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타연/나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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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타 연(頭 陀 淵)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나인구
새벽 4시, 초가을 새벽공기를 뚫고 전주에서 강원도 양구로 가는 버스 속에서는 새벽잠을 설친 일행들이 깊은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한반도의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는 강원도 양구 군청에 도착한 것은 아침 9시 무렵이었다. 인솔자의 말에 따르면 한반도의 정동쪽 끝은 정동진고, 정남쪽 끝은 정남진(전남 장흥)이며, 북쪽 끝은 중강진이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정 중앙은 양구라는 것이었다. 잘 납득이 가지 않았으나 한반도 전체를(바다포함) 4각형으로 그려놓고 정 중앙을 표시한 양구 군청 앞의 관광지도 앞에 이르러서야 이해가가 되었다. 나는 시방 한반도 정 중앙에 와 있는 셈이다.
9시 30분경에 일본에서 시집 온 지 14년이 되었다며 서툰 한국말을 쓰는 양구군청 문화해설사 후지꼬 씨의 안내로 두타연이라는 곳으로 향했다. 두타연, 이름만으로는 어떤 곳인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두타(頭陀)! 번뇌와 의식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산야(山野)를 다니면서 밥을 빌어먹고 노숙하면서 온갖 쓰라림과 괴로움을 무릅쓰고 불도를 닦는다는 불교용어임을 알자 조금 이해가 되었다. 천년 전 두타사라는 절이 이곳(민간 통제선 북방에 위치함)에 있었다는 연유에서 이름 붙여진 곳이다.
수량은 많지 않고, 계곡도 깊지 않지만, 경관이 빼어나고 6․25 한국전쟁 후 50여 년 간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곳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열목어 서식지로 유명한 곳이다. 나는 아름답고 맑은 계곡의 가을 정취를 생각하면서도 민족의 한이 서린 곳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차에서 내렸다. 비무장지대로 들어가는 고방산 초소에서 군인들의 철저한 검사를 받고 들어갔다. 입구에 두타연이라는 간판에 열목어 조각이 큼직하게 세워져있었다. 50여 년 간 사람들의 간섭 없이 자라온 수목들이 여기저기에서 손짓하며 반겨 주었다. 초추의 단풍들과 억새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 「산을 사랑하고 자연을 아끼려거든 들어오지 말라」는 말이 생각났다. 울울창창하게 들어선 원시림의 모습을 보면서 역사와 자연이 살아 숨쉰다는 생태체험 길에 들어섰다. 산책로 옆으로 줄을 쳐놓고 군데군데 <지뢰>라는 표시를 달아놓았다. 보는 순간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한글표지판 바로 밑에 이라는 영어가 함께 씌어 있었다. (Mine:지뢰 land mine) 영어도 우리말도 서툰 외국인이 「나의 것」이라는 해석으로 뛰어든다면 어찌 될까? 내 생각이 기우일까?
양구군에서 2003년부터 허가받은 사람만 민통선 안 생태체험의 길을 산책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전쟁 후 60년 가까이 하늘과 흐르는 물소리만 벗 삼아 곱게 자란 수목들 사이에서 나는 슬픈 장면을 목격해야 했다. 군데군데 모아둔 포탄의 잔해들과 지뢰, 몇 군데 총구멍이 난 녹슨 철모가 대검에 얹혀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전율을 느꼈다. 군대생활을 하던 시절, 저녁마다 손질하여 관물대에 신주처럼 모셔놓던 그 철모를 생각해 보았다. 총은 제2의 생명이며 철모는 나를 지켜주는 수호신이라 생각하라는 소대장의 저녁 점호 때마다 되뇌던 그 철모…….
총알이 뚫고 지나간 그 철모의 주인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가 지금 이 근처 어느 지하에서 내가 온 것을 알고나 있을까? 60년 동안 어디 갔다 이제 왔느냐고 나를 나무라고 있는데도 나는 못 알아듣는 건 아닐까? 당시 이곳 전투에 참전한 것은 학도병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날아오는 총알을 이 철모로 방패삼아 사투 끝에 피를 흘리고 쓰러졌을 것이다. 근처 펀치볼 전투에서 삼천이백여 명이 전사했으나 확인된 병사는 일천이백여 명뿐이라는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 나는 한동안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조국의 수호신으로 저 지하에서라도 서로 화해하고 총부리를 거두기를 바랄 것이다. 미어지는 가슴을 억제한 채 두타연의 둘레를 트래킹하기로 하고 발길을 옮겼다.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생태체험장의 두타교를 지나 계곡물이 흐르는 골짜기로 향했다. 금강산 장안사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라고 한다. 폭포높이는 10m정도이고 병풍처럼 바위가 둘러 처져 있었다. 물속에 손을 담근 채 가장 가깝고도 먼 북한 땅 금강산의 물줄기를 느껴 보았다. 가끔 군인들의 트럭만 오갈뿐 인적은 없었다. 온갖 오염물질로 쌓여진 내 몸둥아리를 청정한 이곳 산소로 정화시키고 있다. 천 년 전 이곳 두타사에서 살던 스님들의 염불소리와 목탁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마의태자가 마의를 걸치고 이 좁은 길을 터벅터벅 걸어서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북으로 가는 금강산 길을 걷고 싶었다. 조국이 두 동강 난 이 작은 못에서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 순간들이었다. 한 시간 가량 두타연의 둘레를 돌아보고 자연과 함께 숨쉬며 소중한 체험을 했다. 세월이 멎고 한이 서린 비무장지대의 한 복판에서 60년 전의 포탄소리를 가슴에 묻고 나는 저물어가는 초추의 햇살을 받으며 또 다른 분단의 현장으로 떠나야 했다.
(2009.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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