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이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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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石河 이 신 구
고향 가는 길목에선 빨간 넝쿨 장미로 장식된 낮은 울타리 집을 지나치게 된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 한참이나 감상하다가 다시 한 번 돌아보며 울타리를 배경삼아 자화상 사진을 찍기도 했다. 집이 있는 곳에는 어디든 울타리가 있다. 도시의 집에는 높은 담벼락에 철조망까지 둘러친 집이 있다. 그런가하면 우리 고향마을의 탱자나무 울타리에서는 참새들이 숨바꼭질을 한다. 짚이나 수수깡 울타리 그 틈새에서는 장난도 치고 지나는 친구를 놀려대기도 했던 그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높건 낮건 울타리는 집을 지켜주고, 온 가족의 마음을 안정시켜주며, 가정의 펑화를 유지해 준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였을까, 기차역으로 가는 동네 길가에 노오란 개나리꽃으로 단장한 울타리가 있었다. 밖에서도 울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 울타리 안 작은 툇마루에는 갸름한 한 소녀가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집은 항상 평안해 보였고, 그림같아 보였다. 울타리가 낮아서일까, 아니면 노오란 개나리가 너무 고와서였을까? 나는 그 소녀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한 번 보았으면 하는 기대로 그 곳을 지날 때는 천천히, 헛기침도 하며 지나 갔지만 꼼짝도 하지 않아 더욱 궁금했다. 언젠가는 마주칠 날이 있겠지 하였건만 옆모습만 보고 지나쳤다. 하루는 그 이웃마을 친구에게 알아보았더니 그 소녀는 소아마비를 앓아 잘 걸을 수 없다고 했다. 해ㅏ 바뀌어도 노오란 개나리 울타리는 여전했지만 그 소녀는 이사를 갔는지 영영 보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그 집 앞에 경찰차가 와 있고, 동네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어젯밤 그 동네에 도둑이 들었다고 한다. ‘울타리가 너무 낮더라니’ 했더니, 그 소녀의 집이 아니라 높은 담장을 한 이웃 기와집이 털렸다는 것이었다. 철옹성 같은 벽돌울타리와 허술한 개나리울타리의 논쟁은 이렇게 결판이 난 것일까? 오늘날 우리사회의 울타리는 허술해서도 안 되겠지만, 꽁꽁 틀어막거나 높아서도 안 될 것 같다. 낮지만 튼실하며 아름답게 느껴지는 그런 울타리, 그래서 온 국민이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도록 하는 울타리가 필요할 것 같다.
나는 가끔 울타리를 볼 적마다 이웃집 높은 담장 울타리에 매달린 큰 소슬대문과, 내가 살았던 초가삼간 울타리에 매달린 싸리문이 서로의 처지와 역할을 비교하며, 무슨 대화를 했을까 궁금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가정에서의 울타리 역할도 변해가고 있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이 어릴 때는 가장이 울타리역할을 해야겠지만, 가장이 늙고 자녀가 장성하면 울타리의 개념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어릴 적 ‘홀 어머님 울타리’는 항상 높게 느껴졌고, 하시는 말씀은 지엄하셨다. 나이 들면서 울타리는 점점 낮아지고, 그 때야 어머님의 높으신 뜻과 고마움을 느꼈다. 나는 우리 집에서 어떤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는가, 너무 높은 담장을 치고 있지는 않았던가, 낮고 아름답게 단장한 울타리를 조성하려고 힘쓴 적은 있었던가 반성하기도 한다.
집집마다 울타리가 있듯이 우리 마음에도 저마다 듣든한 울타리가 있어야 한다. 그 울타리가 없다면 너무 허전하고 텅 빈 느낌이리라. 그러나 낮은 울타리는 밖에서도 안에서도 서로를 볼 수 있듯이, 이웃 사람끼리도 낮은 울타리같이 서로 격의 없이 잘 통할 수 있었으면 한다. 요즘엔 울타리와 담장 없애기 운동이 일고 있다. 꽃밭이나 간단한 조형물로 대신하고 있어 한결 아름답다.
이젠 묵은 울타리는 헐고 작고 아름답게 둘러쳐진 낮고 노오란 개나리울타리와 빨간 넝쿨장미로 단장한 울타리가 여기저기 조성되어 안정과 행복을 구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나도 그런 울타리를 만드는 하나의 말뚝이 되었으면하는바람이다.
(2010. 0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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