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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댕이/한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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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712회 작성일 10-02-27 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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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댕이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한일신 오늘같이 비가 촉촉이 내리는 날은 부침개를 부쳐 먹던 어릴 때 생각이 난다. 부엌 까만 무쇠솥에 밥을 해서 누룽지를 먹기도 하고 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전을 부치기도 했다. 전을 부칠 때 어머니는 불을 때고 나는 부뚜막에 쪼그리고 앉아 연기 때문에 눈물 콧물을 흘리며 전을 부쳤다. 그럴 때면 부엌과 연결된 방문을 삐죽이 열고 두 동생들이 전을 달라고 손을 내밀며 맛있게 먹던 모습이 어제인 양 떠오른다. 나는 어릴 때 부모님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다 했다. ‘아니요,’ 라는 말은 해본 기억이 없으니까. 내가 중학교 다닐 때의 일이다. 부모님은 농사일 때문에 항상 늦게 들어오시니까 집안일은 온통 내 몫이었다. 학교수업이 끝나기가 바쁘게 집에 오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물 긷는 일이었다. 그때 한울타리 안에 여덟 집이 살았는데 수도가 있는 집은 두 집뿐, 나머지는 모두 공동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다. 수도가 있는 두 집은 거의 대문이 닫혀 있었지만 가끔은 S네 집 문이 열려 있었다. 그 집은 부모님과 7남매가 살았다. 거기다 강아지까지 있었으니 무려 열 식구의 대가족이었다. 어쩌다 동네 우물물이 바닥나면 S네 집에 가서 물을 길어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집 부엌에 있는 까만 솥뚜껑에 시선이 멈췄다. 유독 검은 게 반질반질 윤이 나니 무척 좋아 보였다. 집에 돌아온 나는 우리 집의 꺼무죽죽한 솥뚜껑을 보며 열심히 닦기도 하고 들기름을 칠하고 문질러 보았지만 별로 좋아지지 않았다. 할 수 없이 S에게 비법을 물어보았더니 처음부터 질을 잘 들여야 된다며 뜨거울 때마다 들기름 칠을 해 보라고 했다. 아무리 밥을 할 때마다 기름칠을 하며 공을 들여 보았지만 허사였다. 내가 우리 솥뚜껑을 소원대로 윤기나게 한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였다. 마음씨 좋은 철이엄마가 솥뚜껑이 뜨거워지면 솥 밑에 있는 검댕이를 묻혀 바르고 기름칠을 해보라고 일러주었다. 조금은 의아해하면서도 그렇게 해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바라던대로 그 솥뚜껑이 새까매져 윤이 반지르르 흐르질 않는가. 검댕이는 이뿐 아니라 자연이 만든 무채색 '먹"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소나무를 태운 송연(松煙)에서 취하는 것과, 채종유(菜種油) 참기름[胡麻油]·비자기름[榧油]·오동기름[桐油] 등을 태운 연기에서 취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 실내에 아궁이나 가마[窯] 등을 마련해 놓고 재료를 태우면, 그을음이 그 굴뚝에 붙게 된다. 그것이 위쪽으로 모이는 것일수록 상제(上劑)라 하여 품질이 좋다질 않는가. 당묵(唐墨)의 머리 윗면에 정연(頂煙) 또는 초정연(超頂煙)이라고 표시해 놓은 것은 연매가 상품 양질이라는 뜻이며, 특히 공연(貢煙)이라 표시한 것은 최상품이라는 뜻이란다. 쓸모없을 것 같던 검댕이가 옹기를 만드는데도 일조를 한단다. 옹기그릇에 쌀이나 보리, 씨앗 등을 넣어 두면 다음 해까지 썩지 않고 그대로 있다고 하니 말이다. 이는 옹기를 가마 안에 넣고 구울 때 나무가 타면서 생기는 검댕이(연기)가 옹기의 안과 밖을 휘감으면서 방부성 물질이 입혀지기 때문이란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 장독대의 옹기그릇에 담아 먹던 김치며 간장, 된장, 고추장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은 아파트 문화라 김치냉장고가 큰소리를 치지만, 어찌 옹기에 담가먹던 그 맛과 비교가 되랴. 옹기 속에서 햇빛과 바람을 만나 숙성된 전통음식이 한없이 그리울 뿐이다. 때로는 옹기 항아리를 둘 수 있는 단독주택을 꿈꾸어 보기도 하지만 그런 날이 언제나 올지 아득하기만 하다. 요즈음 신세대들은 어찌 이 검댕이 맛을 알랴. 우리야 당시 먹을 게 귀하니까 하루 세끼 꼬박꼬박 밥만 먹고 살았지만, 아이들은 아니다. 초등학교에 다니기 전부터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무거운 가방을 메고 유치원이나 학원으로 다니기 바쁘다. 커가면서도 걸핏하면 우유나 빵, 컵라면, 통조림 등 인스턴트식품으로 끼니를 때우는 게 습관이 되어서인지 병치레가 잦은 현실이 마냥 안타깝다. 지금은 가전제품이 판을 쳐 검댕이를 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까만빛 솥뚜껑과 전통음식의 보루인 옹기그릇을 만드는데 검댕이 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으랴. 또한 먹의 주재(主材)로 서예나 동양화 속에서 고유의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으니 이 얼마나 쓸모 있고 소중한 자원인가. 우린 누구나 만인에게 사랑받고 싶어 한다. 설사 미움과 원망으로 점철된 삶을 산다 할지라도 나 자신을 버려서는 안된다. 새까만 검댕이도 이렇게 긴요하게 쓰이는데 우린 분명히 이 땅에 귀하고 필요한 존재로 어딘가에 쓰일 것이다. 다만 나 자신이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201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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