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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인신공양/강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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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두루미
댓글 0건 조회 678회 작성일 13-05-0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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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인신공양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강 우 택 인신공양이란 사람의 몸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일컫는다. 우리의 고전소설 심청전에서 심청이 그 아비 심 봉사의 눈을 뜨게 하려고 뱃사람들에게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 인당수 깊은 물에 제물로 바쳐졌다. 이러한 심청이의 효심은 심 봉사의 눈을 뜨게 하는 효심의 상징으로 전해오고 있다. 사람의 몸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은 고대부터 행해졌던 것 같다. 기원후 1세기경 고대 마야족인 아스텍족은 지금의 멕시코 중부에 강력한 아스텍제국을 이루고 있었다. 무테수 1세가 통치하는 동안에 메뚜기 떼의 습격, 홍수, 한파, 흉년, 등 천재지변이 잇따라 일어났었다. 이러한 일들은 신의 노여움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믿었고, 그리하여 사람의 몸을 바치는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왕은 주변 나라들과 전쟁을 벌여 제사에 바칠 포로들을 잡아들이게 되었다. 제사의식은 잡아온 포로들을 발가벗겨 제단에 세워 놓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제사를 집행하는 사람들은 흑요석으로 만든 날카로운 칼로 사람의 심장을 도려내어 태양을 향해 들어 올리고 그 온기를 태양에 바쳤다. 그리고 희생된 사람의 몸은 층계 아래로 굴러 버렸다. 이러한 제사의식은 통치수단의 한 방법이었다고 한다. 얼마 전 39세의 한 젊은이가 내연녀와 함께 짜고 교통사고로 위장하여 자기 부인을 죽인 사건이 있었다. 자기 부인 앞으로 들어둔 거액의 보험금이 빌미가 되어 경찰에 붙잡혔다. 자기 부인의 목숨을 담보로 보험금을 타내려는 보험사기극임은 말할 것도 없다. 또 얼마 전에는 몸조차 잘 가누지 못하는 칠순의 노모를 수면제까지 먹인 다음 방에 불을 질러 죽게 한 뒤 마치 실화인 양 위장하려고 하였으나 노모 앞에 들어놓은 보험이 탄로되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 두 사건 모두 돈 때문에 사람 목숨을 담보로 한 신판 인신공양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요즈음의 보험사기는 더욱 지능화하고 교묘해지고 있다고 한다. 으슥한 밤 비좁은 골목을 달려오는 승용차에 멀쩡한 자기 몸을 부딪쳐서 상처를 입은 뒤 승용차 운전자를 공갈 협박하여 돈을 뜯어내기도 한다. 정말로 위험한 범죄다. 최근 유엔인권위원회가 북한의 인권문제가 심각함을 지적한 바 있다. 탈북자 및 반체제인사들을 사법처리 없이 강제수용소나 정치범수용소에 감금하고 있다. 수용소의 생활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탈북자가 텔레비전 회견장에서 북의 인권을 증언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북한 정권에서는 공개처형을 지금도 시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개처형이 있는 날에는 많은 주민들을 강제로 모아놓고 처형장면을 보여주어 주민들로 하여금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북한정권은 ‘나도 잘못하면 저렇게 되겠구나!’ 이러한 공포심을 체제유지에 이용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종의 정치적 인신공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부모는 자식을 위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아끼지 않는다. 집 팔고 논밭 팔고 심지어 자기 퇴직금까지 몽땅 쏟아 부어도 끝이 없다. 대학등록금이며 결혼비용, 심지어 저희들이 살 집까지 마련해 주기도 한다. 그러한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홀대받거나 버림받는 세상이기도 하다. 저금통장이 엷은 노인일수록 거리에 내몰리기 쉽다고 한다. 60대 후반의 늙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7억 원을 배상하라고 고소했다는 뉴스를 본 일이 있다. 얼마나 자식의 홀대를 받았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아들에게 들어간 비용을 다 배상하라는 뜻일 것이다. 어떤 젊은 아버지가,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가 그린 그림을 살펴보았더니, 그 어디에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림에 보이지 않았다. 왜 아빠와 엄마는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때쯤이면 할아버지와 할머니처럼 요양병원에 계실 것 아니냐고 반문하더라는 것이다. 요즈음의 젊은 세대들은 그 부모세대들이 자식들을 위해 공양하는 심경으로 힘겹게 키워냈지만 그 은혜를 몰라주는 것 같다. 회사일로 외국에 나갈 아들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외국에 나가기 전에 아버지 어머니를 꼭 찾아뵙겠다는 내용이었다. 반가웠다. 오는 길에 손자들도 꼭 데려오라고 했다. 나는 자식들에게 크게 물려준 것은 없다. 따로 떨어져 살고 있으나 가끔 우리 내외가 살고 있는 집을 찾아준다. 그 이상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2013.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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