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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침/이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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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78회 작성일 10-05-0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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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침 전주안골복지관 수필창작반 石河 이 신 구 다락방에는 할아버지께서 쓰시던 퇴침이 있었다. 퇴침을 보면, 할아버지께 종아리를 맞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그때 왜 종아리를 때리려면 꼭 퇴침 위에 올라서게 했을까? 나는 할아버지 앞에서 종아리를 걷어 올리고, 퇴침 위에 올라가 회초리로 맞은 일이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심부름을 잘못했을 때이고, 그 다음은 천자문을 배우다가 외워 오라는 글을 못 외워 왔을 때였다. 회초리는 어찌나 아팠던지 깡충깡충 뛰면서 울었지만, 용서가 없었다. 나는 나름대로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지만 할아버지께서는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하셨다. 나만 혼난 것이 아니다. 중학시절, 아랫집 순이 누나는 더 심하게 맞은 적이 있었다. ‘농사일을 하다가 급한 일로 공부하는 딸을 찾아간 아빠를 보고도 모른 척하며 불러도 도망갔고, 더구나 친구들한테 아빠를 머슴이라고 말했던 일’이 들통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없는 퇴침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꾸중하시는 분의 고뇌와 맞는 사람의 눈물을……, 언제인가 숙부님은 할아버지 퇴침을 보시며, 여기에 ‘할아버지의 꿈과 애환’이 있었다고 하셨다. 그때는 그 말이 무었을 뜻하는 줄 몰랐으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야 알게 되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젊어서는 한학자였으나 결국 목수로서의 생을 마감하셨다. 증조부께서는 성미가 급하시고 대쪽같이 곧은 선비로, 한학과 유학에 전념하셨으나, 당시 유학자들의 문파파쟁(門派 派爭)에 휩쓸려 갑자기 가세가 기울고, 증조부님까지 돌아가시자, 할아버지는 갑자기 주위사람들의 시선도 멀리한 채, 한학공부를 저버리고, 술도 끊으셨으며, 글공부 대신 목수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심정을 누가 알랴. 장손으로 태어나 우선 몰락한 가정의 호구지책을 해결해야 할 책임 때문이었을까. 또 대대로 물려받은 커다란 집을 넘기고 두 채의 사랑채를 헐어, 텃밭에 집을 마련하셨는데, 한 채는 숙부(종조부)댁, 한 채는 작은아들(숙부)에게 주시고, 당신은 금방 찌그러져가는 초가집으로 이사를 하셨단다. 그 속마음을 누가 헤아릴 수 있으랴. 당시 할아버지는 인근에 소문난 도목수로 여기저기 초빙을 받아 일을 하셨다고 한다. 그 뒤 가끔 출타하시면, 며칠, 혹은 달포나 들어오시지 않다가 오실 때는 푸짐한 양식과 목재 몇 개씩을 가져 오셨다. 그렇게 수년, 목재가 하나둘 쌓이면 할아버지께서 거처하실 큰집을 손수 지으시겠다는 생각이셨나 보다. 그러나 몇 개씩 모아놓은 목재가 이젠 하나둘 없어지게 되었다. 계속되는 가믐에, 보릿고개에, 거기에 시끄러운 세상 탓에 목재를 팔아 끼니를 연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속을 태우며 모았던 목재를 가끔 도둑맞기도 했단다. 그래서 결국 집을 마련하실 할아버지의 꿈은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래도 끝까지 아끼던 대들보로 쓰실 상량목을 남에게 넘길 때는, 당신이 직접 가셔서 일을 하시고, 번질번질한 목침 하나를 깎아 오신 것이다. 할아버지께서는 나이가 드셔 목수 일을 할 수 없을 때에야, 틈틈이 마을사람들에게 한학(천자문, 명심보감)을 전수하시는 훈장이 되셨다. 그리고 게으르고, 공부 않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젊은이들을 퇴침에 올라서게 한 뒤 종아리를 치셨던 퇴침, 세상을 한탄하시면서, 화가 나실 때, 스트레스해소를 위해, 쾅쾅 마루를 치시던 퇴침, 그 퇴침은 집안의 흥망성쇠와 조부님의 애끓는 한을 알고 있으리라. 서랍이 있는 목침도 아니요, 자수 퇴침도 아닌 소나무로 깎은 이 퇴침은 이렇게 탄생되었다. 몸이 불편하실 때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꼭 베고, 끼고, 옆에 두다가 퇴침만 남겨두시고 가셨다. 지금도 큰집에만 가면 곱게 다락방에 모셔놓은 그 퇴침을 보면서, 후손들에게 남긴 무언의 교훈을 생각하며 만감이 교차한다. ( 2010. 0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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