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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도 갯마을, 그곳에 가고 싶다/김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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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80회 작성일 10-04-13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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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도 갯마을, 그곳에 가고 싶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차작 목요 야간반 김세명 갯마을의 노을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내 나이 30대 초반에 나는 부안군 위도면 치도 갯마을에서 반년을 살았다. 1970년대 중반 섬에도 무장간첩이 출현한 적이 있었다. 전투경찰 분대장이 되어 대원 8명을 데리고 갯마을에서 지냈다. 마을회관에서 숙식을 하면서 파장금의 어선 출입항소 검문이 임무였다. 시국이 어떻든 상관없이 섬사람들은 묵묵히 멸치를 생산하며 살아가는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위도는 고슴도치 섬이라는 별칭으로 섬 전체가 고슴도치처럼 생겼다. 왕경호라는 정기 운항선박이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섬 생활은 처음이라 대원들과 함께 지급된 부식이며 전투장비 개인 소지품 등과 통신장비 등을 챙겨 경찰견과 함께 파장금에서 하선하여 회관에 도착하였다. 마을은 한 30여 호 되는 조그만 어촌 갯마을이었다. 바닷가의 비릿한 해풍과 마을 앞까지 밀려오는 파도 소리가 마치 별천지에 온 것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나이가 듬직한 초로의 이장으로부터 마을에 대한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그렇게 보였다. 어느 폭풍이 몰아치던 날, 마을 젊은이 8명은 고등어잡이 배를 타고 나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였다고 한다. 갯마을 어른의 제안으로 그 마을은 여덟 가호가 합동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그들의 자녀 5명은 같은 해 같은 달에 모두 태어 낫다고 하니 그들의 생의 애환을 대변해 준다. 갯마을에는 흔히 있는 애환이라고 한다. 그 설명을 듣고 보니 갯마을에는 유달리 혼자된 과수댁이 많았다. 그들은 밀려오는 파도에 미역을 채취하고 갯바위에서 나는 김이나 톳을 채취하며 살아간다. 남자들이 멸치를 운반해오면 바닷가에서 불을 때 삶아 말리는 작업을 공동 작업하는 것도 그들의 몫이다. 지내면서 보니 갯마을 사람들의 삶은 풍요롭지 못하였고 낭만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마을봉사활동도 하면서 그들과 친하게 되었다. 대원들은 젊어 슬기롭고 마을의 생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그들과 친숙하게 된 것은 독일산 훈련된 경찰견 덕이었다. 크기도 우람하고 생긴 모습도 군기가 들어 보여 선망의 대상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나에게 경계심을 풀고 친절히 대하여 주었다. 대원들은 근무 중 어선을 검문하다 보니 잡아온 고기도 나누어 주었다. 그곳 파장금에는 파시라하여 방파제 안에 시장이 형성되기도 했다. 나도 멸치 배를 타보았다. 물때를 맞추어 2-3명이 고추장과 소주병을 싣고 석양에 나서면 잠시 기다리는 시간에 낚시를 하였다. 미끼는 생 멸치다. 낚시를 넣기가 무섭게 금방 손에 느낌이 온다. 바다낚시는 처음 해 보았다. 낚시라고 해야 줄 끝에 낚시와 추(납)를 달고 미끼를 끼워 뱃전에서 담그면 된다. 뱃전에 올라온 고기는 포를 떠 고추장안주에 찍어 먹고 소주 한 사발 마시는 게 뱃사람들의 즐거움이다. 석양과 어울려 해풍의 싱그러움에 싱싱한 바다에서 펄떡이는 고기회라니, 그 맛은 잊을 수가 없다. 그들은 ‘이 맛은 대통령도 못 본 다’ 면서 삶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소주도 막사발에 찬물 마시듯 마셨다. 물때가 되면 멸치 그물을 당겨 만선의 깃발을 올리고 갯마을로 돌아오면 임무가 끝난다. 비교적 단조로운 작업이다. 인근에서 멸치배 사고가 없고 멀리 나가 고등어나 갈치 등 어장이 형성된 곳에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면 사고가 날 수 있다고 한다. 갯마을을 떠나올 때는 정들었던 사람들에게 내가 키우던 경찰견도 선물하였다. 그 섬에서는 가장 늠름한 수캐다. 그놈 종자도 많이 퍼졌으리라. 위도에 가면 개들도 유심히 보고 싶다. 갯마을의 정취는 내 젊은 날의 아름다운 기억이다. 언제 틈나면 그 갯마을에 가 본다는 생각은 머릿속에만 맴돌고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실천을 못하고 있다 . 멀지도 않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이다. 위도는 세월이 흐른 만큼 사건도 많았다. 여객선이 침몰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다. 부안 방폐장 반대 데모로 역사의 한 획을 치르기도 했다. 치도 갯마을, 그 곳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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