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이런 일이/김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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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이런 일이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현 준
20분 정도 강의 시간이 여유 있어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꽃샘추위가 옷깃을 파고들어 발길을 재촉한 게 화근이었다. 큰길에서 샛길로 들어서며 발부리에 무엇인가 걸린 것 같더니, 아스팔트 길바닥에 넙죽 엎어지고 말았다. 가방이 멀리 팽개쳐 나가고 왼쪽 무릎이 시큰거렸다. 가까스로 일어나 살펴보니 바짓가랑이에 구멍이 뚫리고 오른 손바닥에 피가 흘렀다.
몇 걸음 앞서 가던 여자 서너 명이 뒤돌아보며 '뭐 도울 일이 없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아픈 것도 문제지만, 늙은이가 아침부터 무슨 망신이란 말인가.
공사장 철근을 길옆에 쌓아두고 맨 밑에 각목을 고였는데, 내 발이 각목에 걸려 넘어진 것이다. 허겁지겁 약국을 찾아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였다.
외손자 민석이가 어제 유치원에서 팔 골절상을 입어 깁스를 했다는 소리를 듣고 마음이 심란했는데, 정신이 반쯤 달아난 것 같다. 강의를 듣고 싶은 생각이 사라지고 집에 돌아가고만 싶었다. 그러나 공연히 아내에게 걱정을 끼칠까 싶어 참고 강의실로 향했다.
길을 가다 보면 하이힐을 신고 급히 걷던 여자가 포도鋪道에 넙죽 넘어져 어찌할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속으로 피식 웃으며, '좀 천천히 걷지, 쯧쯧' 하기도 했다.
오늘 나의 참담한 모습을 보고 그 여인들도 나처럼 혀를 찼을지 모르겠다. '나이도 연만한 노친이 무엇이 그리 바빠서 그랬을까?' 하면서 말이다.
어느 할머니가 목욕탕 바닥의 비눗물에 미끄러져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주위에 있던 딸과 며느리가 다가와 "어머니, 괜찮아요?" "어머님, 병원에 가셔야 하는 것 아sP요?" 하며 법석을 떨었다. "야! 창피한 것은 어쩌고?" 할머니는 큰소리를 쳤다고 한다.
강의실에 앉아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해 보니, 그 철근과 각목 탓만이 아니고 나의 부주의였음을 깨달았다. 하체가 부실해지고 다리 근육이 풀어진 탓이라 생각되었다. 얼굴 부위를 다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옛 동료 ㄱ선생은 결혼을 앞두고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얼굴에 큰 상처를 입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화장으로 상처 부위를 얼마쯤 감춘 채 예식은 올렸지만, 큰 곤욕을 치렀다. 남의 일이라고 웃고 말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무릎을 깨는 것은 어린이들이나 하는 짓으로 알았지, 내 무릎 상처에 연고를 바를 줄은 몰랐다. 길바닥에 질척거리는 물기가 없어 다행이었다. 회색 상의에 흙탕물이라도 튕겼다면 대로에서 어쩔 뻔했는가.
나이가 많아져 근력이 떨어지면 먼저 걸음걸이가 달라진다. 노인은 넘어지면 문제다. 엉덩뼈가 부스러지거나 허리를 다쳐 고생을 한다. 장모님이 몇 해 전 빙판길에 넘어져 몇 차례 수술을 받았다. 누워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여러 신체 기능이 약해지고 고생이 자심하셨다. 어머니는 손자를 업고 돌보시다 넘어져 골절상을 입고 고생하셨다. 두 분의 낙상에서 교훈을 얻어야 했다.
강의실에서 다시 생각해 보니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고 건축공사 관계자에게도 책임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당연히 줄을 쳐서 표시를 하거나 주의 공시를 해야 할 텐데, 나는 그것을 본 기억이 없었다. 귀갓길에 현장을 돌아보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귀퉁이에 무슨 '주의'라 적힌 팻말이 있어 다가가 보니, 케이블이 매설되어 굴착하기 전에 신고하라는 글이었다. 나는 '공사 중 보행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라는 글을 여러 번 보아온 터였다. 그러면 그렇지, 틀림없이 공사 책임자의 과실이라 생각되어 어찌할까 궁리하였다. 한편으로는 '액땜으로 생각하지, 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언성을 높여 입씨름하고 약값 몇 푼을 받을 수 있겠지만, '노인네가 당신 앞도 보지 못하고서는…….' 하며 뒷전에서 수군거릴 게 뻔했다. 수필 소재를 하나 건졌다 생각하면 그만이라 마음을 돌렸다.
아내가 어쩌다 길바닥에 넘어져 무릎을 다쳤다고 하면, '조심하지 그랬느냐?' 하고 만 내 자신이 무심했었다. 그것도 깨달음이니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아내에게 한껏 제스처를 써가며 상황을 설명하고 실컷 웃다 보니 옆구리가 결렸다. 자빠지기는 옳게 자빠졌나 보다. 누가 동영상이라도 찍어놓았으면 손자 손녀들이 보고 무척 좋아했을 텐데……. 이사하며 멈춘 운동을 다시 시작하려고 아내와 함께 헬스장으로 나갔다.
(2013. 4. 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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