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이 사과 한 개/한일신
페이지 정보

본문
못난이 사과 한 개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한일신
어느 날 아는 분이 나에게 사과 한 개를 주셨다. 언뜻 보면 사과도 아닌 것 같은데 사과는 사과였다. 보아하니 생김새가 참으로 못생겼다. 크기는 토마토만하고 옆으로 짱구처럼 튕겨져 나온 몸매가 마치 짝퉁 같았다. 생김새가 하도 이상해서 이리저리 돌려보았더니 피부는 상처 하나 없이 깔끔했다. 붉게 물든 얼굴 빛깔은 반질반질 윤이 나고 향긋한 사과향이 은은하게 풍겼다.
우리나라에는 사과 나는데 미인 난다는 속담이 있고, 하루 사과 한 알이면 의사가 필요 없다라는 서양속담도 있다. 그만큼 사과는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해서 건강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과일이라는 뜻이리라. 특히 뇌세포 활성화를 높여주며 사과 속 비타민C와 B가 피부의 탄력과 재생에 도움을 주어 예뻐진다고 한다. 이처럼 건강에도 이롭고 미용까지 챙길 수 있다기에 나도 아침마다 싱싱한 사과를 먹고 있다.
집에 돌아와 주머니에 든 사과를 꺼내보았다. 이상하던 모습이 보면 볼수록 점점 더 친근감이 들고 귀엽고 매력이 느껴졌다. 잘 생긴 사과는 나무에서 일찍 떠나 돈 많은 사람들의 먹을거리로 이미 제공됐지만, 과수원에 끝까지 남아서 나무를 지켰을 이 못난 사과는 한여름 뜨거운 태양과 비바람을 견디고 또 외로움을 견디면서 열매를 맺고 숙성했을 것이다. 그러다 세상 어딘가에 못 생긴 사과의 단맛과 향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작고 못 났지만 색깔 곱고 단단하며 깜찍하게 생긴 것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을 통해 내게 전해졌으리라.
오늘로 2주째 책상 한 쪽에 자리 잡고 있는 이 못난 사과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동병상련(同病相憐) 같은 정이 느껴지기 때문일까. 나 역시 남들처럼 키가 훤칠하게 크거나 미모가 빼어난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지능이 높아서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다. 노래, 춤, 그림, 글쓰기 등 할 것 없이 모두가 함량 미달이다.
나는 새벽이면 가끔 송천동 농산물시장을 간다. 어느 날 그곳에서 사과를 크고 좋은 걸로 한 상자 사온 일이 있었다. 어찌나 퍼걱거리고 맛이 없든지 먹느라 고역을 치른 일이 있다, 그 뒤부터는 중간 크기로 사온다. 야채도 벌레가 먹어 구멍이 숭숭 뚫린 걸 그냥 지나치지 않고 사오기도 한다. 아무래도 성장촉진제를 사용하지 않은 무농약상품 같아서다. 과일이나 야채 등 재배과정에서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친환경 유기농으로 재배하면 모양이나 색깔이 곱지 않다는 말을 들어서일까.
이제 못난이 사과를 더는 두고 볼 수가 없다. 더 이상 두었다가는 맛도 못 보고 버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서다. 이 작은 걸 깎아낼 수도 없고 그냥 껍질째 먹으려고 깨끗이 씻었다. 눈을 찔끔 감고 한 입 베어 물었더니, 와~~ 입안에서 아삭아삭 부서지며 느껴지는 이 맛, 이렇게 옹골차게 달고 맛있는 사과는 처음이다. 절대 겉보기로만 판단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세상엔 돈 많고 호강스럽게 자라 겉모습은 반지르르해서 으스대지만, 부모의 은공조차 모르고 헛세상을 사는 사람도 많으니 말이다. 그런가 하면 비록 가난하여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 없어도 우리 사회를 훈훈하게 덥혀주는 미담이 얼마나 많은가.
성철스님 글 중에 최잔고목(嶊殘枯木)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가장 못생긴 나무가 끝까지 산을 지키는 큰 고목이 된다는 뜻이다. 이 말씀은 나에게 큰 힘과 용기를 준다. 앞으로는 성장촉진제를 써서 크게 자란 과일이 아닌, 못 났지만 자연 속에서 순수하게 자란 맛과 향이 있는 사과 같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못난 사과가 맛과 향으로 입맛을 사로잡듯 나 비록 보잘 것 없는 삶을 살아왔다 해도 내게는 아직 희망과 꿈과 열정이 있으니까.
(2009.12.19)
- 이전글삼천포 나들이/윤재석 09.12.25
- 다음글2009년 우리 집 10대 뉴스/이윤상 09.12.2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