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나무 등걸에 꽃이 피어나듯/송택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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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나무 등걸에 꽃이 피어나듯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송택엽
어제는 하루 종일 봄비가 내리더니 오늘 아침 모악산 등산길 과수원의 매화나무는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리며 화사한 옷으로 갈아입어 등산객들이 탄성을 지르게 했다. 설중매라 했던가? 매서운 눈을 헤치고 가장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모습을 이르는 말이련만 올해는 유난히도 봄 날씨가 변덕스러워 이제야 매화 꽂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중에는 과수원 한쪽에 외따로 서있는 늙은 매화나무의 등걸에 피어난 몇 송이 꽃들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예로부터 매화는 젊은 가지에 풍성하게 피어난 꽃보다 해묵은 등걸에 어렵게 몇 송이씩 피어나는 모습을 높이 평가했었다. 공들여 해묵은 매화나무 분재를 가꾸기도 하고, 한국화의 소재에도 고목에 피어난 매화꽃이 단골로 등장하곤 하였다. 거기에는 특유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빼놓을 수 없는 이유는 생명을 잉태할 수 없을 것 같은 해묵은 가지에서 초봄의 매서운 한파를 뚫고 피어나는 신비한 생명력 때문이리라.
이런 매화나무 고목이 유독 내 눈을 끈 것은 요즘의 내 처지와 비교가 되어서일까? 정년퇴직으로 평생 종사하던 직장에서 물러나자 모든 게 허탈해지고 주위에서도 찬밥 신세를 면할 수 없게 되었다.
‘인생은 60부터’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 말은 인생은 60까지라는 말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그러니 60이후의 인생은 여생이라고들 하기도 한다.
본생을 마감하고 잉여인생을 산다는 의미로 쓰인 이 말이 퇴직 이후 날이 가고 해가 지날수록 점차 실감나게 다가왔다. 나에게도 벌써 노년이 왔다는 말인가? 내가 노인이 되었다는 말에 좀처럼 긍정하지 못하면서 법정 노년을 헤아려 보니 만 65세부터가 노인이란다.
“그래, 아직 나는 노인이 아니지.”
그리고 노년의 기간도 결코 짧은 것은 아니지 않는가. 뭔가 남은 노년의 여생을 위해 준비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무엇보다 먼저 몸이 건강하지 못하면 세상 온갖 것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먼저 운동을 시작했다. 일주일 중 3일 이상은 등산이나 다른 운동을 하자. 그리고 취미생활을 위하여 현직에 있을 때부터 시작한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사진촬영을 본격적으로 하였다.
그렇게 5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그리고 이제 만 65세, 법정 노인이 되면서부터 뭔가 허전함과 허무함이 다시 밀려왔다. 젊은 날의 그 화려했던 꿈과 낭만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미래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소모하며 지내게 되었다. 이때 우연히 맥아더가 말한 “인간은 세월과 더불어 늙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이상(理想)을 잃을 때 늙는 것이다. 이 세상일에 흥미를 잃지 않으면 마음에 주름살이 생기지 않는다."는 말이 내 심금을 울렸다.
불가에서 말하기를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이지만 가만히 두면 점점 그 쇠를 먹어버리고 만다.’고 하지 않았던가! 죽지 않는 자면 누구나 맞이하게 될 노년, 맥아더의 말을 음미하며 준비를 소홀이 하지 않는다면 황혼기도 좀 더 풍요롭게 가꿀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새롭게 젊은 시절에 못다 한 이상(理想)의 세계에 다시 접근해보기로 했다. 특히 꿈을 되찾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나를 붙잡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문화생활에 침잠(沈潛)할 필요가 느껴졌다. 뭔가 인간의 영혼을 불사를 수 있는 영역 같은 것, 철학이 그렇고 문학의 세계가 그럴 것 같았다.
그러던 차 전주안골노인복지관에서 수필창작을 가르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의 유명한 교수님이 직접 문학과 인생, 그리고 제대로 된 글쓰기 등을 가르친다는 이야기였다. '그래, 수필을 한 번 꼭 써보고 싶었지!' 어렵게 등록을 하고 첫 수업에 나가니 너무도 생각 이상의 분위기에 압도되고 말았다. 학창시절부터 문학에 대한 열정이 있으셨던 분들, 그리고 벌써 등단을 하고 수필집을 내신 분들의 숙연한 학습태도와 치열한 작가정신을 보여주는 열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러나 한 회 두 회 학습에 참여하는 동안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풍요로움을 더불어 나누며 더욱 큰 풍요를 갈구하는 어르신들의 만남을 보면서 정말 여기 오기를 잘했구나 하고 조금씩 안도가 되었다. 회가 거듭될수록 수업의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어느덧 한 배를 탄 마음의 식구가 될 수 있었다. 점차 지식인의 사유가 그대로 들어나는 글의 향연에 흠뻑 빠져 볼 수도 있고 ‘인간의 영혼 중 가장 은밀한 곳을 훔쳐볼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이제 차차 내 마음과 행동에도 큰 변화가 오기 시작하였다. 퇴직 후 삭막해진 정신세계가 평온과 여유를 찾는 것 같았다. 비단 문우들과의 관계나 학습단계에서만이 아니라 평소 삶의 자세도 변화되어 밝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무심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퇴직 후 다 버렸던 젊은 날의 스크랩북과 문학잡기장(?)들을 이 잡듯 뒤져보고 젊은 시절 애독했던 수필집도 몇 권 다시 사들이면서 밤새워 글을 읽고 또 써보기도 한다.
정말 새삼스럽게 시간이 모자란다. 퇴직 후 몇 년간 남는 시간을 어쩔 줄 몰라 주체하지 못하던 모습은 간데없고 아침이면 잠이 모자라 눈알이 충혈 되어 집사람의 걱정을 듣게 되었다.
행복한 노후란 무엇일까? 명수필가들은 좋은 수필 한 편을 쓰기 위하여 먼저 마음의 수양을 쌓고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이제 막 수필의 길로 들어서면서 조금 씩 조금 씩 영혼의 변화를 느낀다. 그동안 현실에 얽매어 메말랐던 자아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화를 향해 몸과 마음을 열면 노후가 훨씬 편안하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이란 나그네와 같아서 두 발을 잠시도 멈출 수 없네. 날마다 앞을 향해 나아가건만 앞길은 또 얼마나 될까?” 백낙천의 이 시 구절이 실감을 더하는 밤이다. 이제 다가오는 시간 속에 새로운 영혼을 담아보려 한다. 마치 묵은 매화등걸에 새 꽃이 피어나듯…….
(2010.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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