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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뱃돈 주려고 서울 간다/서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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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88회 작성일 10-03-0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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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뱃돈 주려고 서울로 간다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서상옥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세상은 요지경 속이다! 설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며 새로 사온 신발과 색동옷을 머리맡에 놓고 밤새워 가슴 설레도록 즐거워하던 날이 그립다. 할아버지 할머님께 세배를 하고 덕담을 들으며 세뱃돈을 받던 날이 엊그제만 같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세월의 강을 타고 내가 늙어가는 어른이 되었다. 이제는 세배를 받아야 하고 세뱃돈을 되돌려 주어야하는 나이가 되었다. 문화가 발달하고 문명이 밝아지니 세상이 변화되기 마련이다. 옛날 어른들이 지켜오던 미풍양속도 사정을 두지 않고 요지경처럼 변하는 것 같다. 내가 할머니 무릎에서 재롱을 피울 때였다. 설 명절이 오면 아들 손자며느리와 가까운 일가친척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와 세배를 드리는 것이 하나의 예의였다. 할아버지는 세뱃돈을 나누어주시면서 자손들에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라.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면서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명심보감같은 말씀을 덕담으로 들려 주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서당에서 후학들에게 한학을 일깨워 주시는 선비셨다. 그러기에 정월내내 손님 받기에 바빴다. 어머님께서는 그 많은 손님들을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설빔 준비에 항상 분주했다. 특별히 할아버지의 손님 대접에 많은 신경을 써야 했다. 인절미와 시루떡을 비롯해서 바삭바삭한 한과와 달콤한 식혜를 넉넉하게 준비해야 된다. 약주도 비밀리에 빚어놓고 귀한 손님이 오시면 대접했다. 한 번은 부엌에 숨겨둔 술독을 찾아 달콤한 미주를 훔쳐 먹고 혼난 적이 있었다. 그 뒤부터는 술만 보면 겁이 나서 아직까지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뒷동산에 올라 연날리기를 하던 날, 제기를 차고 팽이를 치며 돈치기를 하던 놀이도 동화의 한 토막이 되었다. 다홍치마에 남색끝동 노랑저고리를 입고 널을 뛰던 처녀들의 삼단 같은 머릿결도 한 폭의 그림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시골장터 씨름판에서 황소를 탔다던 집안 아저씨의 호탕스런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이제는 아쉬운 추억으로 묻혀지고 있다.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는 넋두리가 있다. 지나고 보면 항상 옛날이 그립고 그때가 좋았던 것만 같다. 티 없이 맑은 동심의 세계가 그립다. 물질문명이 발달해서 황금만능주의에 쫓기는 현대인의 갈등과 고민은 역시 옛날이 그리울 수밖에 없다. 우리의 삶이 세사에 시달려온 엄청난 시련이 아니던가. 푸른 꿈을 키워오던 학창 시절, 눈보라 속에 전방을 지키던 사병생활, 생존경쟁에 지쳐오던 직장생활, 자녀들을 길러내고 가르치기에 정신적 여유도 없이 살아온 지난날들이었다. 어쩌면 시지포즈의 신화 같은 자신을 바라보면서 신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한 운명을 깨닫게 된다. 어쩌면 운명의 무거운 바위를 메고 높은 산의 정상을 오르면서 비지땀을 흘려야 하는 숙명이 아니던가? 때로는 모진 한파와 폭풍우에 시달려야 했고 거친 파도에 휩싸여 인생의 진실과 허실의 변두리에서 방황할 때도 많았다. 이래저래 세월 따라 흐르는 물같이 살아온 인생이다. 그저 속아 사는 인생이라 해두고 싶다. 살같이 빠른 세월 속에 가파르게 살아온 지난날을 회상해 본다. 때로는 파란 많은 시련의 강을 건너야 했고, 잔잔한 호수에 잠겨 꿈꾸는 요람도 있었다. 슬픔이 다하면 기쁨의 날이 오기도 했었고, 미워하고 사랑하면서 몸부림치는 때도 있었다. 잠든 내 마음에 고운 무늬를 새겨보기도 했었다. 그렇게 아롱진 희망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었다고 느껴진다. 경인(庚寅)년 새해를 맞는 설날, 나에게는 새로운 설맞이가 열려지는 것 같다. 그토록 완고한 명절개념이 퇴색한 것이라고나 할까? 온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조상에 대한 차례를 지내고 오순도순 둘러 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기던 정겨운 모습이 그립다. 경제적으로 풍요를 누린다. 하지만 그만큼 행복지수는 오르지 않는다. 녹슨 이야기가 아직도 가슴에 머물러 있다. 내 나이 칠순에 다섯 해를 더하면서 세배를 받으려고 자녀를 찾아 역귀성하는 운명이 되었다. 교통이 워낙 불편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대문명의 부산물이다. 결국 자녀들의 편의에 따라 거꾸로 살아가자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할 수 없이 괴나리봇짐에 세뱃돈을 챙겨 가지고 상경 길에 오른다. 그 곳에 가면 아들 손자며느리 딸 사위가 다 모일 수 있기 때문이다. 노인네들의 봉건적인 아집보다 이게 현명한 처사가 아닌가 싶어서다. 조상을 추모하는 차례도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 아쉬워한들 무엇 하랴! 이것이 현대판 실용주의의 모순인 것을. 나는 어렸을 때 물구나무서기를 썩 잘 했었다. 거꾸로 세상을 보면서 몇 발을 거닐면서 흥겨워하던 기억이 난다. 하늘의 바다가 신비롭게 보였다. 지금도 가끔 세상을 뒤집어 요지경으로 만들고 싶다. 차라리 잘되었다 싶다. 자녀들이 아주 반긴다. 외국에 있는 둘째딸 가족을 제외하고는 자녀들이 다 모여 세배를 주고받으며 정을 나누니 참으로 즐거웠다. 그 옛날 조부모님처럼 ‘건강하고 성실하게 살아 행복한 삶을 누려야 한다.’고 덕담을 건네면서 준비한 세뱃돈을 나누어 주는 기쁨도 컸다. 손자들의 환한 얼굴이 예뻤다. 설날에는 서울 나들이가 유행할 것 같다. 교통난에서 해방될 뿐만 아니라, 바쁜 세상에 자녀들을 도와주는 셈이니 이게 오히려 부모의 도리가 아닐까? 나도 명절을 맞을 때마다 거꾸로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누려야겠다. 탈바꿈하는 인생의 묘미를 터득해야 할 것 같다. 아무리 아쉬워도 옛것을 버려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푸쉬킨의 '삶'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찾아오리니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언제나 슬픈 것은 일순간에 지나가 버리니/ 그리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는 것이려니. (201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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