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덕 제자 복/윤석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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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德 제자 福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윤석조
나는 제자 복이 많은 사람이다. 제자들에게 그렇게 사나운 선생노릇을 했어도 오늘날까지 제자들이 대접을 잘 해주고 있다. 염치없는 사람임에는 틀림없지만 제자들을 만날 때마다 즐겁고 그들이 고맙다.
사거리에서 신호등의 빨간 불이 켜져 정차하고 있을 때,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선생님 저 000요’ 하는 제자들도 있다.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나도 큰소리로 ‘응 알아, 잘 지냈는가?’, 어느새 파란불이 되면 손을 흔들며 ‘어이, 파란 불이 켜졌네, 어서 가봐.’ 하기도 한다. 달려가는 차를 바라보며 고마움을 느낄 때가 가끔 있다.
고등학교시절에는 수학 선생님과 과학 선생님처럼 인성이 좋은 선생님들이 계셨다. 선생님들은 그 어렵던 시절에도 수업시간만은 매질을 해서라도 수업분위기를 휘어잡고 수업을 하셨다. 존경했던 선생님들이셨기에 은연중 닮기를 원했는지, 나도 수업시간만은 싸남쟁이가 되었다.
학생들이 공부를 잘하는 방법은 첫째도 열째도 선생님을 존경하고, 선생님의 설명을 열심히 들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내 설명을 듣지 않고 딴 짓을 하거나 몇 학생들 때문에 수업분위기가 흐려지지 않도록 매를 들어야만 했다. 무릎을 꿀려놓고 꼭 몇 대를 맞을 것인가를 학생과 타협하였다. 그 숫자는 어김없이 지켰고 무릎 위의 허벅지를 호되게 때려 주었다. 학생들이 나를 이해하고 나서부터는 수업시간 만큼은 내 마음대로, 수업을 이끌어 갈 수 있었다.
익산 00여중으로 전근되어서도 수업방법은 같을 수밖에 없었다. 매질은 30센티미터 자로 하였고, 매 맞을 자리는 손바닥이었다. 그들도 곧 나를 이해해 주었다. 스승의 날에 수업하러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TV에서나 보던 장면이 내 앞에서 벌어졌다. 화려한 색종이 조각들이 내 머리위로 쏟아지고 학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발을 구른다. 옆 교실에서까지 뛰어 나와 복도에서 구경하면서 덩달아 야단들이었다. 그날 내 수업이 있는 반은 그렇게 나를 환영해 주었다. 학생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야단을 쳤지만, 선생님으로 보람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 반 담임선생님께 미안했었다.
3년 전 대전에 살고 있던 제자 부부가 전주까지 찾아와, 우리 부부에게 커플반지를 끼워 주었었다. 이 일이 있은 뒤 45년 전 새침떼기 소녀였던 제자도 전남 화순 복숭아 상자를 매년 보내주어 내 젊은 날을 찾을 수 있게 해주었다. 광주시청 여성 정책국장이었던 이00, 공고만을 졸업하고 한전 이사로 있다는 최00도 모두 같은 학교 출신들이었다.
전라고 졸업 30주년 행사(10.17) 때 중늙은이가 된 제자들을 리베라 호텔에서 만났었다. 내 졸저 수필집<커플반지>를 내 반 제자들에게만 나누어 주었다. 2주일이 지나 유00 사장의 수상집 <꿈을 키운 시간들>이 나에게 배달되었다. 읽어본 뒤 읽은 소감을 E-mail로 보내주었더니 다음과 같은 E-mail 답장이 왔다.
불현듯, 머릿속에 느낌표가 홀연히 나타났습니다! 예감이 적중하는 순간, 선생님의 넓고 깊은 사랑이 온몸으로 느껴졌습니다. 마치 부모님과도 같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말입니다.
3학년으로 막 올라와서의 일입니다. 3월에 과학과목만 시험을 본 일이 있었습니다. 본래 과학을 잘 한 편이었고, 조금은 신경도 써서 공부를 하여 전체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냈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방황하느라 공부를 하지 않아서 성적이 별로였었는데 2학년 2학기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했었습니다. 과학은 화학만이 아킬레스였지, 물리, 지학, 생물은 아주 잘한 편이었기에 전체 1등이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졌었습니다. 그 때 00를 가르쳐주시던 0선생님이 수업 중 그럴 리가 없는 놈이 1등을 했다는 식의 발언을 해서 몹시 억울함을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의 느낌이었지만 아마도 교무실에서 간단한 가십거리가 되지 않았나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제게 '잘했다,' '네가 그럴 줄 알았다, 너는 충분한 자격이 있다,' 이렇게 믿어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2등이라는 것도 모르고 학교엘 다니다가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잘 못 만났습니다. 미술선생님이셨는데 연구 활동 때문에 2학년 말까지 학교에서 수업도 빠지라며 일만 시켰습니다. 실장이었고, 공부도 잘하고, 미술도 잘하기에 선생님께서 시키는 일만 잘하면 좋은 줄 알았습니다. 자취하며 다니던 중학생이기에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이 없는 애에게 2년이라는 세월을 그냥 덧없이 흐르게 하였으니……. 전주고등학교를 떨어졌지요. 그래서 세상이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았던 시기이기도 하였습니다.
'나만이라도 정직하게 살자. 나만이라도 남에게 해를 입히지 말고 살자.' 뭐 이런 것들로 머리에 가득 찼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저를 믿어 주셨습니다. 의심받을 일을 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런 일을 저주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 0선생님을 보면 그 인상이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그 연유로 저는 항상 내자에게 학생들을 의심하거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는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선생님을 선생님으로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항상 마음뿐이라 한없이 죄송할 따름입니다. 선생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30년 전의 사실을 이제야 알았고 아직도 나를 인정해주는 제자들이 있어, 세상 살맛이 나는 것 같다. 첫 수필집 <노을빛 사랑>의 봉정식과 고희연(古稀宴)도 제다들로부터 받았다. 모두 내가 글을 썼기에 얻어진 일이고 제자들 덕이어서 따뜻한 가슴으로 살고 있다. 젊은이는 희망에 살고 늙은이는 추억에 산다는 말이 맞는 말인 것 같다.
(2009.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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