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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간/정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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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08회 작성일 09-12-04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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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간 전주안골노인복관 수필창작반 정장영 ‘거간(居間)’이라고 하면 사전에는 ‘흥정을 붙이는 일’로, ‘거간꾼’이라고 하면 ‘흥정을 붙이는 사람’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실 거간을 처음 겪은 때는 이 말을 듣지도 못했고 뜻도 모르는 채였다. 근 칠십년 전의 일이다. 일본 본토가 미국의 공습을 당해 전쟁이재민 신세로 귀국, 광복직후 부산에 살게 된 때다. 부모님께서 돈을 벌겠다고 일찍이 일본까지 가셨지만 이재민으로 귀국하였으니 차마 고향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임시 정착한 처지였다. 10대 소년으로 취학도 못하고 우리말과 한글조차 해득하지 못한 내가 방황해야 했던 암울한 시기였다고나 할까? 학교는 중퇴상태였다. 밑천도 없고 장사란 것도 처음이며 세상 물정도 몰랐다. 영어단어 몇 마디는 알 수 있어 미군 뒤를 쫓아다니며 양담배와 껌, 과자 등을 사들여 되파는 장사를 시도해 보았으나 벌이가 신통치 않았다. 생활이 막막해서 밥벌이는 해야겠는데 해볼 만한 일이 없었다. 봉이 김선달처럼 부산역에서 물장수를 해보았다. 지금은 작은 페트병도 있지만 당시는 직접 물주전자를 들고 열차 칸에는 복잡해 들어가지 못하니 승강장을 다니며 직접 컵으로 팔아야만 했지만 소득은 좀 있었다. 귀환동포들로 열차는 초만원이었다. 옴짝달싹 못할 형편이니 목마를 때 물 한 모금이 얼마나 소중한 지 실감했다. 밑천 없는 장사로는 해봄직 했으나 역시 철도경찰이 귀찮은 존재였다. 다음에는 보부상(褓負商)을 했다. 일제가 모자란 전쟁물자로 농촌의 놋쇠그릇을 모두공출해간 바람에 식기류가 부족한 상태였다. 처음으로 알루미늄 양재기가 생산되었는데 2~3백 개를 짊어져도 가벼웠다. 부산에서 양재기를, 전라도에서 쌀을 가져가면 약간의 이득을 볼 수 있었다. 어느 날 부산에서 알루미늄 양재기 3백 개를 짊어지고 처음으로 전라북도 순창까지 5일장을 찾았다. 전을 벌였으나 쉽게 팔리지 않았는데 어떤 분이 아주 친절하게 팔아 주겠다고 해서 못이긴 척 보고 있었더니 얼마 뒤 모두 한꺼번에 팔려버렸다. 나는 매우친절하게 호의를 베풀어 주는구나 생각했었다. 물건 값을 다 챙기고 떠나려는데 돈(당시 몰랐던 거간 값)을 내라는 것이었다. 물건을 팔고 사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돈을 내라하니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텃세를 부리는 깡패인 줄 알고 순간적으로 힘을 다해 줄행랑을 쳤다. 시장을 탈출하여 시가지를 벗어나서야 한숨을 돌렸다. 그 뒤 시장에서 당했던 이야기를 어른들께 말씀드렸더니 빙그레 웃으며 거간료(알선 중개료)를 치러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으며 거간료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시장에서 북적이는 많은 사람들은 물건을 팔 사람은 물론, 살 사람, 거간꾼들이 모여든 곳이다. 물건을 사고 팔 때는 반드시 거간꾼이 달려든다는 사실을 몰랐으니 나로서는 아주 황당한 일이었다. 거간꾼은 많은 양의 물건, 값나간 물건을 거래할 때 시장이나 가축시장, 수산시장 등에서 활동하는 생산자도 아니요 소비자도 아닌 글자 그대로 거간(살居, 사이間)이다. 다시 말해 매매알선으로 거간, 경매사, 중개인, 판매사 역할을 하고 수수료를 챙겨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제 세상은 상업뿐만 아니라 거간이란 이름으로 모든 서비스 산업에 뛰어들어 호객하고, 부동산은 물론, 금융 산업인 은행, 증권사, 종합 금융사들의 채권, 유가증권, 주식, 선물, 파생상품 등에서 수수료전쟁을 치르고 있으니 세상이 모두 거간꾼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지나고 보니 10대 소년시절 객지에서 가난으로 잠시나마 어려운 장사를 해보았고, 다음에는 고향을 찾아가 농사일을 경험했다. 그런 일들이 내 80년 인생살이의 밑거름이 되었다 할까?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속담이 참으로 옳은 말인 것 같다. (2009.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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