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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소나타/김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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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10회 작성일 10-04-2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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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소나타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야간반 김길남 사람이 타고 다니는 차라야 하는데 나는 소가 타고 다니는 차를 샀다. 사람차를 사지 못하고 '소나타'를 샀기 때문이다. 그것도 내 형편으로는 살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큰아이가 사주어서 타게 되었다. 교장 승진기념으로 사 준 것이다. 그 차를 산 지가 15년이나 되었으니 요즘 사람들이라면 서너 번은 바꾸어야 할 때다. 다 낡아빠진 차지만 그래도 그 차가 있어 다행이다. 운전을 배운 지가 오래 되어 처음에는 차를 몰고 다닐 용기가 나지 않았다. 별 수 없이 운전학원에 부탁해 도로주행을 익혔다. 강사가 조수석에 타고 내가 운전대를 잡았다. 움직이다 잘 못하면 강사가 브레이크를 밟거나 운전대를 돌려주어 조금씩 나아갈 수 있었다. 앞에서 차가 올 때는 금방 부딪히는 것 같고 사람이 보이면 치일 것 같아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덩치가 조그만 차가 어찌 그리 크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가다 서고 가다 서고하면 뒤차들이 경적을 울려 더 기를 죽였다. 아예 길가에 차를 세운 적도 여러 차례였다. 굽은 길에서는 운전대를 확 돌리니 너무 돌아가 위험스러웠다. 조금씩 돌리라고 조언을 해 주면서 처녀의 젖가슴을 만지는 식으로 살살하라 일렀다. 넓은 길에서 차선을 바꾸기가 어려웠다. 앞을 보랴, 뒤를 보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가 끼어 들면 다른 차가 쏜살 같이 달려와 받을 것만 같았다. 이렇게 무서워 하기는 처음이었다. 초보운전 딱지를 붙이고 운전을 시작했다. 첫날은 집에서 학교까지 무사히 온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었다. 차차 익숙해졌고 고속도로도 달려 보았다. 시집 온 새색시가 시댁에 익숙해지는 것과 같았다. 차는 참 말을 잘 듣는 하인이었다. 왼쪽으로 가자고 하면 왼쪽으로 가고, 돌아 가자면 돌아갔다. 서라면 서고 가라면 갔다. 빨리 가고 싶으면 속도를 내어주고 천천히 가려면 한없이 느려졌다. 추우면 훈김이 나오고 더우면 시원한 바람이 땀을 가셔주었다. 비바람이 불어도 오가는데 지장이 없고, 눈보라가 쳐도 가고 싶은 곳은 갈 수 있었다. 급한 일이 있으면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애마였다. 얼마나 편리한 하인인가. 이 맛에 길들여져 요즘 사람들은 화장실 갈 때도 차를 몰고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나 보다. 남의 차를 받은 일이 한 번 있었다. 소리문화의 전당에 들어가려고 좌회전을 하려는데 앞에서 차가 와서 접촉하게 되었다. 앞을 잘 보아야 했지만 버스가 가려 보지 못하고 당한 일이었다. 사람 사는 일에서도 잘 못 판단하면 실수를 하고 커다란 손해를 보기도 하는데 차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고로 보험회사에 할증료를 보태주었다. 택시에 슬쩍 닿았기에 손님은 내려서 그냥 갔었다. 그러나 택시 기사는 아프다며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억지를 쓴 것이다. 다른 차에 받힌 일도 두 번 있었다. 모두 상대 차가 보상을 해주었다. 한 번은 상대가 나보고 잘 못했다고 우겨대어 싸운 일도 있었다. 결국 경찰이 와서 판가름 해주어 끝났다. 차를 몰고 다니다 억지를 쓰는 것을 여러 차례 겪었다. 순리대로 잘잘못을 가리면 좋을 것을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줄 알고 날뛰니 사나운 인심을 어찌 탓하지 않으랴. 10년이 넘으면서 고장이 잦았다. 고치고 나서 조금 지나면 또 고장이 났다. 여기 저기 썩은 보릿자루 터지듯 했다. 이러기에 사람들은 차를 자주 바꾸는가 보다. 한 번은 집에 다 왔는데 사거리에서 시동이 꺼지더니 아무리 해도 다시 걸리지 않았다. 당황했다. 긴급출동 서비스가 이런 때 좋았다. 다음에는 이사를 하는 작은딸에게 가려고 전주역으로 가다 차가 서버렸다. 별수 없이 길가로 밀어 놓고 택시를 타고 가야했다. 그 뒤로는 차가 조금만 이상하면 수리했고 오랫동안 세워두는 때도 있었다. 요즘에는 폐차할까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나 15년간 정이 든 차를 얼른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새 차일 때는 출퇴근에 이용했고 원거리 여행도 여러 차례 다녀왔었다. 퇴직한 뒤에는 자녀들을 데리고 성묘도 다녔으며, 조상의 묘 관리를 하러 다니던 차였다. 친척을 방문하여 채소도 얻어오고 가끔 나들이도 했었다. 명절 때나 행사가 있을 때 서울에서 오는 귀여운 손자들을 마중나가고 전송해 주었던 차를 내던지고 싶지 않았다. 정이 듬뿍 든 차를 선뜻 버리기가 어려웠다. 영화 '워낭소리'가 떠올랐다. 오래된 소를 내다 팔지도 못하고 죽을 때까지 식구처럼 같이 살던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살아있는 생명이니 이보다 더 애착이 갔을 게 아닌가. 물건이고 짐승이고 정이 들면 버리기 어려운 게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기에 병이 든 차지만 치료하면서 굴린다. 바퀴가 구르는 그날까지……. ( 2010. 4.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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