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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 없이/정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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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11회 작성일 10-05-19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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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怯) 없이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장영 예나 지금이나 어디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세상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요즘 가지가지 믿기 어려운 사건들이 일어난다는 보도를 지켜보니 불안할 따름이다. 일찍이 이런 세상이란 것을 미리 알았다면 마음 편히 못살았을 것 같다. 사회가 발전해서? 퇴보해서? 옛적보다 복잡하고 인심이 사나워져서일까? 참으로 아리송한 일이다. 흔히들 무식은 용감하다거나 모르는 것이 약이다, 아는 것이 병이라는 말이 참으로 맞는 것 같다. 어린이 유괴, 부녀자 납치, 성추행 살인, 금품탈취, 살인강도 등 듣지 못했던 흉악범, 모두 생소한 말들이다. 세상을 믿지 못하고 살아야 할 것인가? 내 어릴 적에 겁(怯)없이 살아 왔던 일들을 떠 올려본다. 첫째, 초등학교 5학년 때는 형과 나(3학년)는 단둘이 여름방학을 틈타 멀리 일본에서 한반도 고향까지 한 달 동안 낯선 여행길을 다녔으니 겁 없는 도전이었다고나 할까 아니면 무모했다 할까? 둘째, 5학년 때 일이다. 일본은 섬나라 해양국이라 여름방학이면 학교에서도 해수욕을 권장했다. 동행할 사람이 없어 겁 없이 홀로 교외전철(南海線)을 타고 날마다 스케마쓰(助松)해수욕장을 한 달 동안 찾아 다녔다. 이제 생각해보니 안전상 너무나 통 큰 짓을 했었다고나 할까! 셋째, 1945년 3월 13일 미 공군의 대공습으로 이재민이 된 뒤 폐허가 된 옛 집터(大阪)를 찾아 다녔다. 아수라장이 되고 악취 속에 불에 탄 시신이 즐비한 사이를 걸어다니며 참상을 보았고 처참한 주검이란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넷째, 혈육인 재종형이 징용으로 오사카(大阪)군수공장에 끌려와 있었는데 주말이면 왕래가 있었다. 하루 밤사이 이재민(罹災民)이 된 뒤 서로 소식을 전하려 홀로 그곳을 찾아 갔었다. 다섯째, 공습(1945년4월~6월)이 계속되는 가운데 겁 없이 홀로 열차통학을 한다고 폭탄공격, 시한폭탄 투하, 전투기의 기총소사 등의 공습을 날마다 겪으면서 다녔다. 여섯째, 일본 패망(815) 직후 호기심에 찬 나는 홀로 고오베(神戶), 나고야(名古屋), 교오또(京都) 등지를 겁 없이 구경삼아 돌아 다녔었다. 소년시절은 지금과 같은 뉴스매체는 없었다지만 악랄한 범인들이 날뛴다는 사실을 듣지도 못했고 알았다면 겁 없이 다니지도 못했을 것이다. 날치기정도의 범죄밖에 몰랐다할까? 돌이켜 보건대 소년이 마음 놓고 자유로이 다닐 수 있었던 것은 경찰의 치안문제인 것 같다. 당시 일본의 경찰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경찰력은 결국 정보력이랄까! 시(市)행정의 말단기관은 구청(區 役所)과 파출소였으나 통 반조직운영이 잘되었다. 그들은 경찰을 오마와리상(御巡り樣)이라 했다. 우리말로 '돌아다니며 살피는 사람' 다시 말해 주민과 벽 없이 가깝고 친절한 관계로 정보가 매우 빨랐다. 혹시 파출소에 첩자를 두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또 호구조사부가 있어 관할 구역 내 세대별 인구파악뿐 아니라 가족 수, 성향, 동향까지 알고 있었다. 따라서 변동상황을 파악하려고 주기적으로 방문 순찰을 했었다. 특이한 가정은 더욱 방문이 잦았다. 우리 집도 형이 중등교육을 받기 시작하니 사찰대상이 되었다 할까? 주말마다 형을 친구삼아 친절히 그들이 찾아 다녔었다. 당시 한반도(당시는 반도라 함)에서는 어떠했던가? 각 면과 요지에 경찰주재소가 있었고 역시 호구조사가 심했다 한다. 호구조사를 구실삼아 주민의 성향파악은 물론 청결위생검사까지 했다. 호구조사 날이 다가 오면 온 동네가 그 대비에 소란했었다 한다. 일제청소에 정리정돈은 물론 몸의 청결상태와 가족 이동 상황까지 조사했다. 다시 말해 모든 정보 수집을 위해 집집마다 온 집안을 뒤지고 살폈다할까! 독립 운동가들이 도저히 발붙일 수 없었다 한다. 그런데 우리 조국이 광복되었어도 경찰은 어떠했던가? 일본의 경찰이름마저 그대로 써 왔다. 주민과 아주 친절해야 할 경찰이 일제침략과 통치의 앞잡이로 낙인 찍혀 국민적 정서가 나빴던 차, 좌우갈등으로 더욱 나쁜 인식이 심화되었다. 또한 한때 정권유지의 시녀로 전락하기도 했었다. 민주화바람과 경찰 스스로의 노력으로 차츰 친절하고 진정한 '민중의 지팡이'가 되고 있지 않는가? 이제 경찰도 잘못된 전철을 밟지 말고 각성할 때도 지났다. 국민들도 경찰에 대한 나쁜 인상을 버리고 거부감 없는 경찰로 대하고 협조해야 할 것이다. 황금만능주의 세상이 되어 흉악범이 날뛰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경찰력을 오로지 치안유지에만 힘을 다한다면 밤낮 어디인들, 겁 없이 오가며 살아 갈 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될 것이 아니겠는가? (2010.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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