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이 있는 집/정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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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이 있는 집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장영
나는 초가삼간에 두 칸 행랑이 달린 시골 작은 농가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살았다. 지금은 집이 헐려버린 빈터지만 고향을 찾을 때마다 그 터를 들러보며 회상에 잠긴다. 농가에는 거의 집집마다 넓거나 좁은 마당이 있어 편리하고 좋다. 그래서 나는 어디 가서 살든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기를 원했다.
농촌의 마당은 계절 따라 봄에는 마당 한쪽 화단에 철 따라 아름다운 꽃이 피고, 겨우내 햇빛을 보지 못한 옷과 이부자리의 일광 소독장이었다. 여름엔 보리타작과 퇴비장이요, 밤이면 모깃불을 피우고 온가족의 피서장이 되었다. 가을은 온갖 곡물의 수확과 건조장이며 임시 야적장이다. 겨울에는 이듬해 봄 정미할 벼 두지와 노적을 마련해 부를 과시했고, 눈보라가 치면 어린이들의 놀이터였다. 때에 따라 혼인예식장도 되고 슬픈 장례식장 역할도 했다. 또한 명절이면 마을농악놀이 공연장도 되어 그야말로 다용도로 쓰이던 게 농촌의 마당이었다.
세상이 변하면서 이 마당도 변했다. 기계로 직접 농작물을 수확하다 보니 보리타작마당과 볏단의 노적마당이 사라졌다. 양곡수매를 하노라니 보리두지와 벼 두지를 볼 수 없게 되었다. 더욱 마을의 큰 잔치인 전통혼례식은 시내 예식장으로, 온 동네의 협동으로 치러진 장례식은 장례식장으로 옮겨져 그 슬픔에 겨운 밤샘상여놀이도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그간 마당이 있는 집에 살 수 없었다. 유년기를 거처 성년에 이르기까지 객지로 셋집을 전전하면서 살아 왔다. 농가에서 살아본 지 고작 1,2년에 불과했다. 독립해서 살면서도 늘 소담스러운 아담한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으나 직업 따라 전전하며 살다보니 뜻을 이룰 수 없었다.
40여 년 전 자녀들의 교육문제 때문에 정착하고자 전주에 집을 마련했다. 한 달 동안 집 을 돌아보았으나 돈에 저울질해야 하니 썩 마음에 드는 집은 없었다. 그래도 좁지만 마당을 갖춘 집을 겨우 마련할 수 있었다.
마당 화단에 녹음이 있고 흙을 밟을 수 있었으며, 눈을 돌리면 푸른 하늘과 별이 총총히 박힌 밤하늘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차 소리도 안 들리고 소음 없는 조용한 공간에 대추, 감, 모과나무도 심고 꽃과 정원수도 몇 그루 가꾸어 도심의 시골집 환경을 꾸몄다. 새들도 찾아오고 벌 나비들의 낙원이기도 했다. 따라서 가을이면 대추, 모과, 감을 따는 즐거운 마당집이 되었다. 집밖을 나가면 삭막한 시멘트와 아스팔트길뿐이지만 도심에서 흙을 밟을 수 있는 곳은 오직 이 화단뿐! 또 낙엽이 지면 흙에 되돌려 줄 수 있으니 늘 싱싱한 꽃과 나무들이 자랐고 그들이 외치는 소리는 “고맙다. 고마워요!”였다.
이제 세월은 흘러 마당에서 춤추던 벌 나비를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 고목이 된 대추나무는 사라진지 오래고 모과나무 역시 늙어 맵시 좋은 열매를 구경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감나무 역시 농약을 안했더니 병충해에 시달려 열매가 다 떨어지고 몇 개 남지 않아 몰골이 사납다. 변해도 너무 변했다. 이럴 수가 있을까! 환경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현대의 젊은 세대는 대개 단독주택을 싫어한다. 벌집 같은 아파트를 좋아한다. 편리한 점이 많고 재테크의 지름길로 생각하니 그럴 수밖에. 지어도지어도 모자라는 게 아파트다. 한때 선호하던 집들이 소박을 맞았다. 겨울 한 철 불편하다지만 단독주택은 값이 싸고 애들이 마음껏 뛰놀고, 숨바꼭질을 하며 소란을 피워도 좋다. 아침저녁으로 비를 들고 마당을 쓸면 가벼운 운동이 되고 부지런해져서 좋지만 단독주택은 일반인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집이 되어 버렸다. 팔려고 해도 팔리지 않은 주택! 아기 우는 소리가 없는 주택! 애물단지가 된 게 마당에 화단이 있는 주택들이지만 찾는 이들이 없다. 흙을 밟지 않고 흙을 구경하지 않겠다는 듯 재력이 있는 분들은 자꾸 아파트로 떠난다. 단독주택이 팔리지 않으면 비워두고 아파트로 이사를 가며 재개발사업을 하기만을 기다린다. 분명 문제가 있는 정부의 주택정책이 아닐 수 없다. 특단의 조치가 없이는 도시마다 살벌하고 획일적이며 특색 없는 아파트군상만이 조성될 것 같다. 계획된 새 시가지 조성지역도 아파트와 원룸 숲을 만들고 있다는 언론보도다.
바야흐로 우주시대가 다가 왔는데 밤하늘의 별들을 못보고, 땅기운(지기:地氣)마저도 받지 못하고 자라는 신세대가 가엾을 따름이다. 유사 이래 살아오던 단독주택을 버리고 고층 아파트란 벌집에 사니 신체적 변화도 생길 법하다. 갑자기 부작용은 없겠지만 서서히 나타날까 염려스럽다. 세계 각처의 빈번한 지진 발생소식을 들을 때마다 내진설계는 충분하고 완벽한지, 혹시 염려스러운 아파트는 없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사람은 싫건 좋건 기를 받아가며 살아야한다. 천기(天氣), 지기(地氣), 공기(空氣)를 받으며 살아야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잇을 텐데 말이다.
(2009.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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