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새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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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 소리
안골은빛수필문학회 김학철
시계도 자명종도 없던 시절, 새벽에 나를 깨워준 것은 참새들이었다. 먼동이 틀 무렵, 우리 집 대문 옆에 서 있는 살구나무에는 수십 마리의 참새들이 몰려와 새벽부터 “짹짹짹, 짹짹짹”하며 소리를 질러 곤히 잠든 나를 깨우곤 했다. 나에게는 그 소리가 기분 좋은 자명종 소리였다.
아침마다 살구나무로 찾아오는 참새의 수가 늘어나고 알람소리가 커지면서 가을은 깊어갔다. 우리 집 앞에 펼쳐진 넓은 들녘에서는 벼가 누렇게 익어갔다. 그때쯤부터 참새들이 떼지어 날아들어 벼이삭에 붙은 낱알을 쪼아먹기 시작했다.
논들마다 허수아비가 세워지고, 어떤 논에는 번쩍거리는 긴 줄에 작은 돌멩이를 넣은 빈 깡통들을 매달아 놓았다. 깡통들은 바람에 흔들리면서“뗑그렁, 뗑그렁”하는 소리를 냈다. 그런가 하면 새 그물을 치기도 했다. 처음에는 참새들도 놀라서 가까이 다가오지 않다가도 진짜 사람이 아니거나 위험성이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또다시 무리지어 몰려오곤 했다.
마을사람들은 별수 없이 자기 논에 나가 직접 보초를 섰다. 참새들이 몰려오면 끝이 뾰족한 대막대기에 흙을 찍어 “훠이, 훠이”하며 던졌다. 그러다가 호루라기를 불기도 하고, 구멍가게에서 사온 장난감 권총에 화약을 한 개씩 넣고 방아쇠를 당겨 “빵” 하는 총소리로 새들을 쫓았다. 이렇듯 쫓고 쫓기는 참새와의 전쟁은 가을이 다 가도록 계속되었다.
나도 학교에서 돌아오거나 쉬는 날이면 으레 논으로 나가 참새를 보았다. 더울 때는 햇볕가리개를 세운 다음 덕석을 깔아놓고 심심하면 어머니가 싸 주신 찐 고구마를 먹으면서 참새 쫓는 일에 열중했다. 수십 마리의 참새들이 무더기로 몰려오는 것을 보면 그 무렵에 보았던 펄 벅의 소설 <대지>를 영화화한 한 장면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서쪽 하늘에 아주 작은 검은 점 하나로 보이던 것이 점차 커져, 마침내 가까이 다가 왔을 때는 수만, 수십만 마리의 메뚜기들로 돌변하여 그간 농민들이 땀 흘려 애써 가꾼 농작물을 초토화 시켰다. 내가 접한 참새들의 피해는 이 영화에 나오는 메뚜기 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많은 피해를 입히는 것은 틀림없었다.
자명종 역할을 하던 때의 참새들은 친구와 같았으나, 논에서 만난 참새는 원수와 다름없는 존재로 돌변했다. 그 뒤부터는 새벽마다 우리 집 살구나무에 떼지어 앉아있는 참새들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이들이의“짹짹짹, 짹짹짹” 하는 소리가 마치‘오늘은 경비가 심한 강 서방네 논과 성질이 고약한 최 영감네 논에는 가지 말고 경비가 허술하고 사람 좋은 김 서방네 논으로 가서 한 탕 하자.’는 작전회의같은 소리로 들리게 되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이놈들, 꼴도 보기 싫다. 당장 떠나라. 산 넘어 멀리멀리 없어져라.’고 돌멩이를 살구나무에 던지며 참새들을 쫓아내게 되었다.
겨울이 와도 참새들은 여전히 새벽마다 우리 집 살구나무로 찾아왔다. 마당에 떨어진 벼 낱알을 주워 먹으며 놀기도 했다. 싸락눈이 내리던 어느 날, 나는 원수 같은 참새들에게 복수하는 절묘한 생각을 해냈다.
마당에 싸리나무로 엮어 만든 바작을 막대기로 받쳐놓고 그 아래에 두어 주먹 정도의 쌀과 잡곡을 뿌려놓았다. 그리고 막대 중간을 묶은 새끼줄을 작은 방의 뚫어진 문풍지 구멍으로 늘어뜨려 한 손으로 잡은 채 참새들의 동태를 살폈다. 그러다가 모이를 먹으려고 바작 안으로 들어온 참새가 보이면 새끼줄을 잡아당겼다.
옛날부터 참새가 소의 등에 올라 앉아 ‘소야, 네 고기 열 점이라도 내 고기 한 점과 안 바꾼다.’라고 했다는 말처럼 역시 구워 먹는 참새고기 맛은 일품이었다. 구운 쇠고기의 꽃등심이 맛있다지만 그보다 몇 배나 더 졸깃졸깃하고 고소했다. 그야말로 일석이조의 성과였다. 그러나 그 뒤부터는 눈치를 챘는지 참새들이 얼씬도 하지 않았다. 아마 ‘김가네 집 마당에 가면 위험하다.’는 소문이 온 마을에 돌았나보다.
그 무렵 시내에는‘참새집’이라는 포장마차가 생겨 호황을 누렸고, 또 공기총으로 참새만 잡으러 다니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허리띠에는 피 묻은 참새 2,30마리를 보란 듯이 기다랗게 꿰차고 다니는 사람도 많았다.
이제는 참새들에 대한 추억도 어언 30여 년 전의 이야기가 되었다. 내가 살던 마을의 농경지는 모두 없어지고 대신 포장도로와 아파트 단지, 상가들로 꽉 들어차게 된 것이다. 자연히 참새들도 사라졌다. 참새뿐만 아니라 논의 그 많던 메뚜기나 미꾸라지도 없어진지 오래다. 지금은 농촌에 가 봐도 허수아비는 물론 참새도 구경하기 힘들다. 무제한으로 뿌려대는 농약 때문이라고 한다.
시계의 자명종 소리에 잠을 깬 오늘 아침, 문득 참새가 보고 싶고 그리워진다. '농사가 천하지대본’이었던 시절, 참새는 사람 가까이에서 사람과 함께 살던 대표적인 새가 아니었던가? 이제 그들이 사라져간 오염된 세상에서 사람만이 오롯이 남아있는 것 같다. 왠지 자연의 한 귀퉁이가 폭삭 무너져 내린 것같은 허전한 느낌이 든다.
'참새들아, 다들 어디로 갔느냐? 이젠 더 이상 너희들을 미워하지도 해치지도 않을 테니 돌아와 주면 안 되겠니?'
(2018.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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