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타고 서울로/양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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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타고 서울로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양희선
때는 마이카 시대, 승용차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와 조상님께 성묘를 하고 부모님과 형제자매를 만나는 것이 좋아서 들뜬 마음에 피곤하고 지루함도 잊은 채 즐겁기만 하다. 조금은 힘들어도 고생스럽지 않으며 어머니 품속같은 고향이 있기에 한없이 행복하다. 도시에서 시골로 이동하는 북새통으로 길이 막혀 가다서다를 반복 하며 도로가 온통 주차장이 되지만 그래도 고향 가는 길은 흥겹기만 하다.
아들, 며느리, 손자손녀 여러 식구가 나서느니, 차라리 고향 부모님이 서울로 가는 역 귀성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들은 손에 손에 버거운 짐꾸러미를 들고 기차를 타고 서울로서울로 간다. 우리 부부도 역시나 무거운 짐을 들고 서울 아들집으로 갔다. 부모마음은 너나없이 모두가 같은 심정이리라. 좋은 것을 아들손자에게 먹이고 싶은 마음, 나는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것은 어미의 애틋한 사랑의 힘이 아니던가.
짐꾸러미를 한 아름 안고 역 대합실에 앉아 기차를 기다리는 가냘픈 노부부들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왜 늙으면 자신감이 사라지고 생기가 없을까? 살아온 여정만큼이나 굵게 주름진 얼굴에 애써 웃음을 지으며 자식과 손자들을 만날 기쁨으로 부풀어 있다.
추석의 유래는 고대사회의 풍농제에서 기원했으며 일종의 추수감사제나 다를 바 없다. 추석은 설날 다음으로 전통적인 명절이다. 새로 수확한 햅쌀과 햇과일로 조상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차례를 지낸다. 햅쌀로 빚은 송편은 추석명절에 먹는 특별한 별미이다. 집집마다 며느리, 손자, 손녀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며 빚은 송편은 솜씨도 요모조모로 웃음꽃이 피어난다. 빨갛게 익어가는 탐스런 감나무, 새콤 달콤한 향기로 가득한 사과와 배, 톡톡 터지는 알밤 모두가 풍성한 한가위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라고 칭송한 시월 상달 호시절이다.
추석에는 달맞이를 하는 풍습이 있었다. 일 년 중 제일 크고 둥근 달의 밝기와 날씨로 내년의 풍년과 흉년을 점쳤다고 한다. 영농기술이 부족한 시대라 하늘의 뜻을 오로지 우상처럼 여겼던 시절이다. 어렸을 적에 동네 친구들과 뒷동산에 올라 보름달에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말에 덩달아 은빛 쏟아지는 달빛을 맞으며 쏘다녔다. 아이들은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강강수월래, 그네뛰기, 널뛰기 등 민속놀이를 하며 추석을 즐겼다. 흥겨운 풍물놀이는 온 동네가 흥겨운 잔치 분위기였다. 마당에 멍석을 깔아 놓고 나무로 깎아 만든 윷을 던지며 '모야~ 개야 '하며 신나는 윷놀이에 어느덧 감나무 사이로 휘황찬 둥근 달이 두둥실 높이 떠 환한 빛을 비추어 주었다.
세월은 유수 같이 흐르고 흘러 어느새 9월이 가고 10월로 접어들었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세월을 그 누가 잡을 수 있단 말인가. 달리는 차창 너머로 드높이 바라보이는 푸른 하늘이 호수처럼 아름답다. 결실의 계절, 풍요로운 계절, 아련히 펼쳐진 들녘에 누렇게 익어가는 벼이삭이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다. 지난여름 지루했던 장마를 용케 이겨내고, 가을 가뭄도 끈질기게 견디면서 풍작을 이루었다.
논두렁에 흔히 보이던 허수아비는 어디로 갔는지 눈에 띄지 않는다. 그 많은 참새떼가 없어진 모양이다. 참새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아마 농약냄새가 싫어서 먼 나라로 이사를 갔는지도 모르겠다. 참새가 없으니 짝꿍인 허수아비도 심심하여 어디론지 사라졌나 보다. 알록달록 춤추던 허수아비가 보이지 않으니 왠지 섭섭하다. 두부모를 잘라 놓은 듯 반듯한 논두렁에 심어 놓은 콩은 무성히 자라 실하게 영글어 가고 있다. 한 알 한 알에 농부들의 손길이 닿아 오늘의 풍요로움을 펼쳤으리라. 풍년이 들어도 농민들은 쌀값 하락으로 시름이 크고, 흉년이 되면 더 큰 걱정이라니 이래저래 근심 잘 날 없는 노부부의 타는 가슴을 그 누가 알아주랴.
쌀이 없어 굶주리는 북한동포들에게 배불리 먹일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보람된 일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정치적 이유 때문에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풍성한 들녘을 바라보니 옛날 우리고향 앞뜰을 보는 것만 같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놀이문화도 변해 가고 있다. 기계문명의 발달로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컴퓨터가 있고, 게임놀이기구가 있으니 옆집 친구와 함께 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우리 고유의 민속문화를 간직하고, 대대손손 우리 것을 전통문화유산으로 전수한다면 우리만의 소중한 것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자꾸만 흐려져 가는 옛 민속문화풍습이 서양문화에 가리워져 퇴색될까 봐 두렵다. 남산 위에 두둥실 떠오른 해님같은 추석 달을 바라보며 나는 서울에서 나의 간절한 소망을 빌어 보았다.
(2009.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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