 등산길에 올랐다. 눈앞에 펼쳐진 장대한 칠연계곡은 한 폭의 수채화를 옮겨 놨다고나 할까! 청정지역이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활엽수림과 잘 어울려 숲을 이루고, 그 밑으로 흐르는 맑은 물속엔 혹시 산천어가 살고 있지나 않을지 궁금했다. 나는 자연 에 흠뻑 빠져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게 하였다. 무릉도원에 온 느낌이라고나 할까? 자연휴양림은 몹시도 아름다웠다. 경북과 전북을 가르는 백두대간의 흐름은 멀리 덕유산 그리고 지리산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남덕유산' 동엽령을 지나 무룡산(해발1491,9m)에 오르니 서서히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이틀 동안 먹어야할 식량과 물, 구급약, 여벌의 옷, 취사도구 등 최대한 줄여서 짊을 꾸렸지만 장거리산행인지라 일행의 두 어깨에 매달린 무거운 배낭은 우리의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했다. 이곳에서 11시쯤 점심을 먹고 나니 짐이 한결 가벼워지는 듯했다. 인생은 등산하는 것과 같다고 했던가? 길을 잘 찾아가다가도 순간의 선택으로 길을 잃고 헤매는가 하면, 험준한 난코스가 우리 앞에 전개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가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이정표를 따라 갔더라면 험준한 그 인생길에서 그렇게 헤매지 않았을까” 회한의 삶을 더듬어 보며 '이것이 인생이다'의 주제가처럼, 굽이굽이 돌아왔던 인생길, 길을 잃고 헤매며 살아온 발자취를 잠시 더듬어 보았다. 그 눈물이 지금은 보석이 되어 자녀들의 극진한 효를 받고 있으니, 젊어서 고생은 아이들에게 산교육이 되었으리라. 소나기를 동반한 우레를 만났을 때 비를 피할 비옷이나 우산이 필요하듯, 양손에 든 스틱(Stick)에 내 몸을 의지한 채 한 발 한 발 오르내리는 나는 애당초 무리였다. 일행 중에는 15년 이상 선배님이 계시지만 나는 평발인지라 조금만 걸어도 금방 피로가 쌓인다. 팔순에 가까운 그분을 걱정을 했는데 오히려 그분이 반대로 나를 걱정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미안하고 죄송했다. 삿갓재 대피소는 인터넷으로 사전에 예약을 했기에 숙식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 대피소는 국립공원의 안전한 등산객 숙소인 쉼터인데 정원이 45명이지만 예비 2명을 포함하여 47명까지 잘 수 있는 곳이다. 간단한 생활필수품이 구비되어 있고 전깃불은 자가발전으로 저녁식사 등을 위하여 두 시간, 아침식사를 위하여 새벽에 두 시간 정도 들어온다. 담요 두 장을 포함하여 1박에 유료(10,000원)로 제공하고, 보일러도 밤에 두 차례 공급해주니 따뜻하게 지낼 수 있어 좋았다. 삿갓재대피소는 5월부터 그 이듬해 2월말까지 개방한다. 삿갓재대피소에서 여장을 풀어야 한다는 희망을 안고 시간이 많이 남아 30여분 낮잠을 청했다. 피곤함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9천 성불공자가 머물던 후덕한 계곡에서 해발 1,614m인 덕유산은 이름 그대로 후덕한 육산이라고 불교계에서 말하듯, 지대가 높다보니 곧게 자란 나무가 없고 주종이 철쭉과 싸리나무, 산죽으로 채워져 그늘이 없다. 고산에 서식하는 취나물 같은 풀잎을 뜯어 냄새를 맡아보니 비슷하지만 취나물은 아니었다. 나무는 아직도 겨울잠을 자며 꿈속을 헤매고 있는지 도무지 움이 트려하지 않았다. 이름 모를 고산식물들로서 그들만의 애환이 담긴 소박한 삶이 정겨워 보였다. 문전옥답도 때를 놓쳐버리면 잡초만 무성하여 오히려 가꾸어야 할 곡식은 녹아 없어져 버리고 풀뿌리만 왕성하게 자라는 예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아스라이 멀어져 가는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풀뿌리가 한 번 엉켜버리면 다시 회복하기 힘든 밭농사는 사회의 한 단면과 매우 흡사하다. 오후 3시 우리 일행은 삿갓대피소에 도착했다. 기진맥진한 몸으로 더 이상 움직이기조차 귀찮았다. 물을 공급받기 위해서는 약 150개의 계단을 내려가 물을 길어야 했다. 날마다 조그만 산으로 등산을 한 탓에 고령의 몸으로도 모두 지친 기색 없어 보기 좋았다. 경험에 의해서 4리터 플라스틱 빈 소주병을 준비해온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취사할 물을 공급해 주었는데 작년부터 가물어서 물을 뿜어 올릴 수 없다고 했다. 염치불구하고 길어온 물로 발을 씻으니 약간의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산에 오면 남자들이 취사문제는 해결해 주니 고맙다. 뒤처리는 키친 타올이 한 몫을 담당해주니 물을 아낄 수가 있었다. 남덕유산은 여름 산으로서는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늘이 없고 물을 공급받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산속에서 지내는 밤은 어둠이 짙게 깔리고, 적막이 흐르는 고요함이 무색할 정도로 잠자리에 누워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웠다. 동행(同行)의 묘미라고나 해야 할까? 이튿날 아침 6:22분에 출발하여 삿갓봉(해발1,418.6m)을 넘어 1시간 28분 만에 월성재(해발1,241m)에 도착하여 이정표를 보니 남덕유산 정상(1.4km)이 바로 코앞이었다. 드디어 남덕유산 정상, 산악인 오은선 대장을 떠올리는 순간이었다. 가냘픈 여자의 몸으로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 14봉을 오른 산악인이라는 명예를 얻기까지 숱한 역경을 거쳤으리라. 또 김연아 선수 역시 피나는 노력으로 온갖 역경을 참고 견뎌온 보람으로 세계 100인의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고,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되며, 충북 음성의 큰 바위 얼굴 조각공원에도 명예스러운 영원한 얼굴로 새겨지게 되리라. 앞으로 그 공원에 가면 산악인 오은선 대장과 골프의 여왕 박세리 선수랑 함께 큰 바위 얼굴로 새겨진 모습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제 자리에서 끊임없이 노력한 인간승리자가 아니던가? 오전 9시 남덕유산(해발1,507m)에 도착하였다. 그곳은 경남 거창군 극서점으로서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선이다. 간식을 먹고 서봉으로 길을 재촉했다. 어제는 7시간을 걸었지만 오늘은 그보다 훨씬 더 걸어야 한다. 내리막길을 가다가 다시 올라가는 서봉은 계단이 약150개(나무계단 포함)인데 서봉(해발1,492m)은 경남 함양군 땅이다 이 세상이 창조되면서 화산폭발의 영향인지 바위들의 형상이 신비스러웠다. 상쾌한 바람은 기분을 전환시켜 주었다. 작년 5월 23일에 이곳을 지나면서 노무현 대통령 서거소식을 지나가는 등산객으로부터 들었다. 우리 일행은 잠시 침묵에 휩싸였다. 내년에도 다시 올 수 있을까 하여 감회가 새로웠다. 지금은 인생 100년 시대라는데, 나의 인생지표를 잠시 그려 보았다. 어차피 가야할 인생이라면 신발을 신고 죽고 싶다. 즉 팔팔하게 살다가 고생하지 말고 자식들에게 신세지지 말고 산다는 뜻일 게다. 노년에 이르면 누구나 나이를 거꾸로 센다고 한다. 여생이 몇 년이나 남았을까?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언젠가 제 육신마저 버리고 가야한다. 명함 한 장을 얻으려고 남의 허물을 들추며 온갖 자기의 이력을 다 들어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파렴치한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고 남을 용서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내 마음이 편할 것이다. 또 남의 말을 잘 들어주어 상대방의 고민을 덜어준다면 이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 밝은 사회로 나아가는 소통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동행들을 통해 내 인생을 돌아보게 되고, 서로 생각해주는 배려의 마음이 무척 아름답다. 그분들이 체험하신 삶의 이야기는 몇 편의 수필을 읽은 것처럼 즐겁다. 서봉에서 0.3km를 내려가니 참샘이 나왔다.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모두 피로를 풀기위해 찬물로 발을 씻었다. 피로를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신기했다. 지름이 약 20센티쯤 되고 깊이는 약 15센티쯤 되는 아주 조그만 삼각형의 샘에서 나오는 석간수는 나그네들의 생명수다. 여러 사람이 물을 퍼내도 금방 채워지는 신비의 참샘, 누가 2개의 바가지를 가져다 놓았을까? 세상에는 이러한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아직은 살만하다. 커피를 한 잔씩 마시고나서는 남덕유산에서 가장 두렵다는 할미봉을 지나가야 한다. 가면서도 몇 번이나 묻는 남편, “할미봉 오르는 곳에 계단을 놓았던가요?” “아니요, 밧줄을 타고 내려오는데 아주 재미있던데요.”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닥치면 다 하게 되어 있다. 할미봉만 넘으면 어려운 고비는 거의 끝난다. 내가 워낙 늦으니까 팔순에 가까운 그분은 산에서 죽어도 좋다는 말씀을 남기고 먼저 떠나셨다며 기다리는 일행들이 걱정을 했다. 하필이면 할미봉을 앞에 두고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 가장 노령이신 그분이 걱정되어 걸음을 재촉했다. 아무리 늦어도 해전에는 집에 도착해야 할 텐데. 아니나 다를까! 함성이 들려왔다. 반가웠다. "산에서는 산짐승이 주인이다. 소리를 지르면 안 된다. 우리들은 남의 구역에 왔으니 그들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하시던 그분의 목소리가 아닌가! 드디어 할미봉 앞에 다다르고 보니 그 장엄한 바위 틈바구니에서 밧줄을 잡고 올라가야 하니 공포심이 생겼다. 장엄한 바위 앞에서 맥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힘이 넘치던 젊은 시절을 상상해 보았으리라. “내가 걱정을 많이 했어요.” 어렵고 힘든 노구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내 걱정을 해주셨다. “할망구가 왜 그렇게도 사나워?”라며 멋쩍게 웃으시며, 하신 말씀은 힘이 들었음을 뜻할 것이다. 내리막길 또한 위험하다. 등산은 언제나 내려가는 길에서 사고를 만난다.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은 무려 9시간을 걸었다. 나는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천천히 걸어왔기에 무사히 등반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인생은 장거리 마라톤이다. 서두르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도 더 노력하여 건강관리를 해야겠다. 오후 3:10분 육십령고개에 도착하였다.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하산하게 되어서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예전에 도로가 나기 전 사람들이 도보로 다닐 때 꾸불꾸불 고개가 60개나 됐다고 해서 육십령고개라고 하며, 이 고개가 도둑이 많아 60명이 모아져야 넘는 고개라 해서 60명재라고 한단다. 이렇게 어려운 등반을 할 수 있도록 동행(同行)을 해주신 기린산우회 회원님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1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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