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오라버니/양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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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오라버니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 반 양희선
나에게는 오빠가 세 분이 계신다. 큰오빠는 M대학교 수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정년퇴임을 한 뒤 몇 년 전 애석하게도 77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 둘째오빠는 전주농림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에 6·25사변 때 학도병으로 갔다가 죽을 고생을 하고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짓고 사신다. 시대를 잘못 타고나서 고생을 많이 하셨다. 셋째오빠는 전주사범학교를 졸업한 뒤에 전북 부안군 격포초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았다. 그때는 마땅히 하숙할만한 곳이 없어서 학교 숙직실에서 자취를 하였다. 시리도록 스며드는 바닷바람을 안고 저녁밥을 지으려고 성냥불을 켜면 꺼지고 또 켜면 꺼지고를 반복하여 성냥 한 곽을 모두 태우고 말았다고 한다. 마음이 상하고 착잡하여 밥짓기를 포기했다. 허기지고 쓰린 가슴으로 잠자리에 들었지만 부모님과 고향생 각으로 잠이 오지 않았다.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결론을 얻었다.
"이 교직을 벗어 나야 한다.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쳐서 무엇을 얻을 것인가. 사나이로 태어나 대망의 꿈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결론은 진로를 바꿔야 한다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대학에 진학하자니 집안 형편상 엄두를 내지 못하고 생각 끝에 육군사관학교를 선택하여 시험준비를 시작하였다. 성냥 한 갑 때문에 오빠의 운명이 갈림길에 놓이게 된 것이다.
어느 날 오빠는 담임했던 학생들을 나에게 부탁하고 육군사관학교 입학시험을 보려고 상경하였다. 그 당시는 전북 완주군 봉동읍 봉서초등학교에서 근무를 할 때였다. 봉서초등학교는 익산 왕궁 음성나환자촌을 지나 가야만 했다. 가녀린 처녀가 혼자서 그곳을 거쳐 가려니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 교장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니 웃으시면서 내일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성격이 청갈한 오빠는 다른 선생님께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나를 대리 선생으로 정했던 것이다.
오라버니는 당당히 합격하여 태릉 육군사관학교 연병장에서 엄숙한 입교식을 마치고 육사생도로 엄한 훈련을 받으며 학업에 열중하였다. 전국에서 모인 우수한 학생들이기에 치열한 경쟁이어서 공부할 때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기초 군사훈련을 받을 때는 지옥훈련이라 불릴 정도로 힘들어 눈물도 많이 흘렸다고 한다. 성적이 나쁘거나 나태하면 어김없이 퇴교를 당하는 학칙 때문에 학업을 이수하지 못하고 중도퇴교를 당한 생도들도 많았다고 한다. 지휘관으로 발돋움하는 지인용(智仁勇)을 겸비한 사관생도로서 지식과 품위와 인격을 쌓아 가고 있었다.
오빠는 성격상 군인 스타일이 아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대학진학을 못해 가난을 원망하며 자책했었다. 전액 무료인 사관학교를 선택하여 원대한 꿈을 이룰 길을 찾은 것이다. 어려운 생활형편 때문에 나 역시 J여고를 중퇴하고 시름에 찬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오빠는 나를 위로하는 편지를 1주일이 멀다고 보내 주었다. 학업을 중단하여 괴롭고 서글픈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서 하소연하는 답장을 써 보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의 글쓰기가 그 때부터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주말이면 멋지고 어여쁜 아가씨들이 면회를 와서 청춘남녀 쌍쌍이 외출하고 즐기는데, 오빠는 내성적인 성격 탓으로 연애도 못하고 애꿎은 편지만 쓰고 있다고 하였다. 그뒤 E대를 졸업한 세련되고 고운 배우자를 만나 아들 딸을 낳아 훌륭히 키웠는데 아들은 치과의사로, 딸은 의사 아내로 둘 다 미국에서 산다. 오빠 내외분은 이름난 잉꼬부부로 축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
사람의 운명이란 묘한 것이다. 어느 충격적인 일로 운명이 갈림길에 놓이기도 한다. 사람의 운명은 타고나는 것일까? 타고난 팔자에 인위적인 노력을 가한다면 운명이 바뀔 수도 있는 것일까? 우리가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지혜를 지녔더라면 사람들은 고생하지 않고 편히 살 수 있으리라. 그러면 사람들은 욕심과 오만에 빠지고 나태하여 죄를 낳지 않을까 싶다. 자기 이상을 높이는 개척정신이 있어야 꿈을 이루고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원칙과 정의를 고집하는 성품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한 오라버니가 장하다. 박봉의 봉급을 모아 가난한 부모에게 논을 사 드려 도움을 준 효자였다. 형제간에는 우애가 돈독하고 정이 많은 오빠다. 학구파로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고 마음이 선하여 그 누구에게도 악담을 못하는 신사 중의 신사요 학자 타입이다. 별을 따지 못하고 육군 대령으로 전역한
것이 마냥 아쉽다. 지금도 뛰어난 영어실력으로 수출품을 관리하는 업무를 주관하면서 중소기업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2008년 6월 육군소위로 임관한 지 만 50년을 기념하고자 육사 14기 졸업생들이 '일사회 문집'을 발간하였다. 5명의 참여가족 중에 둘째오빠의 수기 어느 '학도병의 체험'
(6. 25 참전기)과 볼품없는 나의 글 '기차통학' 과 '초청' 등 두 편을 실었다. 앞으로 9년 뒤 60주년기념 문집에는 더 멋진 글을 게재하고 싶은 게 나의 바람이다.
(2009.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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