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 숨 쉬는 하회마을/윤석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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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이 숨 쉬는 하회 마을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윤석조
성당노인들 모임에서 부부동반으로 하회마을과 그 주변을 보고 온다하여 따라 나섰다. 안동지방을 두어 차례 여행하였으나 모두 퇴직하기 전이어서 10년이 훨씬 지났다. 안동댐과 하회마을, 도산서원을 다녀온 희미한 추억만이 맴돌 뿐이다. 지금은 많이 발전했으리란 희망으로 즐거운 나들이가 될 것 같았다. 날씨조차 화창한 봄날이었다.
같은 모임에서 여러 차례 여행을 같이 했던 노인들이어서 반가운데, 친절을 베풀며 봉사하는 교우들이 여행분위기를 더욱 돋워주고 있었다. 길가 화단의 꽃들과 푸른 나무속에 드문드문 산벚나무들이 화려하게 단장(丹粧)하고 있어서 보기 좋았다. 지나는 곳곳마다 봄빛으로 생동감이 넘치는데, 덩달아 젊은 날의 추억들도 떠오르고 있었다. 신탄진과 화서휴게소에서 쉰 다음 처음 가보는 지방도로로 낙동강가의 화천서원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그리 높지 않은 부용대에 올랐다. 하회마을을 돌아 나오는 낙동강이 깎아지른 기암절벽 밑으로 흐르고 있었다. 물 건너 하회마을 쪽을 바라보니 물가에 우거진 만송정 솔숲과 강둑을 따라 하얗게 핀 벚꽃이 절경이었다. 대여섯 사람이 탄 나룻배가 물위에 떠서 이쪽으로 오고 있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부여로 수학여행을 갔었다. 부소산의 낙화암에서 돌을 멀리 던지며 백마강을 내려다보았었다. 나루터로 내려가 배를 타고 선유(船遊)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서애 류성룡이 관직에서 물러나 임진왜란 전후의 상황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를 기록한 '징비록'을 썼다는 옥연정사를 둘러보았다. 그 앞마당을 지나 부용대 밑 부분에 겨우 한 줄로 난 길로 절벽에 의지하며 걸었다. 발밑으로 흐르는 맑은 물과 절벽 틈 사이사이에 핀 복숭아꽃이, 이암(泥巖) 층으로 된 절벽을 타고 오르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어 혼자 보기는 너무 아까웠다.
앞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강물이 휘감아 도는, 아담하고 운치 있는 곳에 세워진 병산서원을 돌아서 갔다. 사림(士林)들의 학문의 전당으로 서애(西厓) 류성룡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위패(位牌)를 봉안한 곳으로, 철종 때 병산이라는 사액(賜額)을 내렸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려졌을 때도 제외된 전국 47개 서원 중의 하나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전 미국대통령 부시와 그의 부인이 방문기념(2005.11.13)으로 심었다는 소나무가 봄빛을 즐기고 있었다.
오후에는 먼저 하회별신굿 전수관을 찾았다. 3월부터 12월까지 수, 토, 일요일에 상설공연(14:00-15:00)을 하고 있었다. 벌써 관람객들이 전수관을 메우고 있어 관람객들의 틈에 끼어 재미있게 보았다. 마을의 안녕과 풍작을 비는 별신굿 행사에 탈을 쓰고 놀이를 한 것으로, 풍자와 해학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안동을 대표하는 민속놀이로 무동마당, 주자마당, 백정마당, 할미마당, 파계승 마당, 양반 선비마당 등 열 마당이 전승되고 있다 하였다.
하회마을은 풍산 류 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었다.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자료(122호)로 전통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고 국보와 보물 등 문화유산들이 있다. 기와집과 초가가 오랜 역사 속에서도 잘 보존되어 있었다. 조선시대 유학자인 류운용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냈으며, 당파에 휘말린 이순신 장군을 보호해 주셨던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곳이다.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은 채 흐르고 있어 ‘하회(河回)’ 또는 ‘물돌이동’이라 불린단다. 임진왜란 때 유일하게 화를 입지 않은 길지(吉地)였다고 한다.
하회마을로 들어서자 집집마다 대문에 입춘서(立春書)가 붙어 있었다. 하동고택을 지나 풍산 류 씨 대종택인 양진당을 건성건성 둘러보고 충효당을 찾았다. 서애 류성룡 선생이 평생을 청백하게 지내고 별세한 뒤에 그의 문하생과 지역사람들이 선생의 덕을 추모하여 건립하였다고 했다. 선생님의 발자취가 구석구석에 많이 남아 있었다. 당파 싸움에 휘말린 이순신을 보호해주신 류성룡 선생을 생각하며 돌아보았다.
나오는 길에 삼신당 신목을 찾았다. 보호수로 수령이 600백년이 된다는 큰 느티나무로 마을 중앙에 위치하고 있었다.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대동제를 이곳에서 지낸다고 하였다. 느티나무 둘레를 동아줄이 여러 겹으로 감겨 있고, 하얀 종이에 자기들의 소원을 비는 쪽지를 줄에 매달아 놓아 있었다. 우리도 다녀간 흔적으로 이름을 적어 동아줄 틈 속에 접어 넣고 아내와 마주보며 웃었다. 안채와 큰 사랑채, 사당을 지어 대갓집의 규모를 갖추어 사대부 가옥의 면모를 보여준다는 화경당을 둘러보고 나왔다. 시내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낙동강이 발아래로 흐르는 오솔길을 따라 걸어 나오니 주변 풍광이 몹시 아름다웠다.
상주지방을 지날 때 너른 지역의 하얀 배꽃들이 노을 진 석양빛에 곱다는 탄사(歎辭)가 절로 나왔고, 옛날 국어선생님의 모습도 어른거렸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은 삼경인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이조년의 고시조(古時調)가 입속에서 맴돌았다. 부용대에서 하회마을을 돌아 나오는 낙동강의 맑은 물과 강둑의 벚꽃, 모래사장, 만송정 솔숲을 내려 보니 참으로 좋은 풍광이었다. 이순신 장군과 권율 장군을 중용토록 추천한 류성룡 선생의 훌륭함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징비록'을 쓴 장소인 옥연정사와 병산서원, 하회별신굿 탈놀이도 처음 보았으니, 하회지방여행을 제대로 한 것 같아 더더욱 좋은 날이었다.
(2010.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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