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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꼬바리/이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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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00회 작성일 10-04-18 21:33

본문

대꼬바리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石河 이 신 구 대꼬바리 속에는 할아버지의 애환과 사연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비밀이 숨어있다. ‘땅, 땅, 땅’ 아랫채 사랑방에서 놋쇠재떨이를 두드리는 소리가 안방까지 울렸다. 어머니와 누나는 금방 알아차리고 부엌으로 나가시면서, 무슨 소리인지 몰라도 누나에게, “얘야, 몇 분이신지 나가 보아라.” 하셨다. 틀림없이 사랑채에 손님이 오셨다는 신호요, 무얼 준비하라는 신호였으리라. 가난하던 시절이었지만 나는 괜히 신바람이 나서 좋아했었다. 사랑채에 손님이 오시면 흔히 접해보지 못한 맛있는 음식을 맛 볼 수 있었고, 그 할아버지 친구분이 가끔 알사탕도 선물로 주셨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께서는 별로 말씀이 없으시고 헛기침이나, 장죽의 대꼬바리로 재떨이를 두드려 신호를 해서 나를 부르거나 심부름을 시키셨다. 그때 우리 집은 할머니와 아버지까지도 돌아가시고 쉰 살이 넘은 어머니가 칠순의 홀시아버지 시중을 들고 있었다. 형님은 군대에 가셨고, 남자라고는 막둥이인 나뿐이었다. 손님만 오시면 할아버지는 나를 꼭 나오라고 하여 큰절을 시키셨다. 사랑채 대청마루엔 놋쇠재떨이와 화로가 있었고, 장죽 과 담배쌈지, 술상과 어른들의 대화가 있었다. 이런 날이면 언제나 어르신께 꼭 인사를 하고 나서야, 밖으로 나가 놀거나, 아니면 잔심부름을 하게 되었다. 손님이 오셨을 때 어른들끼리 일어나 서로 큰절을 나누는 걸 보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이미 호(號)도 부르시고 얼굴을 맞대고는 무슨 또……, 인사가 끝나고 앉으시면 서로 담배를 권하시면서, 미리 썰어 놓은 담배를 장죽에다 손으로 꾹꾹 눌러 채우고 작은 화로에 대꼬바리를 대고 담뱃불을 붙여서는, 뻐끔거리는 입모양도 우습지만 여러 차례 뻐끔뻐끔 하시다 보면, 제법 많은 양의 연기가 입 밖으로 부풀어 나오게 되는 모습을 보며 신기해 한 적도 있었다. 화로는 가정의 작은 태양이었다. 언제나 따뜻한 불씨를 안고 우리의 삶을 덥혀 주던 생활도구로서 대물림이 되었고, 또 가족 간의 화목한 정(情)을 일깨워 주었다. 구수한 담배향기 속에서 서로의 근황을 묻고 시국담을 나누시거나, 좌담을 하시는 것 같았다. 담뱃대는 담배를 담아 태우는 담배통(대꼬바리)과 입에 물고 빠는 물부리, 그리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길고 가는 설대로 되어 있었는데, 설대가 긴 것은 장죽(長竹), 설대가 없거나 짧은 것은 곰방대(短竹)라 불렀다. 어른들은 언제나 장죽을 쓰시고, 젊은이들은 곰방대를 쓰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한 신호 중에서, 담뱃대 두드리는 신호가 있었는데, 그 놋쇠재떨이를 두드리는 소리가, 어릴 적 내 귀에는 다 똑 같은 소리로 들렸었다. 그러나 어머니와 누나들은 용케도 그 신호들을 알아차리고 척척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보았다. 그 담뱃대로 놋쇠재떨이 두드리는 소리는 할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통하는 비밀신호였던 것이다. 당시에는 큰 소리로 부르기 전에는 사랑채에서 안방으로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더구나 늙은 며느리를 마구 불러댈 수도 없었으리라. 그 재떨이 두드리는 소리에는 손님이 몇 분 오셨으니 술상을 준비해라, 밥상을 준비해라, 숭늉을 내 오너라, 상을 치워라, 손님 가신다 등 사랑방의 지엄하신 뜻이 담겨져 있었다. 할아버지가 출타하시지 않는 이상 집안의 모든 식구는 사랑방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야 했었다. 일방통행식의 근엄한 사랑방문화가 아니었나 싶었다. 담배가 백해무익하다고 하지만 담배를 약초라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이익은 그가 저술한 성호사설'에서 "가래가 목에 걸려 떨어지지 않을 때, 소화가 되지 않아 눕기가 불편할 때, 한겨울에 찬 기운을 막는데 담배를 피우면 좋다." 고 밝혔다. 담배는 야누스가 준 선물이라고 하기도 한다, 당시엔 담배가 각성제 역할을 하였으며, 노인들의 치매(알츠하이머, 파킨스병) 완화와 예방, 그리고 장죽의 설대와 대꼬바리에서 채취한 담배찐(니코틴)과 담배는 지혈제로 사용하기도 했다. 나도 서너 살 때 누나와 엄마가 보리방아를 찧는 디딜방아 밑에서 낟알을 쪼아 먹고 있는 병아리를 잡겠다고 들어갔다가 머리를 세게 찧어 출혈이 낭자할 때 할아버지 대꼬바리에서 꺼낸 담배찐과 담배 덕택으로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는 금쪽 같이 아끼시던 장죽과 대꼬바리를 갈아 끼운 적도 있었다. 장죽이 동강난 사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종조부께서는 보릿고개 시절에 굶주림을 참을 수 없어 장손이자 형님인 할아버지의 도장을 가져다 선산 일부를 팔아 버린 사연이 늦게야 밝혀졌다. 그러자 불같이 화를 내시며 애꿎은 장죽을 재떨이에 쾅쾅 두드리며 한탄하시다가 장죽도 부러지고 대꼬바리도 금이갔었다. 그 때문에 ‘창감 깐치멀’ 최 첨지 집에 가서 고쳐오거나 새로 사오라는 심부름을 간 적도 있었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란 말 속에는 신분제의 굴레 속에서 생활하던 민중들의 향수와 그리움이 짙게 담겨 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장죽, 대꼬바리엔 조손교육과 출필고 반필면(出必告 反必面)의 예절교육과 구수했던 이야기보따리가 있었으며,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애환 그리고 대꼬바리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 숨어 있다. ( 2010. 03.21. ) 대꼬바리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石河 이 신 구 대꼬바리 속에는 할아버지의 애환과 사연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비밀이 숨어있다. ‘땅, 땅, 땅’ 아랫채 사랑방에서 놋쇠재떨이를 두드리는 소리가 안방까지 울렸다. 어머니와 누나는 금방 알아차리고 부엌으로 나가시면서, 무슨 소리인지 몰라도 누나에게, “얘야, 몇 분이신지 나가 보아라.” 하셨다. 틀림없이 사랑채에 손님이 오셨다는 신호요, 무얼 준비하라는 신호였으리라. 가난하던 시절이었지만 나는 괜히 신바람이 나서 좋아했었다. 사랑채에 손님이 오시면 흔히 접해보지 못한 맛있는 음식을 맛 볼 수 있었고, 그 할아버지 친구분이 가끔 알사탕도 선물로 주셨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께서는 별로 말씀이 없으시고 헛기침이나, 장죽의 대꼬바리로 재떨이를 두드려 신호를 해서 나를 부르거나 심부름을 시키셨다. 그때 우리 집은 할머니와 아버지까지도 돌아가시고 쉰 살이 넘은 어머니가 칠순의 홀시아버지 시중을 들고 있었다. 형님은 군대에 가셨고, 남자라고는 막둥이인 나뿐이었다. 손님만 오시면 할아버지는 나를 꼭 나오라고 하여 큰절을 시키셨다. 사랑채 대청마루엔 놋쇠재떨이와 화로가 있었고, 장죽 과 담배쌈지, 술상과 어른들의 대화가 있었다. 이런 날이면 언제나 어르신께 꼭 인사를 하고 나서야, 밖으로 나가 놀거나, 아니면 잔심부름을 하게 되었다. 손님이 오셨을 때 어른들끼리 일어나 서로 큰절을 나누는 걸 보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이미 호(號)도 부르시고 얼굴을 맞대고는 무슨 또……, 인사가 끝나고 앉으시면 서로 담배를 권하시면서, 미리 썰어 놓은 담배를 장죽에다 손으로 꾹꾹 눌러 채우고 작은 화로에 대꼬바리를 대고 담뱃불을 붙여서는, 뻐끔거리는 입모양도 우습지만 여러 차례 뻐끔뻐끔 하시다 보면, 제법 많은 양의 연기가 입 밖으로 부풀어 나오게 되는 모습을 보며 신기해 한 적도 있었다. 화로는 가정의 작은 태양이었다. 언제나 따뜻한 불씨를 안고 우리의 삶을 덥혀 주던 생활도구로서 대물림이 되었고, 또 가족 간의 화목한 정(情)을 일깨워 주었다. 구수한 담배향기 속에서 서로의 근황을 묻고 시국담을 나누시거나, 좌담을 하시는 것 같았다. 담뱃대는 담배를 담아 태우는 담배통(대꼬바리)과 입에 물고 빠는 물부리, 그리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길고 가는 설대로 되어 있었는데, 설대가 긴 것은 장죽(長竹), 설대가 없거나 짧은 것은 곰방대(短竹)라 불렀다. 어른들은 언제나 장죽을 쓰시고, 젊은이들은 곰방대를 쓰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한 신호 중에서, 담뱃대 두드리는 신호가 있었는데, 그 놋쇠재떨이를 두드리는 소리가, 어릴 적 내 귀에는 다 똑 같은 소리로 들렸었다. 그러나 어머니와 누나들은 용케도 그 신호들을 알아차리고 척척 일을 처리하는 것을 보았다. 그 담뱃대로 놋쇠재떨이 두드리는 소리는 할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통하는 비밀신호였던 것이다. 당시에는 큰 소리로 부르기 전에는 사랑채에서 안방으로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더구나 늙은 며느리를 마구 불러댈 수도 없었으리라. 그 재떨이 두드리는 소리에는 손님이 몇 분 오셨으니 술상을 준비해라, 밥상을 준비해라, 숭늉을 내 오너라, 상을 치워라, 손님 가신다 등 사랑방의 지엄하신 뜻이 담겨져 있었다. 할아버지가 출타하시지 않는 이상 집안의 모든 식구는 사랑방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야 했었다. 일방통행식의 근엄한 사랑방문화가 아니었나 싶었다. 담배가 백해무익하다고 하지만 담배를 약초라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이익은 그가 저술한 성호사설'에서 "가래가 목에 걸려 떨어지지 않을 때, 소화가 되지 않아 눕기가 불편할 때, 한겨울에 찬 기운을 막는데 담배를 피우면 좋다." 고 밝혔다. 담배는 야누스가 준 선물이라고 하기도 한다, 당시엔 담배가 각성제 역할을 하였으며, 노인들의 치매(알츠하이머, 파킨스병) 완화와 예방, 그리고 장죽의 설대와 대꼬바리에서 채취한 담배찐(니코틴)과 담배는 지혈제로 사용하기도 했다. 나도 서너 살 때 누나와 엄마가 보리방아를 찧는 디딜방아 밑에서 낟알을 쪼아 먹고 있는 병아리를 잡겠다고 들어갔다가 머리를 세게 찧어 출혈이 낭자할 때 할아버지 대꼬바리에서 꺼낸 담배찐과 담배 덕택으로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는 금쪽 같이 아끼시던 장죽과 대꼬바리를 갈아 끼운 적도 있었다. 장죽이 동강난 사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종조부께서는 보릿고개 시절에 굶주림을 참을 수 없어 장손이자 형님인 할아버지의 도장을 가져다 선산 일부를 팔아 버린 사연이 늦게야 밝혀졌다. 그러자 불같이 화를 내시며 애꿎은 장죽을 재떨이에 쾅쾅 두드리며 한탄하시다가 장죽도 부러지고 대꼬바리도 금이갔었다. 그 때문에 ‘창감 깐치멀’ 최 첨지 집에 가서 고쳐오거나 새로 사오라는 심부름을 간 적도 있었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란 말 속에는 신분제의 굴레 속에서 생활하던 민중들의 향수와 그리움이 짙게 담겨 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장죽, 대꼬바리엔 조손교육과 출필고 반필면(出必告 反必面)의 예절교육과 구수했던 이야기보따리가 있었으며,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애환 그리고 대꼬바리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 숨어 있다. ( 2010. 03.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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