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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각자의 숨결/윤석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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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579회 작성일 10-01-02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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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각자(先覺者)의 숨결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윤석조 . 여행을 하면서 천진암(天眞菴) 방향의 나들목을 지날 때마다 한국천주교의 발상지라는 그곳에 가보고 싶었었다. 마침 숲정이 성당에서 3ㆍ4구역의 성지순례를 천진암으로 간다기에 꼭 참가하고자 신청하였다. 아내와 함께 현관문을 나서자 동녘에서 솟아오르는 해님이 잘 보고 오라는 듯 방글방글 웃어주었다. 교우님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출발하여 시내를 벗어나자 곧 하느님께 주모경을 바쳤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속담을 지켜주듯 교우님 네댓 분들이 맛있는 음식들을 나누어 주었다. 입을 즐겁게 하며 차창 밖으로 눈을 돌리자 가을 풍경은 내 눈길을 뺏어가고 있었다. 길가의 코스모스는 아침이슬로 더욱 예뻐졌고, 가을빛이 내려앉은 논에는 누런 벼들이 금빛이야기로 소근 거리고 있었다. 가을이 가로수에 머물며 그 잎사귀들을 염색해 주었는지 저마다의 가을빛으로 단장하여 보기 좋았다. 중부고속도로의 천진암 IC에서 경기도 광주로 접어들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산천의 고운 색들이, 가을박람회를 열고 있는 것 같았다. 천진암 계곡의 좁은 아스팔트길로 구불구불 올라가다 성지(聖地)사무소 직원을 만나 그의 안내로 한민족대성당 건립현장까지 차로 올라갔다. 쌓인 낙엽들이 내지르는 가을 소리는 200여 년 전 선각자들의 거친 숨소리처럼 들렸다. 성현들이 걸었던 강학로를 따라 걸으며, 그분들의 모습과 생활을 상상해 보았다. 앵자봉 산줄기에 자리 잡은 묘역에 가을 해가 천진암 터와 창립성현 5위 묘역을 비춰 주었다. 이벽 성조의 묘를 중심으로 정약종, 이승훈, 권일신, 권철신 등의 성현 묘 앞에 서서 기도를 드렸다. 이름 높은 무반가문의 후손으로 태어난(1754년) 이벽 성조(聖祖)는 아버지가 무반으로 출세하기를 바랐지만 거부하고, 청나라에서 유입된 서학서(西學書)를 탐독하였다. 1779년 음력 섣달 심심산골 절간에서 권철신 성현이 정약전, 김원성, 권상학, 이승훈, 정약종, 이총억, 정약용, 권일신 등과 함께 강학회를 개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발목이 빠지는 일백 여리 눈길을 밤새도록 걸어가 그 학자들과 경서를 담론하였다. 여러 날 계속된 강학회에서 이벽 성조의 논증으로 천주교의 도리를 깨닫고 믿으며, 아는 바를 즉시 실천하였다고 했다. 순수 학문연구모임이 신앙수련회로 발전되었고, 나아가 조선 천주교회 창립이라는 놀라운 결실을 맺게 되었다. 천진암 성지는 창립 선조들께서 선교사 없이 자발적으로 한국천주교회를 세운,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한국천주교 발상지였다. 성현들의 친필과 유물들을 수집하여 보존하며 그분들의 정신과 업적을 전승하고자 세운, 미완성인 천진암 박물관을 찾았다. 3층 현대식 건물이었지만 우선 1층에만 전시되었다는 글들을 보고 나왔다. 돌아가야 할 시간에 쫓기어 걷기 어려운 사람들은 남고, 20여명은 하상로 길을 따라 조선교구 설립자 묘역을 부지런히 갔다. 길가 숲속에 가르멜여자수도원 건물은 조용한 침묵 속에서 수도장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신유(1801)박해로 정양종이 사형을 당할 때 6세였던 아들 정하상의 묘는, 당상역관(堂上譯官)이었고 천주교를 믿었던 그 친구 유진길의 묘와 나란히 누워 있었다. 정하상은 1816년 동지사 역관의 종으로 북경 천주교회를 찾아가 신부파견을 요청했으나 무산되었다. 전후로 9차례나 북경을 몰래 방문해 거듭 요청했고, 끝내는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에게 청원해 신부 파견을 성사시켰다. 앵베르 주교는 정하상을 조선 최초의 신부로 만들기 위해 신학공부를 시켰으나 뜻을 이루기 전에 기해(1839)박해가 발생했다. 이때 파견된 세 신부는 물론 정하상과 그의 어머니, 여동생도 함께 순교했다. 천진암 천주교 성지는 진리를 탐구하고 복음을 전파하던 곳이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근로자들의 정기적인 휴식과 경신예절, 사회계급타파와 남녀평등 실천이 교회 창립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훗날 민족 개화와 조국근대화 및 조선 사회개혁 운동의 싹이 트기 시작한 온 겨레 정신문화의 성지가 되었다. 역사의 현장을 보고 나서 암울했던 200여 년 전의 그 때를 다소 알 것 같았다. 고종명(考終命)을 원하며 푸른 하늘을 우러러 보는데, 서산으로 기운 해가 반짝 미소를 보내주고 있었다. (2009. 10. 24.) * 당상역관: 종삼품이상의 벼슬로 통역관, *동지사: 동짓달에 보내는 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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