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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나들이/정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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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83회 작성일 10-04-14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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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나들이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장영 통천각(通天閣)하면 일제 때 오사카시(大阪市) 소재 신세가이(新世界)란 번화가에 있었던 누각(전망대)이름이다. 수도서울을 자주 드나들다보면 눈에 잘 띠는 남산 서울타워나 63빌딩을 볼 때마다 초등학교시절이 떠오른다. 오랜 이산가족신세를 면해 우리 형제는 부모님과 같이 살던 곳이 바로 일본 오사카시다. 조선(당시는 반도라 함)을 떠나(1939) 공교롭게도 이곳 남구 소재 초등학교(日本橋尋常小學校)에 전학했고, 6년 동안 인근 3개구(南區, 浪速區, 天王寺區)의 경계선에서 살게 되었다. 이곳에 정착한 어느 날. 아버지께서 퇴근하신 뒤 난생 처음으로 밤나들이를 주선하셨다. 우리 가족이 찾은 곳이 바로 이 통천각이었다. 통천각은 평지에 높이 세워진 철제관망용 누각이었다. 글자 그대로 '하늘로 통하는 집'이 바로 통천각이었다. 시내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당시로서는 유일의 전망대였다. 밤거리지만 많은 시민들이 찾은 거리여서 인파속을 걸어야 했고, 번잡했지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고 아버지께서 표를 사셨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주 편하게 높이 오르다보니 한여름의 더위는 가셨고, 야경구경까지 할 수 있어 상쾌한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곳 신세가이(新世界)하면 시내에서 가장 이름난 신사이바시(心齊橋), 도톤보리(道頓堀) 다음가는 명소의 거리였다. 이 거리에는 이름난 극장, 영화관, 아동전용영화관이 많이 모여 있는 극장가(劇場街)여서 각종 오락시설로 밤낮 인파가 끊이지 않는 거리였다. 더구나 가까이 공원(天王寺公園)을 끼고 있었다. 이 공원에는 동‧식물원, 수족관, 현대미술관, 야구장, 어린이놀이시설, 전통 무술수련원 등 헤아릴 수 없는 문화운동시설과 오락시설이 많았다. 갑자기 이사 간 산골촌놈이 대도회지에 살게 되다보니 어리둥절했고 등하교길 밖에 몰랐었다. 모처럼의 나들이를 계기로 길을 알게 되었다. 호기심도 많은 때라 차츰 생활영역도 넓어져갔다. 가장 매력적인 것이 아동전용 영화관이었다. 주로 만화와 시사영화 상영이었지만 하루 종일 연속상연을 하니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리고 점차 나이가 드니 다른 일반영화관과 연극극장도 드나들게 되어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을 거의 이곳에서 보내기도 했다. 통천각은 사시사철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 만원사례였다. 이렇게 살기 좋은 도시생활이 점차 각박해져갔다. 중일전쟁이 대동아전쟁(세계2차 대전)으로 발전한 것이었다. 초반은 승승장구 승기를 보이던 전황이 미영(美英)의 반격으로 전세가 역전되는 것이다. 통제경제는 더욱 강화되어 식량은 물론 모든 물자가 배급제가 되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도시민들이 배급식량을 아끼려고 너도나도 식당을 찾게 되었다. 대중식당은 비교적 싸게 식사를 제공하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줄을 몇 백ⅿ씩 서서 기다려야 했다. 이 거리의 고급식당들은 줄을 설 필요가 없이 밥을 사먹을 수 있었다. 나도 몇 번 줄을 서기 싫어서 곱절 값을 더 주고 식사를 한 적도 있었다. 세월이 흐르자 일본은 더욱 패전의 기색이 깃들기 시작했다. 휘황찬란하게 밤하늘을 빛내던 통천각의 자취가 사라졌다. 생활필수품 배급제가 되니 흥청거리던 거리는 차츰 찬바람이 일기 시작했고 인파도 줄어들었다. 전쟁에 꼭 필요한 철이 부족하니 철로 만든 이 누각이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총 한 자루라도 더 만들어 전쟁을 이겨보자는 속셈이었으나 그들은 뜻을 이루기는커녕 패망의 길이 더욱 깊어만 갔다. 부자 살림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값이 나가는 물건 하나하나가 빠져나간다는데 일제패망의 길도 이와 비슷했다. 전쟁물자가 부족하니 집안에서 긁어모아 메워 보자는 소박한 생각이었으니 참으로 딱한 일이었다 할까? 더욱 놀라운 것은 최후의 1인까지 일본본토에서 싸우겠다고 중요 군사시설과 군수공장을 산중으로 옮기려고 지하터널을 파고 있었다. 동양침략에 이어 세계침략이란 대의에 어긋나는 과욕에서 전쟁을 일으켜놓고 이겨보려는 억지 심보가 아니었던가? 반세기가 지난 오늘에도 아직 군국주의의 망령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염려스러울 따름이다. 나들이란 참으로 평화롭고 살기 좋은 세상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패전의 일본이 전후 갖은 국민적 노력과 한국전쟁에 호황을 누려 경제부흥으로 정상을 회복하였다. 동서냉전의 분쟁이 일본에 행운을 안겨주어 세계경제대국이 되어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 따라서 사라진 통전각이 더욱 웅장하게 새로 세워져 평화스런 각국의 관광객들을 호불러 모으고 있단다. 한 때 비운이었던 한국이 한스럽지만 어찌하랴! 과거를 각성하고 우리 모두 지난 날의 전철을 밟지 말 일이다. 서울의 상징인 남산의 서울타워야, 너는 대한민국의 영원한 평화를 지키고 길이길이 잘 가꾸어다오. (2009.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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