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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호/김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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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75회 작성일 10-02-0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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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호(雅號)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김세명 나의 아호는 두계(斗溪)다. 학자나 예술가의 호를 문예적으로 이르는 말이 아호라고 볼 때 나는 아호를 쓸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내가 처음 수필집을 상재할 때 아호를 쓴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내 아호를 밝히는 방법도 아호에 얽힌 수필 한 편을 그 책에 올렸었다. 그 수필을 읽어 본 친지가 모임에서 내 아호를 불러 주었을 때 너무나 반가웠다. 요즘은 내 아호를 불러주면 고맙기까지 하다. 처음 개강하는 안골노인복지관 동아리반에서 자기 소개서에 아호를 당당하게 썼다. 교수는 나를 소개하면서 내 아호를 칠판에 쓰면서 소개했다. 항상 부르던 내 이름도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들릴 때도 있다. 특히 젊은 사람이 이름을 부르면 거북할 때도 있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도 이런 느낌이 오는 것은 나이 탓이 아닐까? 나의 아명은 두건 (頭 巾)이었다. 내 아명을 기억하는 어른들은 벌써 세상을 뜨셨다. 어른들이 내 이름을 그렇게 부른 연유가 있다. 나는 두메산골에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내 손위 형 둘이 어머니를 따라가 빨래터에서 놀다가 익사했다고 한다. 그 뒤에 내가 태어났으니 상주들이 쓰는 두건을 쓰고 태어났다는 것이 아명의 연유다. 아무튼 나는 전혀 모르는 사실이지만 어린 나도 슬픈 일이라 아명이 좋았었다. 아버지는 뜻이 별로 좋지 않았는지 호적에 올릴 때는 ‘밝은 세상 밝게 살라’는 뜻으로 현재의 이름 '세명'이라고 지어 올리셨다. 현재의 내 이름은 전혀 모르는 가운데 아명을 듣고 자랐다. 내 이름이 다르다는 사실을 안 것은 학교에 입학해서였다.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렀는데도 나는 몰랐었다. 나도 당황했지만 친구들은 깔깔대고 웃었다. 나도 모르는 이름을 불러서였고 사람을 세는 숫자 이름이라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웃었다. 학교가 끝나고 그 사연을 아버지에게 말씀드리자 그 때 내력을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호적에 올린 이름을 잊어버리셨던 것이다. 아무튼 이름 때문에 당한 고초다. 나이가 들면 아명이든 아호를 하나 가지려고 생각했었다. 두계( 斗溪 )는 실개천이나 산골짝의 옹달샘 같은 뜻이다. 사람도 대부분 수분이고 두메산골이란 이미지와 아명에 대한 연민이 포함되어 나 혼자 만족했었다. 나의 수필집을 읽어 보셨는지 고하 최승범(등단 당시 수필지도) 교수님께서 '두계'는 한국사를 쓰신 이병도 선생의 아호라고 하셨으나 한 번 활자화 된 이상 고칠 수도 없는 문제라 체념하고 지났다. 또한 동명이인도 많은 터에 아호가 같다고 해서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해 버렸다. 두계(斗溪)선생이라고 하면 진단학회(震檀學會)와 을유문화사(乙酉文化社)가 펴낸 ‘한국사(韓國史)’가 머리에 떠오른다. 한국의 역사, 언어, 문학 등을 연구하기 위한 학술단체로서 진단학회(震檀學會)가 조직된 것은 일제(日帝)하인 1934년 5월이었다. 진단학회를 창립할 때의 발기인은 두계(斗溪) 선생을 비롯하여 당시 학계의 기라성 같은 석학 25명이 있지만, '진단학보'의 편집 겸 발행인이 이병도(李丙燾)로 되어있는 것을 보면 두계 선생이 거의 혼자 힘으로 이 학회를 이끌어 온 것이나 다름없다. 나도 성장하면서 이병도의 한국사를 배웠었다. 유감인 것은 그가 친일파 였다는 사실이다. 모든 일이 모르면 약이요 알면 병이다. 분명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지만 기분은 별로 좋지 않다. 두계 선생이 독립운동가가 쓴 아호였다면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본명이외에 여러종류의 이름을 사용하는 데 익숙해 왔다. 어릴 때는 집안에서 친근감 있게 부르는 아명(兒名), 20세 성년이 되면 지어주던 관명(冠名), 족보에서만 사용하든 보명(譜名), 공로가 있는 신하에게 나라에서 내려주던 시호(諡號), 그리고 평상시에 가장 많이 애용하던 호칭이 아호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이 아호를 애용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존경과 친근감을 나누었다. 이는 하나의 아름다운 전통이라고 생각된다. 요즘에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이들이 자신의 ID를 많이 쓰고 그 밖에도 필명이나 닠네임이 있지만 중후한 맛과 친구간의 멋과 우정, 사회적인 정취나 살아온 세월에 걸맞는 분위기 등을 고려해 보면 아호 사용은 그 나름대로의 멋이 아닐까 ? 사람의 일이란 일희일비하는 계 감정의 기복이려니 싶다. 괘념치 않고 내 아호를 혹 불러주는 사람이 있는 날에는 기분이 좋다. 나보다 연장자가 있다면 가급적 아호를 불러 주려고 노력한다. 아호는 기억하기 쉽고 소박하고 단순하기 때문에 연상하기가 쉽다. 살다보면 현직에 있을 때는 명함을 가지고 다녔다. 혹여 인사라도 할 때는 명함을 주고 받으면서 일을 처리하려니 필요했었다. 그러나 정년을 한 지금은 명함이 필요치 않다. 별로 유명인사도 아닐뿐더러 수필지에 오르내려 익히 알고 있으니 말이다. 명함이 꼭 필요할 때는 아호가 하나 첨가 된다. 혹시 문학을 하는 단체에서도 아호를 불러주는 점잖은 선비같은 분들이 더러 있긴 하다. 그런 날에는 단둘이 대포잔을 기울리며 담론할 기회를 갖는다. 그런 사이라면 터놓고 세상사는 이야기나 우정에 깃든 말을 주고 받아도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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